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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아메리카노.
잊혀졌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몇번을 돌려서 봤는데도 볼때마다 눈물한방울ㅠㅠㅠ
그래서 예전에 내레이션만 저장해놓은 게 있었는데
사진이랑 같이 만들어왔당~
[준영의 내레이션] 적(敵)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적이 분명한 적일 때, 그것은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지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될 때, 얘기는 심각해진다.
서로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런 순간이 올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
그걸 알 수 있다면 우린 이미 프로다.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 순간에 적이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든 다시 동지가 될 수 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때 기대는 금물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건 지금 그 상대가 적이다,
동지다 쉽게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지오의 내레이션] 설레임과 권력의 상관관계
한 감독이 생애 최고의 대본을 받았다
한 남자는 오늘 첫 취업 소식을 들었다.
한 남자는 내일 꿈에도 그리던 드라마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일이 주는 설레임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바로 권력을 만났을 때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 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레임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것조차 과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미치게 설레이던 첫사랑이 마냥 맘을 아프게만 하고 끝이 났다.
그렇다면 이젠 설레임 같은 건 별거 아니라고,
그것도 한 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만도 한데,
나는 또다시 어리석게 가슴이 뛴다.
그래도 성급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성의 시간이 끝나면,
한동안은 자신을 혼자 버려둘 일이다.
그게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하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다시 시작할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준영의 내레이션] 아킬레스건-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몇 가지 제안
내 유년시절의 확실한 아킬레스건은 엄마였다.
화투를 치고, 춤을 추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버지 앞에선 언제나 현모양처인 양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나의 꿈은 엄마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다행히 대학을 들어가면서 쉽게 이뤄졌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조감독 때
나의 아킬레스건은,
조금이라도 잘 나가는 모든 동료와,
그 외 나에게 수시로 태클을 거는 세상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이 된 이후의 나의 아킬레스건은
모든 감독들처럼 단연 시청률이다.
왜 하필 다른 때도 아니고
선배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 시점에
그 말이 연속해서 이렇게 내 맘에 걸리는걸까..
지금 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의 아킬레스건은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너무 사랑을 정리하는 것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애라는 거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랑을 더는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지난날처럼 쉽게 오해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지루하더라도 다시 그와 긴 얘길 시작한다면
이번 사랑은 결코 지난 사랑과 같지 않을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은 지난 사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때에만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이
성숙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지오의 내레이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감독에게 있어서 새 작품을 만난다는 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실체를 찾아내 직면하지 않으면,
작품은 시작부터 실패다.
왜 이 작품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지,
내가 찍어내는 캐릭터들은 어떤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왜 외로운지,
왜 깊은 잠을 못자고 설치는지,
사랑 얘길할 땐 캐릭터들의 성적취향까지도 고민해야한다.
시청자들이야 별 볼일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작품을 만드는 우리에게 작품 속 캐릭터는
때론 나 자신이거나,
내 형제,
내 친구,
내 주변 누군가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민이 끝날 즘 비로소 우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새로운 작품에 온몸을 던질 준비를 마치게 된다.
감독이 작품속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할 때
작품은 본궤도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내 앞의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뒤통술 맞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지금처럼.
누나는 엄마가 단 한순간도 이해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그녀가 내 곁에 아주 오래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준영의 내레이션]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
누가 우리나라 드라마의 한계성에 대해 단 한마디로 정의를 내려달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순정에의 강요라고 말하겠다.
십대소녀도 아닌 이십대, 삼십대의 드라마 주인공들이
늘 우연히 만난 지난날의 첫사랑 때문에 목을 메는 한국드라마에 난 정말 신물이 난다.
생각해보면 나는 순정을 강요하는 한국드라마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 한번도 순정적이지 못했던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상대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뛰어오는 저 남자를 그냥 믿음 되는데, 무엇이 두려웠을까?
[지오의 내레이션] 산다는 것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준영의 내레이션] 드라마 트루기
내가 드라마국에 와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드라마 트루기
다른 말로, 연출법의 기본은, 드라마는 갈등이라는 것이다.
