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책을 보는 독자 여러분들 중에 전쟁을 찍도록 요구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사용한 사진 촬영 기법이나 사진을 촬영한 기기들은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나 전문가인 사람들 대부분이 휴가 때나 직무로써 사진 촬영에 사용하는 기술이나 기기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독자 여러분의 추가적인 관심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당신이 전문 사진가라면 더욱 큰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6.25전쟁을 찍는데 사용된 장비의 일부는 이미 미국과 유럽의 소형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작은 혁명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라이카 IIIC, 35mm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두 대의 라이카 사진기를 휴대했는데 목을 둘러싸는 가죽 끈으로 탄약띠처럼 내 가슴 앞에서 X자로 교차시켜 몸의 양쪽에 하나씩 찼다.
모든 필름 통들은 칫솔, 비누, 방충제, 담요, 양말, 방수 판초 등과 함께 배낭 안에 있었고, 두 개의 수통을 망으로 된 벨트에 달고 있었다. 숟가락은 손목 나침반과 함께 밤낮으로 늘 입고 있었던 야전상의 앞주머니에 들어있었다.
그것이 전부였고 또 이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령부의 어딘가로 돌아올 필요 없이 해병대원들과 함께 계속 해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해병대원들은 항상 그들의 음식을 나눠주었다.
두 카메라의 원래 가죽케이스는 야전에서 필름을 바꾸는 것을 더디게 했기 때문에 도쿄에 남겨두었다. 적의 사격 아래에서 사진들을 찍을 때마다 안전이 확보된 1분 1초가 정말로 소중 했었다.
다시 필름을 갈아 끼울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두 대의 라이카 카메라는 기본 적인 용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한 대는 50mm 표준형 렌즈에 맞춰놓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망원사진용이었다.
초점거리가 다른 두 대의 카메라를 휴대했기 때문에 항상 어떤 장면 이든 즉각 찍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라이카 카메라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가진 한국의 전장에서 내내 사용되어졌다.
축축하고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한 여름 부터 결코 잊을 수 없도록 추웠던 장진호 부근의 겨울까지 이 카메라들은 추위 때문에 필름을 감는 동안 필름이 끊어지기 시작했던 순간 이후에도 늘 완벽하게 작동되었다.
" This is War ! "에 수록된 모든 사진들은 라이카 사진기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렌즈는 점령지 일본에서 생산된 니콜렌즈를 장착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과거 '라이프 앤 포츈"지의 기자였고 지금은 도쿄에 살고 있는 호레이스 브리스톨과 나는 도쿄의 일본광학회사에서 새로 만든 일련의 니콜렌즈를 시험 삼아 장착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mm 카메라를 위한 일제 니콜의 3개 표준형 렌즈들이 우리 판단으로는 매우 놀랍게도 현재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영국제 미국제-독일제 등 그 어떤 35mm 표준형 렌즈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까지는 독일제품이 좋다고 생각한 135mm 이상의 광각 초망원렌즈를 제외하고는 우리 카메라의 모든 렌즈를 팔고, 니콜렌즈로 갈아끼웠다.
우리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한 니콜렌즈는 지금은 F1.4, 클릭스톱 50mm 렌즈로 대체된 F1.5, 50mm 렌즈, F2.85mm 렌즈, F3.5. 135mm 렌즈 등이었다. 모든 일련의 니콜렌즈는 완전히 일본 물자들로 도로에서 생산되었다.
유리부터 세부 장치까지 그들의 렌즈나 카메라 모두 일제였다. 단 한 가지 일본 회사에서 생산되지 않은 부품은 니콘카메라의 '초점 개폐 장치(포컬플레인 셔터)'에 있는 용수철 뿐이었다. 그것은 스웨덴제였는데 일본의 사진기 제조사들이 아직까지 일본에서 만들어진 어떤 용수철보다도 품질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이 진행됨에 따라서 여러 다른 신문이나 잡지사의 사진기자들이 도쿄에 도착했을 때, 새로운 사진기 렌즈의 명성이 퍼지기까지는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고, 일본을 거점으로 일하는 사진기자 중에 자기 카메라에 니콜렌즈를 쓰지 않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저명한 사진기자는 라이프지의 칼마이단스와 핸크 워커였다. 그들은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곧 그들의 독일제 카메라를 버리고 니콘카메라만을 사용했다.
