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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일 오늘의 역사
2024년 일본 하네다 공항 항공기 충돌사고
일본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항공(JAL)소속 여객기가 착륙 직후 일본 해안보안청 항공기(MA722)와 충돌한 후 화염에 휩싸여 전소되었다. 이번 사고로 JAL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 및 승무원 379명은 화재 직후 전원 탈출했으나 해안 보안청 항공기 탑승자 5명은 사망했다.
2023년 호주 골드코스트 해변 상공서 헬기 2대 충돌 4명 사망·3명 중상
2022년 남아공 국회 건물, 화재로 소실
2021년 손흥민, 토트넘 통산 100호 골(253 경기 만에) 외국인으로는 처음
손흥민(孫興慜, 1992년 7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윙어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영국에서는 애칭인 "쏘니"(Sonny)로 불린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역대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수상했다. 또한 FIFA 푸스카스상을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수상하였으며 2022년에는 축구 선수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을 서훈받았다
손흥민은 2021년 1월2일 오후(한국 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2020~2021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44분 골을 넣었다. 이로인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통산 100호 골을 기록했다
2010년 중국 베이징 59년만의 폭설(33cm) 20년만의 한파.
2010년 영국 농부작가 존 버거 세상 떠남(91세)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첫 출근
2007년 1월 2일 오전 9시10분(한국시각 밤 11시10분), 뉴욕 맨해튼 50가의 유서 깊은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 추운 겨울 날씨에 외투를 다져 입은 한국인이 동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주위에 무장 경호원들이 그를 에워싸고 함께 걸었다. 렉싱턴애버뉴, 2애버뉴, 1애버뉴…. 20분 뒤 이스트리버 강변의 유엔본부 사무국의 육중한 철제 정문이 열리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이 한국인이 현관에 들어서자 세계 각국 보도진들의 카메라가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반기문(潘基文.62) 8대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첫날 첫 출근 모습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다. 바야흐로 한국인 첫 유엔 사무총장 시대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과는 달리 반 총장은 ‘걷는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 외교관 생활 36년만에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 된 반 총장은 세계의 평화를 증진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1991년에 유엔에 가입한 한국의 첫 사무총장이 된 반 총장은 5년간 유엔을 이끌었다.
2007년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국장
제럴드 포드(Ford) 미 제38대 대통령의 국장(國葬)이 2007년 1월 2일(현지시각) 워싱턴의 국립성당에서 전·현직 대통령과 포드 행정부 당시 고위관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포드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날 유년시절을 보낸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로 옮겨져 포드기념관 옆에 매장돼 6일간의 장례행사를 마친다.
114년 역사의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국장이 열린 것은 1969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Eisenhower), 2004년 로널드 레이건(Reagan)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2007년 최초 여성 헬기조종사는 김복선 예비역 대위
‘국내 최초의 여성 헬기조종사’는 유방암 병력이 문제가 돼 지난해 말 전역 처분을 받았던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아니라 김복선(52) 예비역 대위인 것으로 한국항공학교를 통해 2007년 1월 2일 확인됐다.
김복선 예비역 대위는 피 전 중령에 대한 보도가 있은 후 사실관계를 묻는 사람이 많아 바로 잡기 위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78년 8월 여군 장교로 임관한 후 단장부관·영어교관 및 군수참모부 FMS담당장교로 근무했다.그 후 1981년 7월 11일 육군항공학교에서 회전익12기를 졸업하면서 ‘여성 최초 헬기조종사’로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일간지와 방송 등에 등장하면서 앞서가는 여성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1981년 7월부터 1985년 3월까지 3년8개월간 700여 시간의 비행 기록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누군가의 투서를 공정하지 않게 처리한 군 조직의 결정에 염증을 느껴 떠났다”고 말했다
2003년 중국, 세계최초로 자기부상열차 시범운행에 성공
세계 최초의 상업용 자기부상(磁氣浮上)열차가 중국 상하이(上海)에 건설돼 시범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상하이 자기부상열차는 상하이시 지하철 2호선 룽양루(龍陽路)역~푸둥 국제공항 간 31㎞ 구간을 달리며, 시범운행에는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동승했다. 독일은 이 자기부상 열차의 차량제작과 운영기술을 제공했다.
