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축생관(畜生觀)
서구인들은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다양하게 정의해왔다.
생물학에서는 호모사피엔스(Hom0 Sapiens),라고 부른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하위징아(Huiwinga)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라는 신조어를 창안하였다.
'유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놀이와 농담과 여가를 즐기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도구를 만들 줄 안다는 의미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bergson)은 호모파베르(Homo Faber)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슬기'나 '놀이'나 '도구' 모두 인간만의 본질은 아니다.
어떤 동물이든 자신이 처한 독특한 환경에서 몸을 보존하는 놀라운 '슬기'를
갖추고 있고, 강아지든 사자든 먹이가 해결되면 '놀이'에 몰두한다.
또 최근의 동물행동학 연구에 의하면 침판치와 같은 유인원은 물론이고
해달(海獺)이나 이집트 독수리, 갈라파고스의 핀치 새 등 '도구'를
이용하는 동물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인간의 몸 역시 짐승이 몸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얼굴 중앙에 뚫린 입 구멍으로 계속 '먹이'를
넣어야 그 몸이 유지 되고, 어느 정도 몸이 성숙하여 자립능력이 생기면 교미를
통해서 2세를 생산한다. 남의 고기를 먹어야 살고, 내 고기가 먹히면 죽는다.
'고기 몸'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세계에서 최고의 포식자인 인간은
다른 동물의 고기만 먹고 살지, 남에게 먹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약 70억의 전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면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인간이 이렇게 최강의 종(種)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그 몸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수천 년 동안 누적해온 문명의 힘 때문이었다. 다른 동물
과 차별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극도로 발달한 언어 구사 능력에 있다.
침팬치와 인간의 유전인자는 98%가 똑같다고 한다.
고릴라나 오랑우탄과 같은 다른 유인원의 유전자도 인간과 비슷할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이들과 인간을 함께 묶어서 '영장류(Primates)'라고 부른다.
'뛰어난(Prime) 종'이란 뜻이다. 언어를 상실하고 문명의 전수가 끊어진다면
우리 인간은 침팬치나 오랑우탄, 고릴라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문명의 온실' 속에서 수만 년간 진화해온 인간이기에,
온실 밖의 밀림 속에서 생존하는 능력은 오히려 이들만 못할지도 모른다.
불교의 입문적인 관찰법으로 오정심(五停심)이란 것이 있다.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초심자의 거친 감성과
생각을 어느 정도 가라앉혀 주는 다섯 가지 관찰법이다.
분노가 많은 사람은 '모든 생명의 행복을 염원하는'자비관(慈悲觀),
욕심이 많은 사람은 '몸의 더러움을 떠올리는' 부정관(不淨觀),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자신의 호흡을 주시하는' 수식관(數息觀),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무아를 통찰하는' 계분별관(界分別觀), 종교적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이 얽혀서 발생한다는' 연기관(緣起觀)을 닦게 한다.
그런데 인위와 조작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불교를 올바로 알고 수행하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통찰이 하나 더 있다. 축생관(畜生觀)이다.
인간의 몸이든 감성이든 원래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통찰이 철저해질 때, 약육강식의 밀림과 다름없던 인간사회에
평화와 안락의 가르침을 베푸신 부처님의 위대함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