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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씨앗에서 나무가 생긴다고 할 수 없다.
법무아 추천 0 조회 46 25.03.25 10:20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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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3.25 11:58

    첫댓글 "세속적•관습적 명언(名言)으로서 씨앗에서 나무가 생긴다"는 무슨 의미이고, 왜 그런 말이 있어야 하는데?

  • 작성자 25.03.25 12:16

    귀류중관에선 제법은 가유(假有)고 오직 이름뿐이라고 말하니까요

  • 25.03.25 12:50

    @법무아 푸헐. 긍께 그 말의 의미가 뭐고, 그 말이 왜 있냐고.

    그냥 없다 등으로 안하고, 왜 임시니 뭐니 그딴 소리 하냐고, 왜 그런 거냐고.

  • 작성자 25.03.25 12:56

    귀류중관은 자성 있는 존재와 존재, 자성 없는 존재와 아예 없는 무를 구별하기 때문에 그냥 없다 등으로 말 안 하죠

  • 25.03.25 13:03

    그러면 왜 "씨앗에서 나무가 생긴다"에 딴지를 걸어?

    상대는 가유를 말하면 안되는 거여?

    오직 님만 가유를 말할 수 있는 거여?

  • 25.03.25 13:07

    번뇌가 준다는 이야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가 있으니, 그 이후부터 줄창 번뇌가 준다느니 어떠니...

    자기는 생멸에서 더 나아가 (번뇌등) 증감까지 이야기하면서 말이지... 도대체 왜 그리 살까...

    님의 배배꼬인 심사는 일단 던져두고, 공부부터 하라고. 오케이?

  • 25.03.25 13:08

    '자성 없는 존재'와 '아예 없는 무'를 구별...

    '자성 없는 존재'는 뭐고 '아예 없는 무'는 뭔데?

    열반은 자성 없는 존재여?

  • 25.03.25 13:32

    ===

    잘 봐바.

    인중유과론으로 생각해 보자.

    인중유과론은 원인에 결과가 선재해. 원인에 이미 결과가 있어. 원인과 결과 사이의 동일성이 상정된다고.

    그러니 인중유과론의 입장에서도,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거야. 이거는 중론과 같지?

    얼마전 적었듯, 원인에 이미 존재하던 것을 우리가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결과라고 이름할 뿐이야.

    그렇게 인식하게 되는 흐름을 '전변'이라고 이름해.

    원인이라 인식되던 것이 전변하여 결과라 인식하는 것으로 있을 뿐인 거여.

    여기서 인중유과론이 진리라고 가정해 보자.

    님이 맨날 말하는 중론 논리로 인중유과론이 틀리다고 한번 반박해 봐.

    뭐라고 반박할 수 있어?

  • 25.03.25 13:50

    ===

    또 함 봐봐.

    얼마전 인중무과론도 적었으니까. 그거도 한번 보자고.

    인중무과론의 입장에서도, 얼마전 적었듯, 원인과 결과라는 말은 넌센스야. 동일성 상정 불가능이라고. 이미 착각이라고. 이거는 중론과 같지?

    여기서 인중무과론이 진리라고 가정해 보자.

    역시 님이 맨날 말하는 중론 논리로 인중무과론이 틀리다고 한번 반박해 봐.

    뭐라고 반박할 수 있어?

  • 25.03.25 13:52

    ===

    현상을 보라고. 이치를 따지는 생각을 하라고.

    퍼다나르는 것은 퍼다나르는 것일 뿐이야.

    외운 거는 외운 거일 뿐이고, 망상은 망상일 뿐이야.

  • 작성자 25.03.25 19:21

    님은 댓글에서 직접적인 알아차림, 빠라마타 등을 말하는 거로 봐서 제법을 가유로 보는 게 아니라 실유론자의 입장에서 "씨앗에서 나무가 생긴다"를 말한다고 생각되니까 딴지를 거는 거야. 저번에 알아차림이란 행위도 실재가 아니라고 댓글 다니까 반대했잖아?

    수행으로 번뇌가 줄어든다는 말은 불교 일반적으로 타당한 말이고, 생멸이든 번뇌의 증감이든 가유로서 말하는 거야. 배배꼬인 심사는 댓글 말투만 봐도 님한테 해당하는 걸 알수있는데,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상대방에게 전가해서 말하는 걸 심리학적 용어로 '투사'라고 해. 중관의 견해에 대해서 님이 묻고 내가 알려주는 입장인데 상대방한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도 적반하장이지?