그리고 연합통신의 톱뉴스 사진기자인 맥스 데스포는 그의 일을 더 많이 지원하기 위해 니콘카메라에 니콜렌즈를 조합한 장비를 가지고 다녔고, 아주 작은 음화에 대한 제한적인 경우 외에는 자기 일을 위해 더 많이 그것들을 활용했다.
니콘카메라와 니콜렌즈의 우수성은 뉴욕 타임즈의 마이클 제임스, NBC의 존 리치, CBS의 죠지 허먼, 그리고 특파원으로서 자신의 보도를 늘리기 위해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실이 되었다.
이 니콜렌즈를 사용한 아주 작은 음화를 원본으로 한 인쇄물들은 주목할 만한 이미지의 퍼짐이 없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에드워드 슈타이컨 사진 전시회에서 30인치×40인치로 확대되어졌다.
한국전쟁에서 촬영된 사진들 대상의 친숙하고 적나라한 모습은 촬영에 대부분 사용한 소형카메라에 대한 사진기자의 선택에 주로 기인했다고 캡틴 슈타이겐이 의견을 냈는데 한국 전쟁을 보도했던 우리들 대부분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우리 대부분이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진을 찍는데 사용한 렌즈에게도 역시 많은 신뢰가 주어져야 마땅할 것이었다. 라이프지의 사진기자에 의해 촬영된 필름 대부분은 신속히 수송되어졌다. 그것들은 급 항공편으로 뉴욕에 보내져서 수온과 기온이 조절되는 라이프지 본사의 암실작업장에서 인화 되어졌다.
모든 작은 필름들이 이스트만코닥 K20 인화기에서 현상되었다. 각 필름들은 우리 중에 누군가가 야전에서 특별한 표시를 한 경우 -우리가 노출을 잘못해 만들어진 실수를 보호해줄 특별한 암살을 요구하거나 우리가 셔터 속도나 조리개 열기 등을 변경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었던 전투상황으로 인해 노출 정도를 간과했음 우리의 음화를 그들에게 균형을 맞춰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 등- 를 제외하고는 현상 시간과 현상 온도 등 동일한 처리를 거쳤다.
이 책(원서 This is War!)은 구성방식 관계로 페이지 번호를 매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각 사진의 노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다소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노출은 F1에 기본적인 1/200초 였기 때문이다.
필름은 항상 이스트만 슈퍼XX 35mm 카트리지에 장착되었다. 몇몇 경우, 특히 해병대원이 적의 기관총 사격에 의해 전사하는 The Hill(고전)의 장면 사진에서 노출은 전혀 정상이 아니었다. 이 장면 사진은 비가 퍼붓는 칠흑 같은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노출은 F2.2에 1/100초였다.
역시 The Hill(고전)에 수록된 레오날드 헤이워스 상병의 사진은 F1.5광각렌즈에 1/100초 노출로 촬영되었다. Retreat, Hell(후퇴라니, 말도 안돼!)에 포함 된 전사했거나 기습당한 동료들을 지나 행군하는 해병대원들을 찍은 사진의 노출은 1.4에 1/100초였다. 그때는 겨울의 거의 어두워진 늦은 오후였기 때문이다.
The Hill (고전)과 The City(시가전)에 포함된 사진들은 모두 F1.5. 니콜 50mm 렌즈로 촬영되었고, Retreat. Hell! (후퇴라니, 말도 안돼!)에 수록된 사진들은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FL.4. 니콜 50mm 렌즈로 촬영되었다. 그 하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공군 병사의 초상이었는데 F3.5. 니콜 135mm 렌즈를 사용했다.
이 책을 만드는 데 사용된 모든 사진은 라이프지 암실 담당자인 다니엘 버지가 인화했다. 원판 인화 본은 2면 도반용은 14인치×30인치로 확대되었고, 세로 -전면 도판용은 10인지×14인치로 확대되었다. 이 원판 사진들을 책으로 다시 제작하기 위해 출판사는 사진의 크기를 축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