갈등 없는 드라마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최대한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어설프게 풀지 말고, 점입가경이 되게 상승시킬 것.
그것이 드라마의 기본이다.
드라마국에 와서 내가 또 하나 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는
드라마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드라마와 인생은 확실한 차이점을 보인다.
현실과 달리 드라마속에서 갈등을 만나면 감독은 신이 난다.
드라마의 갈등은 늘 준비된 화해의 결말이 있는 법이니까,
갈등만 만들 수 있다면, 싸워도 두려울 게 없다.
그러나 인생에선 준비된 화해의 결말은 커녕, 새로운 갈등만이 난무할 뿐이다.
[준영의 내레이션] 드라마처럼 살아라
친구도 필요 없고, 애인도 필요 없고,
하늘아래 나 혼자인 것처럼 철저히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언제나 아빠가 생각난다.
두 살 난 아이에게 보들레드의 시를 읽어주는 대학교수이며, 학자이고, 시인인 우리 아빠.
지오선배는 왜 우리 엄마를 먼저 본 걸까, 아빠를 먼저 봤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애인은 날 의리 없고, 이기적인 애라고 단정 짓고 가버리고,
반찬도 동이 나고, 밥도 없고, 춥고, 배도 고프고,
이 문젤 단 한번에 해결하는 길은 엄마한테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하다.
그럼 엄마는,
당장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감자전에 시금치나물에 문어숙회까지 들고 올 거다.
그리고 따뜻한 밥을 해서 냉동실에 가득 저장해놓겠지.
1분간의 짧은 통화면 그 모든 게 해결되는데
나는 그럴 맘이 안 난다. 차라리 굶고 말지.
어떻게 엄마를 떠났는데, 이제와 다시 이런 사소한 일로 부딪힐 기회를 만들 순 없다.
엄마는 내가 조금만 여지를 두면 당장이라도 내 곁에 들러붙어,
온갖 내가 싫어하는 말들과 행동으로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넣을 게 뻔한데,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어려서 엄말 피해 드라마를 봤는데,
더 이상 엄마를 피하면 내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절대 그럴 리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인생은 인생이다.
근데 아빠도 그런 식으로 말한 거 같다. 시처럼 인생을 살아라.
돌아버리겠네. 아, 모르겠다. 정말.
왜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어야할 땐
반드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유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어떤 아픔은 묻어두고 싶은 관곌 이어갈 수는 정말 없는 걸까?
그럼 나는 이제 정지오와의 더 깊은 관곌 유지하기 위해선,
정말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엄마에 대한 얘길 해야만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강준기한테도 난 아무 얘길 한 적이 없었다.
정말 서로의 아픔에 대한 공유 없인, 그 어떤 관계도 친밀해질 수가 없는 걸까?
아빠는 내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내가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아름다운 드라마를 찍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드라마처럼 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 인생은 자꾸 내가 하는 드라마와 엇나간다.
정지오 말대로 난 의리도 없고, 이해심도 없다.
게다가 누구나 냉혈한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손규호마저도,
날 감정 없는 인간으로 몰아간다.
오늘은 아빠한테 안겨 엉엉 울었음 좋겠다 싶다.
[그들의 내레이션] 드라마처럼 살아라
- 준영
내 드라마의 냉정함이 내가 냉정해서라면, 나는 고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드라말 위해서, 그리고 그보다 내 삶을 위해서.
사랑하는 남자와 아침식사를 하며, 엄마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다른 때처럼 싫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해야지. 맘이 급했다.
그리고, 섣불리 전화해라, 이해해라 말하지 않는 정지오가 고마웠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와 나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드라마처럼, 이 사람과 평생을?
- 지오
드라마 속 인물처럼 살고 싶었다.
동료가 잘나가면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자격지심 같은 건 절대 없으며 어떤 일에도 초라해지지 않는…
지금 이런 순간에도, 큰소리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괜찮지 않은 걸 늘 이렇게 들키고 마는지.
준영아, 내가 너한텐 드라마처럼 살라고 했지만,
그래서 너한테는 드라마가 아름답게 사는 삶의 방식이겠지만,
솔직히 나한테는 드라마는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다.