  • 작성자 25.03.25 19:24

    열반은 자성 없는 존재고, 자성 없는 존재 중 원인·조건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무위법이야. 원인·조건에 의지해서 생긴 존재와 원인·조건에 의지하는 존재는 차이가 있어. 토끼 뿔, 석녀의 아들, 독립적인 자아 등의 예시가 자성으로 존재하는 것인 동시에 아예 없다고 말해.

    저번 글에서 적었듯이 '결과가 이미 존재한다면 원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겠는가'가 인중유과에 대한 반박이고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인은 무엇의 원인이 되겠는가'가 인중무과에 대한 반박이야. 그리고 착각하나본데 인중무과의 입장에서 원인과 결과는 넌센스가 아니야; 원인과 결과 사이의 동일성을 상정하는 건 인중유과의 전제인데, 그 전제를 인중무과의 입장에다 적용시키는 건 맞지 않아. 그런 엉터리 논증은 중론 논리도 아니야.

  • 25.03.25 21:03

    내가 위에 [ 인중유과론의 입장에서도,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거야. ]라고 적었잖아. 또한 전변이라는 개념도 설명했고. 전변한다고.

    그런데 무슨 [ 결과가 이미 존재한다면 원인은 무엇의 원인이 되겠는가? ]가 인중유과의 반박이야?

    또한 [ 인중무과론의 입장에서도, 얼마전 적었듯, 원인과 결과라는 말은 넌센스야. 동일성 상정 불가능이라고. ]라고 적었어.

    그런데 무슨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인은 무엇의 원인이 되겠는가?]라는 말이 인중무과의 반박이야?

    ===

    열반은 자성 없는 존재고, 자성 없는 존재 중 원인·조건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무위법...

    열반은 자성이 없고 원인 조건에 의지해 존재한다...그게 님이 지금껏 딴지 걸며 말한 거와 조화를 이룬다고 봐?

    아니 얼어죽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면서... 열반만 원인 조건에 의지하는 구만... 열반도 가유야?

    원인 조건에 의지한 거는 무상해. 괴로움은 원인이 있어, 조건이 있고...

    물론 우리가 수행하면 괴로움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논리 구성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선해할 수 있기는 한데... 하하하

    내로남불 끝판왕이구만...

  • 작성자 25.03.25 21:22

    인중유과의 입장에서 원인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말이 틀렸다는 건 인중유과의 동일성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귀결되는 당연한 이치고, 내가 적은 문장은 인중유과의 전제 자체가 틀렸음을 논증하는 거야. 구분을 못하네.

    인중무과에서 원인과 결과는 넌센스라는 건 인중유과의 전제로 인중무과를 해석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틀린 문장이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는 말은 자성이 없음을 말하는 거고, 원인•조건과 열반의 관계를 말할 땐 가유로서 말하는 거야. 열반도 가유지.

    원인 조건에 의지해서 생기는 것(유위법)이 무상한 거고, 원인 조건에 의지만 할 뿐 생주이멸하지 않는 건 항상한 무위법이야.

  • 25.03.25 21:29

    @법무아 원인 조건에 의지만 할 뿐, 생주이멸하지 않는 것...

    자성이 없다며... 불교의 가법만 놓고보더라도, 중론등 반야부 속제를 놓고보더라도, 의지하는데 생주이멸하지 않는다고?

    하물며 중론등 반야부 진제에서는?

  • 25.03.25 21:30

    ===

    내가 반문한 것에 대한 일차적 답은 아주 쉬워. 그런데 그거를 답을 못하거든.

    기초로 돌아가서... 다른 분들도 위에 적은 내용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냥 (일차적) 답을 적습니다.

    여러 차례 말했지만, 중론은 기본적으로 연기의 의미를 밝히는 겁니다.

    불교의 인과법 즉 연기법...인(연)과, 연기...

    말이 나왔으니 적는데, 빠라마타라는 거는 기본적으로 알아차림의 대상을 칭하는 거... 경험하는 것...

    원인이나 결과는 판단작용... 여기서 원인이나 결과라는 판단을 경험한다고 하면 안되요.

    어째서 그런가?

    원인이나 결과라는 판단은, 원인 그 자체의 경험과 결과 그 자체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로, 시계 소리를 들었을 때, 경험한 거는 시계소리지... 시계 소리가 원인등이라는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시계소리가 원인등이라는 판단을 한 것, 나는 관대하니까 굳이 그런 거에도 경험이라는 포장을 해주자면, 그거는 판단의 경험...