자기부상열차는 자석의 반발력을 이용, 차체를 궤도 위 약 1㎝ 가량 띄우고, 추진동력도 자석 반발력에 의한 특수모터를 사용해 궤도 위를 미끄러지듯 고속 주행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간 첨단기술력과 엄청난 투자비, 상용화에 필요한 수요창출의 불확실성 등으로 상용화(商用化)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은 지난 2001년 3월 착수됐으며, 그동안 100억위안(약 1조5000억원)이 투자됐다.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당 공사비는 3억위안 정도로, 상하이시 지하철 공사비(7~8억위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상하이시 자기부상열차는 31㎞ 구간을 8분 만에 도달했으며, 평균 시속 300㎞에 최고 430㎞를 기록, 기존 고속열차 등 최첨단 궤도열차 속도를 크게 능가했다. 홍콩 일간 밍바오(明報)는 “시속 300㎞를 달리더라도 정지하는 데 1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으며, 궤도이탈이나 전복, 추돌사고 등 안전성 문제도 기술적으로 해소됐다”고 분석했다. 이 자기부상열차의 최고 시속은 550㎞이다.
2001년 중국-대만 직항로 52년 만에 개설
1949년 이후 단절됐던 중국과 대만의 직항 바닷길이 2001년 1월 2일 반세기 만에 다시 열렸다. 이날, 대만의 마조도를 출발한 대마호가 3시간 반 뒤 맞은 편에 있는 중국 복건성의 복주항에 도착함으로 중국과 대만이 52년 만에 직항로를 연 것이다.
마조도 남쪽에 있는 금문도에서도 이날 태무호 등 선박 2척이 직항길에 올라 중국 샤먼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직항은 대만의 마조도-금문도 2개 섬과 중국의 복주-하문 2개 항구 사이에 개설됐다.
대만 중국시보는 “정부가 마조도-금문도 2개 섬이 복건성-하문과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소규모 무역을 양성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정부가 대만의 제의를 받아들였으며금문도와 마조도 주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지난 5월 취임 후 ‘소삼통(小三通)’을 주창해왔다. ‘소삼통’이란 중국과의 전면적인 삼통(통상- 통항-통우) 실시에 앞서 우선 중국과 인접한 일부 섬들에 한해 3통을 실시한다는 것. 한편 중국 관광객을 태운 여객선이 2월 6일 푸젠성 샤먼을 떠나 대만의 진먼섬에 도착해 대만의 ‘소삼통’ 정책에 호응했다.
1992년 미국 언어학자 한스 쿠라트 사망
1991년 정부 소련진출 5대사업 선정
1982년 중고교생 머리․교복 자율화
1982년 1월 2일을 기해 전두환 정부는 중고교생들에 대한 두발 및 교복 자율화 조치를 실시했다.
일제강점기 잔재를 없애자는 각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획일화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길러 준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머리 모양은 그해 신학기부터 완전히 자율화됐고 교복 자율화는 이듬해부터 실시됐다.
하지만 자율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제약은 있었다.
이를테면 남학생은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깃에 닿는 장발은 금지됐고 여학생도 파마나 염색을 하면 안 됐다.
1980년 중고교를 다닌 학생들에게 혁명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 두발 및 교복 자율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율과 규제를 적당히 섞은 형태로 변모해 왔다.
1990년 빈부(貧富) 격차로 생기는 위화감을 없애고 애교심을 기른다는 차원에서 교복 착용을 적극 권장하라는 정부 지시가 떨어진 이후 대부분의 학교는 교복 착용을 부활했다.
하지만 기존의 시커먼 교복이 아니라 산뜻한 색상과 현대적 디자인의 교복으로 탈바꿈한다.
머리는 자율화 이후 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해도 학생들의 불만은 여전한 모양이다.
작년 일부 중고교에선 두발 자율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함께 온라인 서명운동까지 펼쳐졌으니 말이다
1962년 속초항 입구해상 조난 사고
1962년 1월 2일, 명태가 잘 잡힌다는 소식을 듣고 속초항에서 어부 1,600명이 244척의 어선으로 명태잡이를 하던 중, 8시경부터 갑자기 파도가 일기 시작하였다. 어선단은 조업을 그만두고 귀항을 서둘렀으나, 13시 30분경부터 20시까지 여러 척의 배가 전복되었다. 배들은 사람들이 육지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13시 40분부터 17시 30분 사이에 발생한 파도로 방파제 앞에서 전복, 침몰되었다. 큰 파도에 당황한 어선들이 항구에 모여 있다가 몇몇 배들이 입항하는 것을 보고 모여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침몰한 배는 5척, 희생자는 24명으로 파악되었다
1963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 독자적 핵군(핵무기 관련 군대)창설 선언
1959년 최초의 달 탐사선 루나 1호 발사
루나 1호는 소련의 달 탐사선으로, 세계 최초로 달 착륙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달에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나서 이미 달 탐사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58년 이후에는 달에 착륙시킨 후 조사를 진행할 루나 계획을 실시하였다.
맨 처음 3번은 실패하였으나, 4번째 발사 시도였던 1959년 1월 2일에 발사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달 착륙을 시도하다가 달 근방 5,995 km 까지 접근하였다.
현재 루나 1호는 궤도를 바꾸어 지구와 화성 사이의 궤도를 돌고 있다.
