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흥에 있는 운암식당에 갔다. 내가 처음 고흥 땅을 밟은 것이 5년 전 쯤이었을 게다. 운암식당을 소개받아 갔는데 작은 읍내임에도 북새통을 이루고있었다. 쟁반에 나온 삼겹살은 붉은 선혈빛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었고, 돌판에서 노랗게 익은 삼겹살은 그 어디에도 맛 볼 수 없는 내 생애의 최고의 삼겹살이었다.
그후로 서울 근무하면서 이따금씩 고흥의 운암식당 삼겹살이 생각났다. 고흥에 가면 반드시 먹어보리라며 마음을 다잡고는 했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아 내가 소록도에 발령받아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고흥 읍내에 있는 운암식당 삼겹살집이 최고라고 하자 직원들은 소록도에 온 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 집을 아는지 의아해 했다.
그런데 어제 여덦시도 안 되어서 식당에 도착을 했건만 영업 끝났다고 말하며사장님은 미안하다는 듯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손님들은 삼겹살을 다 먹은 돌판에 볶은밥도 얼마남지 않았다. 곧 파장할 분위기였다. 그래도 예서 말수는 없었다. 한가닥 희망을 잡고 읍소형으로 이야기했다.
- 사장님, 삼겹살이 먹고 싶어서 소록도에서 왔어요. 저기 손님들 먹고 있는데 삼겹살만 얼른 구워서 먹고 나가면 안 될까요? 반찬은 안 주셔도 되요.
사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저기 앉으라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목례를 하고 얼른 앉았다. 역시 운암식당의 삼겹살은 고기가 좋았다. 선혈빛 고운 색이 그대로였다. 돌판 중심에는 삼겹살을 올려놓고 아래에는 묵은김치와 콩나물, 마늘을 올려놓았다.
상추에 콩가루를 묻혀 삼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돌판에 구운 김치와 콩나물을 적절하게 섞어 땡초 썬 것을 올려서 소주잔을 입에 툭 털어 넣고 완성된 삼겹살 쌈을 입안으로 가져가니 쫀득쫀득함과 고소함이 감돌면서 환상의 맛을 자아냈다. 볶음밥도 달라고 해서 불판에 구우니 부러울 것이 포만감으로 물들어 갔다.
집에 와서 밤 11시가 넘어서자 돌연 유리알처럼 투명한 바다가 보고 싶었다. 소록도 해수욕장까지는 걸어서 2~3분 거리다. 바람만 잔잔하면 소록도해수욕장 해루질은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좋다. 주섬주섬 해루질 장비를 갖춰 입기 시작했다. 요즘은 숙달이 되어서 일사분란하게 입지만 처음 해루질 나갈 때를 생각하면 군대의 고문관처럼 우와좌왕 했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해루질 장비를 갖추는 것도 다 순서가 있다. 먼저 가슴장화를 입고 서치라이트와 밧데리를 연결해야 한다. 등에 밧데리를 메고 조과통을 허리에 걸어야 한다. 뜰채를 연결하고 미나리장갑을 팔뚝에 끼어야 한다. 서해안으로 해루질 갈 때는 커다란 수경도 목에 걸고 때에 따라서는 갈고리도 가져가야 한다. 처음에는 개인장구 갖추는데 10분이 소요되고는 했다.
소록도 바다에 나갔다. 써치를 바닷속으로 비추자 모래알과 갯돌이 깔린 바닷속이 동화에 나오는 마법의 성처럼 찰랑거렸다. 한 시간 반동안 햇살이 헹군듯한 바닷속을 거닐었다. 바다 안에는 날렵한 물고기들이 유유자적했고 뜰채를 들이대면 쏜살같이 달아났다. 행동반경이 적은 학꽁치 치어들이 수면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조과량은 좋지 않았다. 물때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겨우 중간짜리 꽃게 한 마리와 국거리용 멸치만한 학꽁치 열 마리 정도가 전부였다. 사실 많이 잡을려고 하면 개펄이 펼쳐져 있는 녹생리나 동생리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조과를 떠나 멋진 바닷속을 구경하는 일은 신명나는 일이고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아침에 잠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웃에 사는 형님이었다. 간부급이지만 심덕이 좋고 성격이 발라서 소록도를 잘 운영해 가고 있다. 선착장에서 막 낚시하고 오는 길이라면서 감생이 두 마리를 집에 까지 와서 주고 갔다. 중간치 사이즈였는데 살아서 꿈벅꿈벅하고 있었다. 후라이판에 노랗게 구워먹으면 기가 막힐 것이다.
첫댓글 소록도에서의
업무와 일상이
모두 가지런한 느낌을 받네요. 물론 멋지기도 합니다.^^
빛바랜님, 댓글 감사합니다. 소록도는 편안한 안식을 주어서 좋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삼겹과 김치, 콩나물을 돌판에~
자정이 가까워도 음식을 먹게해주었던 군포 어늬 가게가 생각나네요.
좋으신대요 ~근무지가 놀이터이어라~~^^
파도님, 댓글 감사합니다. 일과가 끝나면 소록도는 근무지에서 휴양지로 변모합니다. 마치 신데렐라처럼요~~
저희부부도 장수마을에 밤에가서 학꽁치만 실컷보고왔던 며칠전기억이 있어요~^^
모네님, 통발 놓아 장어잡고, 배 타고 나가 해상잡는 바다영상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느 바다나 학꽁치 치어는 많은 것 같습니다.
@소록애(소록도) 잼나게봐주신니 감사해용~^^
소록도는 작은 꼬맹이들도 해루질을 하던데요? ㅎㅎ
운암식당은 저에게는 생소하네요. 시골생활이란게 한가한듯 바삐 지나가는 같습니다
행복한이님, 댓글 감사합니다. 언제 소록도 들어오시면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차 한잔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