    너무나 당연히 '시계 소리'의 경험과 '그 시계 소리가 원인이라는 판단'의 경험은 다른 거라고... 참... 말쟁이들 때문에 적는 것만 쓸데 없이 어려워져요. 코미디...

  • 25.03.25 21:42

    .

    서술 편의상, 그냥 존칭 생략합시다.

    논지로 돌아가서, 불교의 인과라는 말도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 거라. 원인과 결과를 합쳐 인과...

    원인과 결과? 고대 인도에서는 동일성을 상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표현이야. 불교라도 마찬가지...

    원인을 조건으로 결과가 있다... 원인이 있을 때 결과가 있다. 이거 연기법이잖아.

    중론은 그 언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는 거야. 원인과 결과라는 말을 쓰지만,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고... 동일성을 상정할 수 없다고... 연기법에서 그렇다고...

    그렇다면 원인이라 이름하는 것 없이 결과라는 것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야. 연기법에서 그렇다고... 그래서 중론은 관십이인연품도 시설하고 있어.

    연기가 인중유과나 인중무과를 타파하므로, 기본적으로 연기의 의미를 밝히는 중론은 중론 그 자체의 논리에 앞서, 연기에 의해서 인중유과나 인중무과가 타파되는 거라.

    인중유과나 인중무과가 진리라면, 연기는 틀린 거야. 그런즉 연기에 터잡은 중론도 모두 개소리가 돼.

    다만 우리네 불자는 연기가 옳다고 믿고, 그것을 나름 검증해서 확신을 가진다고.

  • 25.03.25 21:52

    .
    어떻게 확신을 가지는가?

    시계 소리 등에서...

    시계 소리를 들으려는 의도 즉 행온 곧 원인과 시계소리라는 색온 즉 결과 사이에 동일성을 긍정할 수 없다고.

    무엇의 관점에서?

    '법' 즉 '구체적 사실' 곧 '경험' 이른바 '빠라마타'의 관점에서...

    하지만 들으려는 의도 즉 원인을 떠나 지금 듣는 바로 이 시계 소리라는 결과도 없어.

    연기법이 옳다고...

    말쟁이들 때문에 의도와 시계소리... 행온과 색온을 대비시켰어.

    강학상, '시계 소리를 들으려는 의도의 마음'을 원인으로 '시계 소리를 듣는 마음'이라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해.

    원인도 마음이고... 결과도 마음이라고...

    다만 '시계 소리를 들으려고 의도'와 분리해 '그 의도의 마음'을 따로 알려고 한다거나, '시계 소리'와 분리해 '그 소리를 듣는 마음'을 따로 알려고 하면 안돼. 그거는 이미 딴 사실들이라고... 그거는 분리 몬해.

    분리몬하기에 혼동일으키지 말라고 의도와 시계소리만 말하는 거고, 그게 경험에 합치해.

    어쨌든 원인도 마음, 결과도 마음이기에... 인습적 관점, 세속적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마음이라는) 동일성을 상정해 줄 수 있고 그런즉 인과라고 칭해주는 거야.

  • 25.03.25 22:15

    .
    연기에 따라 성립한 것... 그것을 우리는 공이라고 그래.

    의도와 소리... 의도에는 소리가 없고 소리에는 의도가 없지만... 의도가 있어 소리가 있어.

    소리가 그 고유의 성품이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의도가 그 고유의 성품이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고유의 성품이 없고 그것이 없으면 없는 이것을 어떻게 있는 거라고 하겠어?

    공이라는 것은 연기의 두 변의 성품이고, 즉 연기의 성품이야.

    연기의 성품이기에 연기를 부정하면 안돼. 그래서 중론에 관십이인연품이 있다고... 관십이인연품이 왜 있는지 생각하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고...

    공공은 뭐냐?

    여기서는 말이 많이 나올 수 있어.

    쉽게 이해하는 방식은, 참으로 공하다면 공하다는 것도 없어야 한다... 이 정도야.

    더 쉽게 말해, 연기는 방편이라는 것이고...

    좀 어렵게 이해하자면, 우리의 조건에서(우리 인간의 조건에 맞춰) 연기의 모습이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는 형식 즉 모습으로 시설되었다고 말해.

    그리고 화엄종에서는 공공을 화엄이라고 그래.

