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역사는 크게 1700년대 이전-1700년대-1800년대-1900년대로 나뉘어진다.
1700년대 이전
호주 최초의 조상은 파푸아뉴기니섬의 원주민들인데, 그들은 마지막 빙하기에 생성된 육로를 통해 파푸아 뉴기니에서 걸어 왔거나, 아니면 6만년 전에 섬 자체가 호주대륙과 붙어 버렸다는 게 일반적인 통설이다. 이때 호주로 건너왔던 사람들이 호주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유럽인들이 호주로 이주하기 전 원주민들의 숫자는 30만 명에서 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당시 이들은 각각 다른 문화를 지닌 500여 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졌으며, 250여 가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 원주민들은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였다. 계절에 따라 무리 지어 이동하였으며 식량과 사냥에 필요한 최소 도구만을 소유하였다. 식량이 풍부한 곳을 찾게 되면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 밀집해 살았으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메마른 곳에선 물과 식량을 찾아 넓게 흩어져 살기도 하였다.
초기 원주민부족사회는 복잡한 혈족 관계로 이루어졌다. 이들 혈족 안에서 모든 개인들은 각자의 역할과 임무가 있었다. 통치기관이나 권력기관 대신에 드리밍(Dreaming)이라는 부족이념에 의해 조직은 유지되었다. 복잡하고 정교한 이념 체계인 드리밍은 음악, 그림, 조각 및 춤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주 탄생이나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호주 신화 드림타임(Dreamtime)은 구전설화로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1600년대에는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오늘날 호주 대륙의 북쪽과 남쪽 해안에 상륙했고 타즈매니아를 발견하였다.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윌리엄 댐피어(William Dampier)가 1688년 호주 대륙 서북해안에 상륙하였다.
1700년대
1770년 제임스 쿡(James Cook)이 처음으로 호주 대륙의 동쪽 해안을 발견했고 지도를 작성하였다. 그는 호주 동쪽 전역을 대영 제국의 영토라고 선포하고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로 명명하였다.
호주의 유럽 이민의 역사는 1788년 대영 제국의 교도소가 동쪽 해안에 세워진 것이 그 시초였다. 대영 제국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호주를 식민지화 하였다.
l 대영 제국 내에 넘쳐 나는 죄수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
l 동남 아시아와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전초 기지 건설.
1788년 1월 18일 아서 필립(Arthur Philip) 선장이 이끄는 11척의 배가 죄수들과 군인들을 가득 실은 채 보타니 항(Botany Bay)에 닻을 내렸다. 732명의 죄수를 포함한 1373 명 여의 승객들은 8일 동안 수 킬로미터를 북으로 이동하여 포트 잭슨(Port Jackson)에 정착했는데 이 곳이 이후 시드니 라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포트 잭슨의 정착을 기념하기 위해 1월 26일을 ‘호주의 날’(Australia Day)로 정하였으며 매년 이를 축하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다.
1800년대
포트 잭슨을 시발점으로 대영 제국의 호주 식민지화는 가속화 되었고 호주 대륙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1800년대에는 오늘날의 호바트, 브리즈번, 퍼스와 멜번 일대에도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호주는 영국본토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 초기 이주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 이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호주인 특유의 강하고 독립적이며 끈기 있는 국민성이 탄생하게 된다..
대영제국은 최초의 교도소를 호주에 세운 이래 80년 동안 무려 16만 명의 죄수들을 이주시켰다. 여기에 양모 산업의 번창과 금광의 발견으로 1800년대 중반, 대영 제국과 아일랜드로부터 더 많은 이주민들이 호주로 유입되었다. 1852년과 1889년 사이에는 4만 명의 중국인들이 금을 찾아 호주로 건너 왔다.
19세기 말에 호주대륙에는 6개의 독립된 자치 식민지 즉, 뉴 사우스 웨일즈, 빅토리아,테즈매니아, 퀸즐랜드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가 있었는데 각 자치 식민지는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의회와 통치자, 법령을 갖추고 있었다.
1900년대
별개의 독립적 집단으로 존재하던 자치식민지는 1900년대에 들어서 공동의 이해 관계를 위해 연합 체제의 구축을 도모하게 된다. 1901년 1월 1일 호주 연방 정부가 출범하였고, 이것은 이후 ‘페더레이션(Federation)’이라고 불려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호주는 통일 국가로 거듭났고 국민들은 호주인이라는 자긍심과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5장에서 다시 다루겠다.
통일된 국가로서 호주가 처음 직면한 국가적 과제는 세계 1차 대전이었다. 1915년 4월 25일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호주와 뉴질랜드 병사들(ANZACS) 그리고 영국 군대가 상륙하였다. 8개월 동안이나 지속된 이 전투에서 무려 26,111명의 호주 병사들이 전사하였다. 그러나 ANZACS 병사들이 흘린 피는 호주를 하나의 단합된 국가로 더욱 강하게 결집시켜 주었고 호주인으로의 정체성을 각인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앤작 데이(ANZAC Day)는 매년 4월 25일 갈리폴리 전투에서 숨진 호주 병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국경일이다.
거의 백만 명에 이르는 호주인들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였고, 이 와중에 건국이래 처음으로 호주 본토는 외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일본의 비행기가 다윈(Darwin)을 폭격했고 시드니항은 잠수함 공격을 받았다.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호주인들은 외국군의 공격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종전 후 수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이주하였고 5백 9십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은 호주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주게 되었다.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은 호주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오늘날 2천만 호주인들 중 거의 4분의 1은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가장 많다. 최근에는 아시아 국가 출신 이민자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