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봄은 오월이 와야 시작된다.
6개월이나 되는 긴 겨울 동안 러시아의 모든것은 언제 깨어날지 모를
동면 상태에 들어간다.
겨우내 답답해진 가슴은 언제나 봄날의 찬란한 햇볕을 꿈꾸지만 5월이
시작되면서 모든 나무들은 비로서 연두빛 설레이는 가슴을 드러낸다.
햇빛 속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이파리를 바라보면서 러시아의 봄을
느낀다.
한줌의 바람도 들어오지 못하게 꼭꼭 막아 놓았던 창문을 활짝 열고
작은 방안에 가득 봄 바람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모스크바의 거리는 민들레 씨앗의 바람이 분다.러시아 사람들은 민들레 꽃씨의 하얀 가루가 날리는 늦봄의 오후 거리를 산책하는걸
가장 싫어한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의 웬만한 도로의 가로수인 프라타나스 꽃씨까지 눈송이같이 날려 수많은 호흡기환자를 만든 다음 봄이 지나간다.
봄이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의 군데군데 서 있는 이즈바(러시아 시골집)에서는 머리에 수건 두른 할머니들의 건강한 모습과 수영복 차림으로 밭을 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모스크바 근교에선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주말이면 으레 가족 단위로 닷차(별장)에 나가 씨를 뿌리고
여름내 뜨거운 뙤약볕을 맞으면서 한해 동안 먹을 채소를 준비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닷차로 향하는 차들로 인해 모스크바 근교의 도로는 체증이 심각하다.
구 소련은 넓은 외곽지대의 땅을 노동조합이나 직장별로 조금씩 나누어 분배를 했다. 조합원들은 허름한 판자를 차로 날라다 10~20년이 걸려서
허름한 판지집을 세우고 채소를 가꾸었다.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의 졸부들은 초호판의 벽돌로 다차를 짓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빈부차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했다.
오월의 햇살 속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바자르 입구에 서있는 할머니들의 두툼한 손에서는 장터의 풍경이 느껴진다.
가끔은 변덕 스러운 날씨때문에 빨아 넣어둔 두툼한 스웨터를 다시 꺼내 입지만 햇살이 하도 반가워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논둑의 마른 땅을 밟는 기분으로 공원을 거닐기도 했다.
러시아 할머니들을 마주치게 되면 혀를 쯧쯧차면서 '저런 끔직한'이라는
뜻의 "카시마르,카시마르"라는 소릴 듣게 된다.
성급하게 벗어던진 양말때문이다. 하지만 맨발의 자유로움이 좋은 난
어쩜 봄을 그래서 기다리는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