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青山)이 적요(寂寥)한데/최덕지, 1384~1455
청산(青山)이 적요(寂寥)한데 미록(麋鹿)이 벗이로다.
약초(藥草)에 맛들이니 세미(世味)를 잊으도다.
벽파(碧波)로 낚시대 둘러메고 어흥(漁興)겨워 하노라.
어휘 풀이
적요(寂寥): 고요하다
미록(麋鹿): 고라니와 사슴 (여기서는 자연 속의 동물/벗을 의미)
세미(世味): 세상에서 맛들인 그 맛 (속세의 즐거움이나 미련)
벽파(碧波): 푸른 파도
어흥(漁興): 고기잡이의 흥취
시구 구성 및 의미 분석
초장: 청산에서 사슴과 벗하며 지내는 유유자적한 자연 생활을 표현함.
중장: 자연에 묻혀 살며 몸에 이로운 약초를 캐 먹는 즐거움에 빠져, 속세의 즐거움이나 미련(세미)을 모두 잊었음을 나타냄.
종장: 푸른 물가에서 낚싯대를 둘러메고 고기잡이의 흥취를 즐기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의미이자 즐거움임을 밝힘.
작품 해설 및 배경
🏡 당호 '존양(存養)'과 삶의 태도
최덕지는 자연 속에서 본성을 보존하고 기른다는 뜻의 **'존양(存養)'**이라는 당호를 내걸었습니다. 그는 이 당호처럼 전원생활과 학문 탐구 속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았으며, 이 시조에는 현실의 복잡함을 잊고 오직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습니다.
작가 배경 (최덕지, 1384~1455)
**고향과 낙향: 그의 고향은 전주이나,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처가의 고향인 영암 영보촌(영보마을)으로 낙향하였습니다.
**말년: 거창신씨 집성촌인 영암 영보촌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내려온 그는 그곳에서 5년간 살다가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문종이 영정 1본과 유지 초본을 하사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영당을 세우고 영정을 모셨습니다. 후손들은 현재 사당(祠堂)을 지어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