내가 언젠가 너에게 그 말을 할 용기가 생길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너조차도 나에겐 어쩌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드라
너같이 아름다운 애가,
나 같은 놈에겐 드라마 같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준영아, 아니라고 해줄래? 너는 현실이라고.
[지오의 내레이션] 그의 한계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존재에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존재인걸 알아채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인가? 나는 내가 배신하고 상처 주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한다.
정확히 고3 때였다.
우습게도 그때는 근처 학교 애들과 구역을 놓고, 뻑하면 패싸움을 벌였다.
시골학교에 다니는 우린 심심했고, 사는 게 재미없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 그날은 한 놈이 이가 왕창 나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그 일로 친구들은 전원 정학을 맞았다.
주동자는 나였는데, 학교에선 우등생인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불쌍한 어머니를 핑계로 그 부당한 처사에 대해 암말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난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된 나는 그때처럼 어리석게 표 나는 배신은 하지 않는다.
배신의 기술이 더욱 교묘해진 것이다.
그때, 그런 말로 준영을 자극한건 분명 그때 만나고 있던 연희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러나 난 연희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준영이가 손규호의 B팀으로 간다고 할 때, 나는 내가 간다고, 너는 빠지라고 했지만, 거짓말이다.
나는 절대 손규호의 뒷치닥거릴 할 맘이 없었다.
내가 한 배신이 이렇게 수두룩한데, 이런 일쯤이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같이 패싸움을 했던 친구들과 내가 다시 만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꿈에서도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어느 한 날 술에 취해 한 놈을 찾아가 미안하단 말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그때 친구놈은 뭐 그런 걸 기억하고 사냐고,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초라한 순간이었다.
그때 다짐했다. 다신 그 누구 앞에서도 초라해지지 않겠다고.
그러고 보니 배신을 당했다고 말하든 했다고 말하든, 그 어떤 순간도 난 초라해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참 초라한 느낌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들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준영일 다시 만나면서 대체 내가 왜 예전에 얘랑 헤어졌을까,
이렇게 괜찮은 애를 하면서 과거의 내가 미쳤었나 싶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천만번 다짐했다, 다신 얘랑 헤어지지 말아야지.
근데 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내가 저질러 놓고도 눈물이 자꾸 날려고 한다.
난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거 같다.
그래도 난 준영일 다신 안 만날 생각이다.
그게 내 한계래도 이제 어쩔 수 없다...
[준영의 내레이션] 화이트 아웃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 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상태.
내가 가는 길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 모르는 상태.
우리는 가끔 이런 화이트 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절대 예상치 못하는 단 한순간.
자신의 힘으로 피해갈 수 없는 그 순간, 현실인지 꿈인지 절대 알 수 없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어느 한날 동시에 찾아왔다.
그렇게 눈앞이 하얘지는 화이트아웃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한다. 근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그가 틀렸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6년 전 그와 헤어질 때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때 그는 단지 날 설레게 하는 애인일 뿐이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와 함께 웃고 싶고,
그런 걸 못하는 건 힘은 들어도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젊은 연인들의 이별이란게 다 그런 거니까.
미련하게도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
이건 분명한 배신이다.
그때, 그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들,
그와 헤어진 게 너무도 다행인 몇 가지 이유들이 생각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고작 두어 가진데,
그와 헤어져선 안 되는 이유들은 왜 이렇게 셀 수도 없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지는 건가.
이렇게 외로울 때 친구를 불러 도움을 받는 것조차 그에게서 배웠는데,
친구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져도, 된다는 것도 그에게서 배웠는데,
날 이렇게 작고 약하게 만들어놓고, 그가 잔인하게 떠났다.
[그들의 내레이션] 중독, 후유증 그리고 혼돈..
- 준영
중독이란,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또는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정지오란 사람에 의해,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심각한 중독 상태를 겪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이 만나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면 모든 게 제로로 돌아가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가 않다.
애인과 헤어진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걸 모르고 아이처럼 나를 보고 좋아라 하는
이 어른들을 보는 것도 만만찮게 힘이 들다.
