거제 관문으로
한 해가 저무는 십이월 첫 주 수요일이다. 수능 성적표를 손에 쥔 학생들은 일찍 하교했다. 1․2학년들은 정기고가 기간이었다. 업무부서 동료들과 학교 바깥으로 나가 점심을 같이 들었다. 업무에서 여러 가지 배려를 받는 내가 점심값을 치름은 당연했다. 점심 식후 교무부장과 젊은 동료는 인근 중학교로 고입 전형 홍보 자료를 배부하러 떠나고 난 곧장 와실로 들어 차림을 바꾸었다.
정기고사 기간 중 교사에게 오후 반나절은 금쪽같은 시간이다. 동지가 가까워진 때라 해가 짧아져 산행을 나서긴 시간이 빠듯했다. 동선을 좀 멀게 잡은 산책은 가능할 듯했다. 연사 정류소로 나가 구영으로 가는 31번 버스를 기다렸다. 장목면 구영은 거제 북부 진해만과 접한 갯마을이다. 난 그간 장목 북부 갯가를 자주 찾아 서성였다. 퇴근 후는 물론 출근 전 이른 새벽에도 찾아갔다.
내가 주중 찾아간 거제 북부는 거가대교 개통 이후 거제의 새로운 관문에 해당한다. 예전엔 거제 서부 통영과 통하는 거제대교뿐이었으나 가가대교 개통으로 부산과 김해와 곧바로 연결되었다. 창원과도 가까워졌음은 물론이다. 거가대교가 거제에 닿은 곳이 장목 유호리고 그곳엔 하유와 상유 두 곳에 포구가 있다. 연륙교가 걸쳐진 저도는 대통령 하계 휴양 별장으로 청해대로 불린다.
하유와 상유 갯가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구영 포구가 나온다. 고현을 출발해 구영으로 오는 30번 버스는 장목에서 답답고개를 돌아 황포를 지나 구영에 닿는다. 거기서 상유와 하유를 거쳐 농소를 지나 관포고개를 넘어 장목에 이르러 고현으로 나간다. 31번은 장목에 와서는 관포고개를 넘어 농소 해안에서 하유와 상유를 거쳐 구영에 닿아 황포를 지나 답답고개에서 장목으로 빠진다.
장목에서 관포고개를 넘어 구영으로 가던 31번 버스를 타고 가다 하유에서 내렸다. 저도에 걸쳐진 거가대교 연륙교가 빤히 보였다. 비탈진 언덕을 따라 유호전망대로 올라가니 웅장한 거가대교는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저도에서 중죽도와 대죽도 구간은 연륙교이고 그 이후는 침매터널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가덕도로 이어졌다. 거가대교 바깥은 대한해협으로 검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전망대에서 농소로 내려가니 거가대교가 장목터널을 빠져나와 자동차전용도로로 접속했다. 농소마을에서 몽돌이 펼쳐진 활처럼 휘어진 해안이 길게 이어졌다. 임호와 간곡에 걸쳐진 몽돌은 학동처럼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개장했다. 몽돌 해변을 지나 궁농으로 갔다. 궁농은 마을에 등을 댄 쌍둥이 항구로 저도로 가는 유람선이 뜨는 포구와 어항으로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로 나뉘었다.
궁농마을을 지나 어항으로 나가니 망봉산 산책로 입구엔 정자 있고 방파제였다. 바닷가 낮은 봉우리가 구한말 러일전쟁 때 망을 보던 초소가 있었다고 망봉산이라 불린다고 했다. 산책로 들머리로 오르니 마른 낙엽을 밟게 되어 가랑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안을 따라 돌아가니 모시밭꼴전망대였다. 하늘숲길에 이르니 출렁다리가 나와 어지러워 건너가지 않았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를 돌아가니 망봉산 정상전망대로 가는 길로 이어졌다. 정상부에도 교각을 높이 세운 전망대가 있었는데 그곳은 가질 않았다. 날이 저물자 해가 넘어간 서녘에는 붉은 여운이 남았다. 거가대교 주탑과 사장교 쇠밧줄에는 오색 불빛이 반짝였다. 신항으로 들고나는 컨테이너운반선에도 불을 밝혔다. 더 어두워지기 전 정상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려 비탈로 내려섰다.
찬물뜰전망대로에 이르니 거가대교가 야간 조명이 더 가까이 보였다. 건너편 한화리조트에서도 불빛이 훤했다. 어둠 속에 산비탈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궁농항 낚시공원이 나왔다. 물때가 아니어선지 낚시꾼은 볼 수 없었다.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 간곡으로 갔다. 연안으로 밀려온 파도가 부서지면서 흰 거품을 일으킬 때마다 몽돌은 자그락거렸다. 구영으로 돌아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