  • 25.03.25 22:25

    ===

    반야부의 논리는 말이야... 하하... 이게 말이야... 중론 일부 떼어와서 마구 적용시켜서 되는게 아니야.

    말에 먹힌다고...

    지 딴에는 뭐나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말장난으로 반박하는 거 같지만... 그거는 그냥 내로남불할 뿐이여.

    한번도 법 즉 구체적 사실 곧 빠라마타를 제대로 살펴 본 적도 없는 놈이 반야부로 논쟁한다?

    그게 허공의 탭댄스 전문가여.

    부처님이 인정한 사리푸타도 목갈라나도 모두 빠라마타를 살폈어.

    빠라마타를 살피고 나서야 니가 살핀 빠라마타가 뭔지 논할 수 있는 거지...

    관념만 가지고 말장난만 치는 애들이 무슨 반야부를 논한다는 거야?

  • 작성자 25.03.25 22:55

    중관의 진제는 무자성(공성)을 말하는 거고, 속제는 실재는 아니지만 작용하는 힘을 가지는 가유로서 사물을 말하는 거야. 비유로 꿈이나 환영이 자주 언급되는데 밑에 설명과 같아.

    "궁극적 의미에서는 사물이 진실[실상]이 아니다. 그러나 인과관계[연기]가 있다. 그것은 꿈과 같다: 즉, 끔찍한 살인자가 나타날 때 두려움을 경험하고, 그를 물리칠 영웅이 도착할 때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코끼리 환영을 만들어서 서로 싸워 마침내 한 쪽이 다른 쪽을 이기게 만드는 환술사와 같다. 이들 코끼리 두 마리가 인과관계에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환술의 환영이다. 그것들은 원인으로부터 생겨나고, 서로 간에 그리고 환술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결과를 생기게 한다. 청중 중 일부는 그것을 즐길 것이고 패배한 코끼리 쪽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기분이 언짢을지 모른다."

  • 작성자 25.03.25 22:56

    중관에서 번뇌의 소멸(멸성제•해탈•열반)은 도에 의지해서 존재하지만, 도에 의지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물론 이 문장은 속제 측면에서 말하는 거야.

    중관의 연기법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1. 원인과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인과적 연기 2. 크다 작다 등의 상대적인 관계 3. 가립(무자성)이야. 세 가지 모두 다른 것에 의지해서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뒤로 갈수록 범주가 넓어짐. 유식의 연기법엔 위의 1번인 의타만 해당하고 원성과 변계는 연기법으로 인정 안 해.

    진제 즉, paramartha satya는 중관에서 자성이 없음을 말하는 거고, 테라와다의 빠라마타는 4위82법이고, 유부의 빠라마타는 5위75법이야. 유식에선 삼성 중 원성실성과 의타기성만 진실로 성립한다고 말하고.

  • 작성자 25.03.25 22:57

    반야부의 논리를 해석하는 견해도 다른 학파는 제외하고 중관 안에서만 경량부 중관과 유가행 중관, 자립논증 중관과 귀류논증 중관 등에서 차이가 있어.

    예전에도 말했지만 불교를 혼자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연기법이든 빠라마타든 반야부의 논리든 학파별로 다양한 견해가 있으니까 교학적으로 제대로 공부를 해. 다른 게 넌센스가 아니라 티벳불교는 관심 없다면서 중론은 안다고 주장하는 게 넌센스야.

  • 25.03.25 23:10

    그러니까 빠라마타가 실재하지 않는다면서 허공의 탭댄스나 추지 말고, 빠라마타를 살피고 빠라마타의 공을 논하라고. 오케이?

    빠라마타 말하는 이에게 빠라마타는 실재하지 않는다면서, 스스로 빠라마타를 살피려는 노력조차 안하지 말고 말이야.

    공이 게으름 피우는 거 자랑하라고 시설된 말이 아니라고.

    빠라마타가 뭔지, 원인과 결과의 의미가 뭔지, 하나도 모르면서 닥치는 대로 업어만 와가지고는 대나깨나 우이구 참...

    스스로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응?

  • 25.03.25 23:15

    봐라...

    중론...

    의도와 소리... 의도에 소리가 없고 소리에 의도가 없고... 얼마나 간명해?

    뭔 말이 그리 많아.

    심오하게 하라는 것도 아니야.

    자기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 그거라도 해서 빠라마타를 가지고 이해해 보라고, 어려울게 엄어.

