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연통 청소부가 되어...
2024년 甲辰年 1월 11일 목요일
음력 癸卯年 섣달 초하룻날
잔뜩 찌푸린 흐린 하늘과 함께 오늘을 열었다.
속담에서 말하는 사흘 굶긴 시어머니 상(像)이다.
오늘 또다시 눈소식이 잡혀있다. 그것도 밤늦게...
하루가 멀다하고 눈이 내리는 요즘은 너무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촌부가 느끼기에 그렇긴 하겠지만
올겨울 산골의 날씨변화는 정말이지 유난스럽다.
눈이 내린 다음날, 낮에는 화창했다가 밤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한파가 몰려오고, 다음날엔
또 눈소식이 있다. 이러기를 여러날 반복이 된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영하 13도의 기온에다
눈소식을 가지고 하루가 시작된다. 하늘의 뜻이라
어쩔 도리가 없음인데 또 혼자 궁시렁거린다.
요즘은 없어진 직업이 아마 굴뚝 청소부가 아닌가
싶다. 어릴적 서울 세검정에서 살던 때 이따금씩
이런 소리를 들었다. "뚫어~ 뚫어~ 굴뚝 쳐~!!!"
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굴뚝 청소부 아저씨,
어떤 아저씨는 꽹과리나 징을 치며 다니곤 했었다.
바로 이 촌부가 겨울이면 서너 번 그때 그 분들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굴뚝이 아닌 연통 청소부가
된다. 산골살이를 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하게
되고 온갖 직업을 두루 체험, 섭렵하게 되는 것이다.
목수, 보일러공, 지하수 관리, 정화조 관리등등...
이런 경험과 체험은 아무나 못하는 것이겠지 싶다.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는 난로, 난롯불로 겨울철의
난방을 하다보니 연통 청소는 주기적으로 해야만
한다. 우리 난로는 그나마 연통이 짧고 높지 않아서
연통 청소를 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긴 사다리를
안팎으로 하나씩 펼쳐놓고 오가면서 타고 올라가
청소를 해야한다. 일정한 장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긴 막대기에 면봉처럼 못쓰는 수건을 말아 끈으로
고정시켜 안에서 밖으로, 아래에서 윗쪽으로 밀어
그을음을 털어내는 작업이다. 커다란 비닐봉투를
매달아 그을음이 집안이나 마당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나름 생각을 해낸 방법이다. 그을음은 밭으로
보내 거름이 된다. 이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시커먼스가 된다. 가드맨 방진 작업복을 입긴해도
얼굴과 손은 그을음이 잔뜩 묻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는 연통 청소가 조금 늦었다. 연말쯤에
하자는 아내의 말에 잘 마른 장작이라서 괜찮다고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다.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촌부가 불을 지핀다. 이따금씩 아내가 불을 지피면
연기가 안으로 낸다며 연통 청소를 안해 그렇다고
투덜거렸다. 한다, 한다 하면서 차일피일 미뤘더니
더 이상은 안된다며 어제 오후 엄명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춥다고 미루고 눈이 왔다면서 미뤄놓으면
언제 할 것이냐고 눈살 찌푸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만반의 준비로 연통 청소를 마무리했다. 예로부터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는다'는
옛 속담이 틀림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오늘 아침에
난롯불을 지펴보니 불이 잘 붙고 연기가 내지않고
불꽃이 아주 선명하고 참 곱다. 뒤늦게 반성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할망구 말 잘 듣는 영감탱이가 돼야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되내이며...
♧카페지기 박종선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 ♧
첫댓글
촌부님
저 세검정 사는지 오래인데
한번도 못 들어 보았답니다~
수고로움으로 활활 연소가 잘 되겠네요.
오늘도 즐겁고 행복 가득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그러세요.
제가 1968년 세검정 부암동에 살다가 2004년 홍지동을 끝으로 세검정을 떠났지요. 평창동이 개발되기전에는 참 볼품없는 루삥, 스레트 지붕의 집들이 있었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빈촌이었지요. 어느날 갑자기 확 변하여 지금의 부촌이 되었더군요.ㅎㅎ 옛생각에 그만 횡설수설...
좋은 날 되세요.^^
수고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동네
골목의 일상이
그려지네요.
그 시절 골목이
가보고 싶어져요.
오늘도 맥가이버
뽀식이님~~
보람 가운데
행복하세요.
한겨울의 산골은
적막하지만 한가롭지요.
그런데도 하루는 잘 갑니다.
미뤄놓았던 숙제도 하면서...
늘 격려주셔 감사합니다.^^
나무난로.
연통에 끄름 엄청납니다
저희는 잘 말려서 그런지 그을음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