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0월 3일 개천절 4342주년은 나의 서른일곱번째 결혼 기념일이었다.
그 때는 내가 복학하고 대학 3학년, 마침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와 동갑내기 신부깜이 그 다음해부터 삼재가 든다고 장모되실 분이
엄청 결혼을 졸랐다. 나의 친구들은 니가 무슨 의리의 삼돌이냐고 심하게 말렸는데.
그 해 추석에 나는 지천집에 제사 지내려 가서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했다.
그 후 바로 대구예식장에 가서 예약을 하고, 결혼 날짜는 10월 24일 유엔데이가
좀 여유는 있었지만, 남북통일이 되어도 “개천절”은 계속 공휴일일 것 같아서
내 맘대로 급히 날짜를 잡고, 부모님께 그러그러하게 청첩장 인쇄도 부탁드렸다.
그런데 문제는 신혼여행 갈 시간이 없었다. 바로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등록금 금액 상당액마져도 결혼식 비용으로 써벼려서
어쨌거나 장학금을 타야 되었던 중요한 시험이었는데, 새 색씨한테 빠져서…
당시에 57,000원 정도인 등록금도 면제받지 못하고, 고시준비도 포기하였고,
돈암동 우리 전세집에는 날마다 친척이랑 친구들을 위한 집들이에 바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제천에서는 결혼기념일 만찬을 즐길만한 공간도 마땅찮다.
결혼 초년기에는 결혼기념일이랍시고 마침 공휴일이니까 주로 여행을 다녔고,
서로 기념선물도 교환했었는데, 내가 외국 주재가 많아지면서 없어졌다.
어제는 마누라가 지금의 추동복 등산자켓이 좋은 것이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사진 찍은 것 보면 항상 그 색깔이라기에 내가 한 벌 쏘기로하고 시내에 나갔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매장들이 문을 닫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의 9개월 짜리 외손자가 며칠 전 늦은 추석인사차 제천에 왔었다. 손자가 보는 앞에서
내가 첫딸 탄생기념으로 샀었던 당시 최고급 Panasonic AM 라디오를 이 번에 당사자에게 전했다.
40년이 다되어 가지만 뒷면에 딸 이름과 날짜, 그리고 지금도 새 것처럼 음향이 좋다.
1974년, 그 때에는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고, 나는 전국 주특기 최첨단 육군병과의
동원예비군이었으니까, 일단 유사시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딸과 마누라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라디오뿐이었다.
지금 세월이 몇 십년 지나고 스마트폰 시대가 되고보니 그냥 만화속의 이야기 같기만 하지만,
그 “라이도”(내 딸의 어릴 때 표현)를 나도 “3대째”로 그 라디오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니
이게 바로 북한 김정어리의 요즘 기분이 이럴까???
제천은 천재지변이나 역병, 전쟁이 없었던 몇 안되는 십승지(十勝地)에 속하지만,
평균 고도가 해발 400미터 이니까 오늘도 벌써 춥게 느껴지고, 지난 여름 폭염도
잘 피해 살았다. 그런데 외손자가 오니까 그 날부터 매일 가스 보일러를 틀어 주더니,
떠나고 나니까 바로 꺼버리는 마누라의 심술이 야속했다. 이 나이에 “바람부는 거실”에서
온기라고는 없는데 밤 늦게 TV보는 시간이라도 견디려고, 어제 바로 하이마트에 가서
“탄소면상발열” 필름타입 전기장판을 장만해서 오늘 가스보다 싼값에 온기를 느끼고 있다.
정해진 일 외에는 볼일도 없고, 볕좋은 날에는 들판에 나가 황금빛 논에 들어서면 벼메뚜기들이 얼메나 똑똑한지
내가 왔다고 온 천지에 열병식을 한다. 우리 동네 노인회 분들은 어제도 2리터짜리 페트병에 메뚜기를 가득
잡아와서는 자랑을 한다. 나는 물고기 낚시도 싫고 더덕캐는 것도 모두 살생이라고 여겨서 좋아하지 않았다.
마침 지난 겨울에 선물받은 산마 몇 뿌리가 베란다에서 말라 있었는데, 모두 새 싹을 틔우고 있어서 모처럼
나에게는 좋은 날 결혼기념일에 선행하기로 마음먹고 빈 화분에 그들을 잘 모셨다.
강남 제비처럼, 내년 봄이면 산마 넝쿨이 베란다에 우거질려나?
내일은 서울 간다. 딸집에 제천 고추가루 5Kg 갖다주고. 경동시장에 가서 중국산 김치를 200Kg정도 사와야 한다.
몇 년째 단체급식 일을 하지만 지금처럼 난감한 때가 없다.
기후변화? 농산물 불황. 그러면 모두가 거기에 적응해서 잠시 김치를 안 먹으면 된다.
왜들 정말 지만 잘났다고 세상을, 정부를 향해 누워서 침을 밷는가 !!!
나는 정말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네…..
그 동안 우리 카페가 많이 활성화되어 가고 있어서 나도 오래만에 몇 마디 별 재미는 없는 이야기지만.
서로가 사는 얘기, 좋은 지혜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올린다.
재경 동문 여러분, 10월 17일(셋째주) 모교 축제때 모두 전세 관광버스타고 지천학교에
꼭 함께 다녀옵시다.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되겠지요.
첫댓글 제천 어르신 37 회 결혼기념일 축하 합니다. 이제는 히불내미 마누라의 하루 일과중 남편학교 까페를 들여다 보는것이 일과중 일부분이 되었어요.
어르신의 글을 남편도 함께 들으라고 소리내어 읽다보니 정말 정겨움이 묻어나는 군요. 가끔 뻔한 글만보다 보니 식상 할때가 있었는데 정말
오랬만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읽었어요. 특히 새것이 좋아 헌것은 무조건 버리는 시대에 " 라이도 " 이야기 정말 옛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군요.
항상 건강 하시고 재미있고 좋은글 많이 많이 부탁해용.
후배님, 정겹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글쟁이는 아닌데, 시간이 많다보니 자꾸만 우리 카페에 와서 글적거리고 갑니다. 나는 내가 사는 데로, 내가 경험한 데로 얼마간 정리를해서 카페에 글을 올리는데, 정말 깊이 하고싶은 얘기나 후배님들께 꼭 전해드리고 싶은 사연들은 차마 다 못하겠네요. 제수씨, 행복하시고 더 자주 뵙시다.
고문님께서도 아직 결혼 기념일을 챙기고 계시는군요...그러고보면 저는 너무 무감각하게 살아온듯 싶어요. 누구는 그날을 알리려고 달력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도 쳐 놓는다는데 저는 아직 그런 애교한번 못부리고 이나이까지 살아 왔네요. 저도 이번 기념일에는 뭔가 기념이 되게 한번 계획을 세워 볼까하는 마음입니다. 혹시 제천으로 메뚜기잡으러 가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