남도 아니고, 내 부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젠 사랑하는 애인의 부모도 아니고.
모든 게 끝나버린 애인의 부모는 정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예상치 못한 이별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난무한다.
혼란과 혼돈, 무질서로 불리는 카오스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지금의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마디로 정의할 만한 규칙은 무엇이 있을까?
민희의 말처럼 관계연속중독증, 아님 이별이 낳은 후유증?
아니면 채인 여자의 복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혼돈 그 자체?
세상에서 젤 끔직한 일은 이미 마음이 변해버린 애인에게 구걸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겠다.
- 지오
슬프다는 말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참 좋은 시였는데, 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한 구절만 생각이 난다.
마지막은 이렇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이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내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나는 저 아일 버렸는데,
그럼 지켜진 내 자존심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지오의 내레이션]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몇 가지
나는 한때 처음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어떤 두려운 일도
한번 두 번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 어떤 것이든,
반드시 길이 들여지고, 익숙해지고, 만만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만 해도 인생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로 시간이 가도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래된 애인의 배신이 그렇고,
백 번 천 번 봐도 초라한 부모님의 뒷모습이 그렇고,
나 아닌 다른 남자와 웃는 준영의 모습이 그렇다.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그래서 너무나도 낯선 이 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나는 드라마가 이래서 좋다.
내가 모르는, 내가 외면했던,
내가 무관심했던 숱한 사람들의 삶까지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엄마가 생각난다. 준영의 어머니조차도.
대체 다른 사람들은 사랑했던 사람들과 어떻게 헤어지는 걸까?
연희와도 준영과도 이번이 처음 이별이 아닌데,
왜 이렇게 매 순간이 처음처럼 당황스러운 건지…
모든 사랑이 첫사랑인 것처럼
모든 이별도 첫 이별처럼 낯설고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나만 이런 건가? 준영인 너무나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길들여지지 않는 건 바로 이런 거다.
뻔히 준영의 맘을 알면서도 하나도 모르는 척,
이렇게 끝까지 준영의 속을 뒤집는, 뒤틀린 나 자신을 보는 것.
사랑을 하면서 알게 되는 내 이런 뒤틀린 모습들은 정말이지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만하자고, 내가 잘못했다고, 다시 만나자고,
첨엔 알았는데 이젠 나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안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왜 나는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건지.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 또 하나, 예기치 못했던 바로 이런 순간...
[준영의 내레이션] 통속, 신파, 유치찬란
나는 정말 드라마에서는 물론 인생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통속적으로, 이렇게 유치찬란하게 다른 남잘 이용해
싸구려 질투심을 일으켜 사랑을 확인하는 짓은 정말이지 꿈에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이렇게 신파적이기까진 정말정말이지 싫었다.
정말 선배들 말처럼 어쩌면 하늘아래 별다른 드라마도, 별다른 사랑도 없는 것일까?
드라마와 삶의 본질이란 게 어쩌면 정말 다 별 거 아닌데,
다만 나는 아직 너무 어려 그걸 모르고 있는 것뿐일까?
정말 그렇게 믿고 싶지 않는데,
이쯤에서 우린 어쩌면 모두 백기를 들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사랑이란 건 차라리 철없는 유치찬란임을,
가십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이해를 바라는 건 더 더욱 구차한 신파가 되는 것을,
세련되고 쿨하고 멋진 인생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것조차도,
우린 이제 인정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건지. 아직도 너무 어린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 어느 한쪽에서 여전히 드라마처럼 인생의 반전을,
그와 나의 반전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야 상투적이고, 통속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눈은 어떠냐고? 정말 괜찮은 거냐고, 우리가 오늘 이렇게 또다시 잠자릴 하게 된 게
우리 둘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냐고,
다시 아침이 되고, 서로가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해야할 때,
전처럼 또다시 쎄하게 날 버리고 가버릴 거냐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해도 지금은 다 유치할 거 같아, 하지 않았다.
서우선배 말처럼 인생이 경박한 거라면, 윤영선배 말처럼 그런,
세상도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거 같다.