    당연한 말이라고.

    물론 그런 발상, 즉 그러한 방향의 지혜를 중론등의 도움 없이 형성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말이야.

    단지 그럴 뿐이라고...

    빠라마타를 살피면 중론을 이해하기 쉬워, 뜬구름 소리도 아니고...

    빠라마타 즉 사실을 가지고 말하는 이에게 뜬금포, 딴지, 내로남불, 허공의 탭댑스 안한다고.

    넷 초창기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사실을 보고 생각하라고... 그래야 이해를 한다...

  • 작성자 25.03.25 23:25

    빠라마타에 대한 정의조차 얼렁뚱땅 뇌피셜로 내려놓고는 뭘자꾸 살피래; 니가 말하는 빠라마타가 어느 학파에서 말하는 빠라마타인데?

  • 25.03.25 23:39

    화상아 화상아.

    까야가따수따만 봐도 내가 적은 거처럼 시설돼.

    경험하는 거, 일체 오온 등등 ... 이게 기본적으로 빠라마타야.

    문맥상 빠라마타가 상좌부의 진제를 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해.

    그런데 상좌부의 진제란 결국 일체, 즉 알아차림의 대상이야. 개념 말고...

    까야가따수따?

    소를 알아차릴 수는 엄어,

    도축업자가 잘 도축하여 분류하듯, 행자는 빠라마타를 파악해.

    너 아는 체 하는 거 병이다, 그런데 너 정말 기초 하나도 없다.

    위에 내가 반문한 거에 대한 대응도 그렇고.

    기초 하나도 없는 거는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아는 체하고 기초를 공부할 생각도 안하고 어려운 말 업어오고 나열하며 허공의 탭댄스 추는 거야.

  • 작성자 25.03.25 23:54

    상좌부라면 근본적으론 청정도론에 근거해서 사마타 선정을 바탕으로 깔라빠와 심장토대를 통해 식별되는 4위82법의 각각의 미세한 물질과 심찰나만 빠라마타야. 알아차림의 대상이라고 얼렁뚱땅 다 빠라마타로 치는 게 아니라.

    사마타 없는 순수위빠사나로 분류되는 마하시 수행처와 같은 곳도 청정도론의 16가지 위빠사나 지혜 중 생멸의 지혜 이후부터를 진정한 위빠사나를 시작한 자라고 부르지, 그냥 알아차림•사띠한다고 다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야.

    내가 몇 번째 틀린 개념들 고쳐주고 있는데 누가 누구보고 아는 체 한대;

  • 25.03.26 00:06

    봐라. 니는 [경]도 부정한다. 그래서 청정도론이 일체를 빠라마타라고 안해?

    이해도 몬한 거를 검색해서 업어와봐야 제대로 반박이 되는게 아니여.

    너 추한 행위 자꾸 하지 마라. 그게 너 자신이다. 다른게 너가 아니다.

  • 25.03.26 00:12

    한번도 지적이나 반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한 적이 없어. 정말 한번도 없어.

    너 스스로 몰라? 모를 수가 엄는데. 자기 보호 기제로 포장하고 정당화했을지언정, 너 스스로는 알고 있어.

    넷에서 이런 거 돈 되는 거 아니다. 돈 안되는 거에도 그러는데, 돈 되는 거에는 어떻게 할 거 같아?

    돈이 말이야... 이거 정말 준엄한 거야. 사회생활하니까 알잖아, 그렇지?

    돈 안되는 거에서는 가급적 그러지 말려고 해라.

    정말 돈 안되는 거야, 코딱지만한 까페라 알아줄 놈도 엄어. 슈퍼챗 쏴주는 사람도 엄다고.

  • 작성자 25.03.26 00:35

    니가 뇌피셜로 경을 해석한 것을 부정하는 거지, 경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상좌부 기준으로 했을 때, 일체가 빠라마타라고 해서 너가 말하는 수준의 알아차림의 대상이 다 빠라마타라는 게 아니야. 위에 댓글의 사마타 선정을 바탕으로 한 각각의 물질과 심찰나 식별이나 위빠사나 생멸의 지혜 이후의 관찰도 일종의 알아차림이거든. 쉐우민 쪽 테라와다 스님 중 한 분은 심지어 빠라마타는 이해의 대상이지 절대 경험될 수는 없다고도 말해.

    이제 교학으로든 논리로든 안 되니까 늘 그랬듯이 억지 부리기 전략으로 마음 먹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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