탐사선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안테나 5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된 탐사 장치로썬 자력계나 방사능 계수 장치등이 탑재되었다
1959년 영국 첫 원자력잠수함 건조
1956년 민정당 발기(최고위원 이범석, 장택상)
1951년 간행물 사전검열제 시작
1946년 공산당, 신탁통치 지지선언
1946년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중앙위 반탁결의문 발표
1942년 일본군, 마닐라 점령
1937년 경기도 파주 부근 진도 3의 지진 발생
1935년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 개최
1932년 일본, 괴뢰정부 만주국 수립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1932년 오늘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웁니다.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다가 폐위된 푸이를 만주국의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
장춘을 수도로 정한 일본은 장춘의 이름을 "새로운 수도"라는 뜻의
"신경(新京)"으로 바꿉니다.
일본은 신경에 대규모 건물을 세우는 등 만주국의 위용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괴뢰정부의 허수아비 왕이었던 푸이는 1945년 8월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주국도 붕괴됐습니다.
1929년 미국-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보호협정 조인
1921년 서재필, 미국 대통령과 요담
1920년 미국의 생화학자 아이작 아시모프 출생
1905년 일본-러시아 격전, 일본군 뤼순 점령
1896년 소련의 영화감독 베르토프 출생
1886년 노비의 세습제 폐지
1886(조선 고종 23) 독일회사인 세창양행으로부터 은 10만량 차관
1872년 미국의 발명가 알버트 반스 출생
1870년 독일 반전평화 조각가 에른스트 바흘라흐 출생
1822년 독일의 수리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 출생
1788년 조지아주가 미헌법상의 4번째주로 승격
1746년 페스탈로찌 출생
1492년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 그라나다 왕국 점령 · 스페인 통일
1492년 1월 2일, 이슬람이 지배하는 그라나다 왕국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후계자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멸망함으로써 스페인이 통일됐다.
1482년 그라나다를 향해 포문을 연지 12년 만이었다. 이로써 스페인은 780여 년 만에 정치적, 종교적 통일국가가 됐다.
이사벨라 여왕이 태어날 무렵, 스페인은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나바라의 4개 왕국으로 분열돼 있었다. 각각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왕위를 물려받은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가 1469년에 결혼하면서 스페인 통일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결혼 후 1474년 의붓오빠 헨리 4세에게 카스티야의 왕위를 물려받은 이사벨라 여왕은 5년 뒤 아라곤의 왕이 된 남편과 함께 카스티야 귀족들의 권력을 무력화 시킨 후에 그라나다를 손에 넣어 스페인 통일을 이루어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그라나다 왕국의 알람브라 궁전은 이 전쟁에서 폐허가 될 뻔한 위기를 넘겼다.
이사벨라 여왕이 자금을 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이 해에 이뤄졌다. 이사벨라 여왕은 종교를 탄압한 군주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종교재판소를 통해 비가톨릭 교도를 추방하거나 개종시키면서 2,000여 명을 화형 시키기도 했다.
이후 이사벨라 여왕은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식민지를 둔 강력한 스페인 왕국을 남기고 1504년 11월 26일 사망했다.
그녀가 꿈꾼 유럽 통일제국은 이후 그의 외손자인 합스부르크가의 카를 5세가 완성했다
1484년 플루타크 영웅전, 이탈리아 인쇄업자 니콜라 젠손에 의해 출판
1410년 태조실록 편찬 시작 (1413년 완성)
757년 안록산 피살
당나라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킨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킨지 2년만인 757년 1월 2일 아들 안경서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안록산이 적자인 자신을 폐하고 애첩의 아들 안경은을 후계자로 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돌궐족 출신인 안록산은 절도사였지만 익살스럽고 털털한 성격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마음을 사로잡아 언제든 입궐할 수 있는 권세를 누렸다. 양귀비의 양자가 된 안록산은 입궐만 하면 밤새워 머무르는 일이 잦아 양귀비와의 추문설도 파다했다.
범양 절도사로 근무하던 안록산은 마침내 그를 경계하는 ‘재상 양국충을 토벌한다’ 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양국충은 양귀비의 사촌오빠였다. 파죽지세로 낙양을 점령하고, 장안으로 들어오는 요충지 동관도 함락했다. 불안을 느낀 현종은 양귀비와 황족, 대신들을 이끌고 장안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으나 수행하던 군사들이 책임을 물어 양귀비를 주벌하라고 압력을 가하자 현종은 눈물을 삼키며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했다.
안록산은 양귀비가 죽은 뒤 10일 후 장안도 함락했다. 그러나 이날 아들에 의해 안록산이 생을 마감하고 반란군도 힘을 잃자 당나라 군사는 장안을 재탈환했다. 반란군 잔당들은 패주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763년 모두 평정됐다.
612년 수양제 고구려 침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