헤어짐과 이별을 반복하며, 그와 나의 관계도 이미 통속해질대로 통속해지고,
유치할 대로 유치해져버렸다는 것을. 좀 더 멋지고, 세련된 반전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할까 말을 고르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쩌면 더욱 진실 되지 못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남는 건, 통속적이고 유치한 대사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건가?
연인들의 화해란 게 이렇게 싱거울 수 있다니,
이젠 다시 헤어지지 말자는 맹세, 참으로 그리웠다는 고백,
너만을 사랑한다는 다짐도 없이, 이렇게 시시하게 무너져 버릴 수 있다니.
그 때 알았다.
예정된 통속이 유치가 신파가 때론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걸.
[그들의 내레이션] 드라마처럼 살아라 III
- 지오
나는 결코 인생이 만만하지 않은 것인 줄 진작에 알고 있었다.
행복과 불행, 화해와 갈등, 원망과 그리움, 이상과 현실, 시작과 끝,
그런 모든 반어적인 것들이 결코 정리되지 않고,
결국엔 한 몸으로 뒤엉켜 어지럽게 돌아가는 게 인생이란 것쯤은,
나는 정말이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아니 안다고 착각했다.
어떻게 그 순간들을 견뎠는데, 이제 이 정도쯤이면,
이제 인생이란 놈도 한번쯤은 잠잠해져 주겠지, 또다시 무슨 일은 없겠지,
나는 그렇게 섣부른 기대를 했나 보다.
이런 순간에, 또다시 한없이 막막해지는 걸 보면.
- 준영
그날 윤영선밴 다른 어느 때보다 멋졌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드라마를 만들려면 드라마처럼 살라는
정지오의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래 드라마처럼 못살 것도 없지.
끝날 것 같은 인생에도 드라마처럼 반전이란 건 있는 법이니까.
그날 그 순간 그 생각이 든 건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간 지오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드라마의 모든 엔딩은, 해피엔딩밖엔 없다고.
어차피 비극이 판치는 세상, 어차피 아플 대로 아픈 인생,
구질스런 청춘, 그게 삶의 본질인줄은 이미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걸 왜 굳이 표현하겠느냐,
희망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말할 가치가 없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모든 비극이
희망을 꿈꾸는 역설인 줄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 했었다.
나는 이제 그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 말한 선배 너는 지금 어떠냐고.
희망을 믿느냐고.
문제시 꼭 문제제기해줘ㅠㅠㅠㅠㅠㅋㅋ
첫댓글 다시읽게 댓글좀 달아줘 이쁜여시
[그들이사는세상]ㅜㅜ이거넘조아~~~~~~~~~~~
그사세는 진짜 인생을 닮은 드라마같아서 매겨울마다 다시보게된당..이드라마를 보면서 작년의 내가 느낀것과 올해의 내가 느낀게 달라
사진이랑 글 너무 잘했다 이거 진짜 ㅠㅠ 다읽어봄 ㅠㅠ 그사세가 역시 짱이야 ㅠㅠ
겨울되면 생각나는 드라마야...정리 잘해놨당ㅎㅎㅎ조만간 다시 봐야겠구만
[그들이사는세상] 저 담담한 문체가 너무 좋다..ㅠㅠㅠㅠ
[그사세] 아..
그사세...나래이션 텍스트파일로만들어서 읽고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최고의드라마임ㅠㅠㅠㅠㅠㅠㅠ
주준영 진짜 좋아 그사세는 내 인생 최고의 마라드
그사세 나레이션닷글뿅
그사세나레이션! 쩐당...
좋다ㅜㅜ그사세는 몇년이지나도 죠아
[또보자 그사세] 그냥너무좋아 노희경작가님사랑해여ㅜㅜ
[그사세나레이션] 하나하나가 깨알이당
그사세.. 다시 다운받아봐야지 ㅠㅠ
그사세 나래이션짱 ㅜㅜ
그사세나레이션부터오에스티까지진짜버릴게없다....
그사세 나레이션 뿅 두고두고 봐야지 고마워 언니!
오늘 갑자기 그사세 나레이션이 생각나서 찾앗더니ㅎㅎㅎㅎㅎㅎ 두고두고볼께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