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게 하는데 우선 지엽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11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라고 증거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가룟 유다는 제대로 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에 있어서는 요한복음 6장 64절에서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도, 또한 7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그렇듯 가룟 유다와 같은 자가 있을 수 있고,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함께 대략 3년 동안이나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중간에 별 문제들이나 이상들이 없이 예수님을 대적들에게 팔아넘기기까지에 이르렀을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물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계획, 약속과 섭리 안에서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 가운데에서도 가라지와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목회자들이나 중직자들 중에서도 가룟 유다와 같은 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임도 배제할 수는 없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와 본문에서는 믿음의 세계, 구원의 세계에 있어 아주 중대하고 근본적이며 골격과도 같은 부분들도 짧고 굵게 잘 비유되어 있는 것인데 다시 말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다는 것은 마치 목욕과도 같다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게 되었고 죄악으로 인해 온통 더럽혀진 것이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나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음으로 인해,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와 함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이며, 실제로 이신칭의에 합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믿음으로 값없이, 온전히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은 아래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또다시 목욕할 필요는 결코 없는 것인데 다만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보다는 마치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을 우선으로 하면서 버겁게 되고 유혹에 빠지며 시험에 들기도 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과 함께 실제로 적잖이 미지근해 지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 듯한 신앙이 되곤 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이미 목욕한 자라도 하루하루 온갖 더럽고 부정하며 악하고 추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의 별의 별 사람들, 별의 별 일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이런 저러 모양으로 더렵혀질 수 있는 발을 날마다 씻어야만 하는 것과 같이 여러 모양으로 범하게 되는 죄악들에 있어 자복과 회개와 참회 등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자복과 돌이킴에 있어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들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고,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 있어 하늘의 힘과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자복과 돌이킴과 같은 사안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과 시험들, 여러 연약과 한계들 등과 싸워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는 최대한 빨리, 사실은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아래 본문의 14~15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함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말씀대로의 믿음인 것이고, 그 중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섬김과 사랑과 격려와 동역 등에서의 실천인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구주 예수님 자체부터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또한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들로는 원론적으로 애초에 불가능인 것으로 마찬가지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이 가능한 것이고,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되고, 더더욱 장성하고 견고하며 강한 군사와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됨도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13:9~1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5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