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가을비가 너무 내려서 일까.
브래드 피트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과 함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가 떠올려졌다.
한국계 일본인 미소라 히바리 일본의 국민 가수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오늘 겨울비가 엄청 내리는 날 나를 장식한다.
쇼와(昭和)의 가희(歌姫)로 불릴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가수이며, 일본인들에게는 쇼와 시대를 통째로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질 정도. 데뷔 때부터 타계하는 1989년까지 약 45년 동안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일본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일본 엔카 가수 중 가장 유명한 가수로, 지금도 일본에서 엔카 가수라 하면 미소라 히바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누적 음반 레코드 판매량 8,000만장 이상. 비공식 일본가수 음반 판매량 1위다.
요코하마시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아버지 카토 마스키치와 어머니 카토 키미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 둘 다 노래 부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기 때문에 집안에는 레코드 기기가 있었고, 늘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943년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는 바람에 집을 떠나게 되자 떠나기 전 송별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히바리는 노래를 공개적으로 불렀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히바리의 노래에 감명을 받았고 어머니는 히바리의 재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염산 테러 사고로 한동안 활동을 쉬었던 히바리는 1948년 고베의 극장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연하게 당시 고베를 주름잡고 있던 최고의 야쿠자인 야마구치파의 두목 다오카 카즈오의 눈에 띄게 된다.
또한 고향인 요코하마시에서 무대 활동을 하던 히바리는, 우연히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이자 배우였던 카와다 하루히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히바리의 무대를 인상깊게 본 카와다는 직접 자신의 옆자리에 히바리를 앉히고는, 히바리에게 가수로써의 여러 노하우를 알려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연예계의 거물들과의 잇따른 이러한 만남은 히바리가 점차 더 많은 연예계의 유명인들과 만나는 계기로 이어졌다.
첫 싱글 레코드가 45만장이나 팔리는 대히트를 치면서 히바리는 본격적으로 전국 규모의 유명가수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정도로 유명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유명한 영화 ’과수원‘의 주제가 불러 대히트한다.
이후부터 히바리는 근 40년간 엔카, 나아가서 일본 가요계의 女神으로 군림하였다
강물의 흐름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는 미소라 히바리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곡이자 마지막 싱글 앨범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미소라 히바리‘가 겨울비 내리는 오늘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