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계율주의와 권의주의를 거부하며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는 지혜란?
지혜를 강조하는 이유
불교와 기독교의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같이 자비 또는 사랑을 전면에 드러냄에도 불교는 그와 더불어 지혜를 강조하고 기독교는 정의를 내세우는데 있다. 그래서 불교철학자 아베마사오(阿部正雄)는 기독교의 사랑이 정의를 동반함으로써 불의한 자에게는 사랑과 정반대인 투쟁과 보복, 심지어 전쟁까지 불러일으키지만, 불교의 지혜는 친선과 화해와 조화와 평화를 수반한다고 하면서 '사랑과 정의는 물과 불 같아서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동반하기란 어렵다. 자비와 지혜는 열과 빛과 같아서 서로 다르지만 서로 보완적으로 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불교의 자비는 지혜의 온전한 빛을 만나서 그것을 선악(善惡) 미추(美醜), 부자와 빈자를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튛뿌려준다. 사실 지혜의 빛이 없다면 불교는 방향타를 상실하여 좌충우돌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비만 강조하다 보면 그것은 자칫 중심의 근거를 상실한 채 무질서의 혼동을 초래할 것이다. 인생과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깨달음과 느낌이 있을 때야만 가슴 벅찬 자비행이 용솟음치며 행위의 준칙이 바로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는 항상 형제처럼 붙어다닌다. 나아가 이치가 가로라면 행위는 세로다. 이치는 무시간적 공간이요, 행위는 부단히 공간을 가르는 시간에 해당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자비의 실천적 행위를 강조하는 보현보살이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서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은 만주슈리(Manjusri)다. '만주'는 '아름다운', '매력 있는'라는 뜻의 형용사로 묘(妙)라 한역했으며, '슈리'는 '행복한', '상서로운' 내지는 '영광'이란 뜻으로 길상(吉祥)이라 번역해 이 말 전체를 묘길상(妙吉祥), 묘덕(妙德) 등으로 의역한다. 문수사리(文殊師利)니 만수실리(曼殊室利)니 하는 명칭은 이 만주슈리의 음역이며, 문수란 문수사리를 약한 말이다.
문수보살은 사위국의 바라문의 아들로서 석가모니불 입멸후 이 세상에 출생했던 실존 인물이라고도 하고 여러 보살들과 더불어 대승 경전을 결집했다 하나, 그 역사적 근거는 희미하다. 지혜의 화신인 이념으로서의 보살임이 분명하다. 이 지혜를 강조하여 문수는 모든 불보살의 어버이요, 모든 부처님들은 그의 제자라는 설이 나오기까지 한다.
불교에서는 그 지혜를 일러 반야(般若)라 한다. 이는 이분 대립적인 지식을 뛰어넘는 초월지로서 사태를 대상적,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태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치를 꿰뚫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공(空)이다. 그것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현실 속에서 자재롭게 움직이는 정신이요 모든 불보살의 근본 바탕이니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불보살의 어버이라는 해석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반야의 추구가 보리심(菩提心)이다. 일러 지혜와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요, 깨달음을 추구하는 열정이다. 문수보살의 10대원을 보면 이러한 보리심과 중생 구제의 일념으로 가득차 있다. 그 몇가지 원을 보기로 하자.
'모든 복덕을 부처님의 보리도에 회향하고 중생이 모두 복을 받게 하며, 모든 수행자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한다.(제7원)'
'나쁜 짓을 많이 하여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과 함께 태어나 교화하되, 혹은 빈궁자가 되고 혹은 소경, 벙어리, 귀먹어리, 거지가 되는 등 모든 중생들 속에서 같은 종류, 같은 인연, 같은 일, 같은 행동, 같은 업으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불법에 들게 하고 보리심을 내게 한다.(제8원)'
'문수와 인연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자(慈) 비(悲) 희(憙) 사(捨)와 허공 같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정각을 이루게 한다.(제10원)'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문수보살이 등장하여 보리심을 묻는 선재동자에게 선지식을 찾아 뵐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하여 선재는 50여 명의 선지식을 찾아본 연후에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을 만나는데, 그가 이르길, 지금까지 가르침을 준 모든 선지식이 보살행을 닦은 것은 모두 문수의 힘 때문이라고 하면서 다시 문수를 찾아뵐 것을 요청, 선재는 다시 문수보살에게 되돌아온다. 문수보살에 귀의한 선재는 문수의 지시에 따라서 보현보살을 뵈었으며 이어 보현의 행원(行願)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문수보살은 진리를 찾아가게 하는 보살로 등장함과 더불어 여러 선지식들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계율주의, 권의주의로부터의 자유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은 신라 땅을 지혜의 대지로 만드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면서 예지가 번득이는 신라인으로 나선다. 계율과 근엄한 형식에 치우쳐 있는 승가 사회의 엄숙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시니컬하게 비웃어어 그들 스스로 반성케했을 뿐더러 인간의 무지와 위선을 깨우치게 한다. 그 두드러진 예를 경흥(景興)과 자장(慈藏) 스님과 관계된 일화에서 엿 볼 수 있다.
자장 스님은 왕족으로서 부귀와 벼슬길을 버리고 출가를 단행, 당시 불교학의 메카였던 당나라에 유학하여 거기 청량산(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학업을 마치고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온 자장은 신라땅에 화엄사상의 고취와 계율 정신 부각시키면서 승풍을 진작시킨다. 그는 말년에 강원도 오대산 수다사(水多寺 :지금의 월정사)에서 문수를 다시 친견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는다. 이는 바로 신라 땅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불국토임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엄숙한 계율주의, 소승적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가 태백산 석남원(石南院 :오늘날의 정암사)에서 다시 문수를 친견하기 위해 도를 딱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날 허름한 도포를 걸친 거사가 칡넝쿨로 엮은 망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고선 자장을 찾아왔다. 거사는 자장을 보러왔노라고 달려나온 제자에게 말했다. 제자는 그 무례함을 꾸짓으며 한사코 들여보내지 않자, '그대의 스승에게 아뢰면 되지 않겠냐'고 담담히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은 '필경 미친 사람이겠지' 하며 일소에 부친다. 이 말을 전해 듣은 거사는 실망에 찬 무거운 어조로 말한다.
'돌아가자, 돌아가.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는가'
말을 마친 거사가 망태를 떨어뜨리자 죽은 강아지는 사자보좌로 변하고 거사는 거기에 올라타 눈부신 빛을 발하며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이 광경을 들은 자장이 허겁지겁 뛰어나갔으나 결국 절의 남쪽 고개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다. 바로 자장은 오만과 귄위에 짓눌린 귀족불교의 허울을 벗어내지 못한 탓에 비장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이 일화는 신라불국토가 그러한 엄숙한 계율주의나 권위주의적 토양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스승이었던 신라의 경흥(憬興) 스님도 권위주의적 태도로 말미암아 문수보살로부터 혼쭐난다. 그는 대궐에 들어 갈 때면 항상 말을 타고 다녔다. 입궐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행차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웬 남루한 스님이 등에 마른 물고기를 한아름 지고 하마대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는게 아닌가. 그 꼴을 보다못한 시자가 '어째서 불가에서 금하는 부정한 물건을 지니고 다니냐'고 다그치자, 그 스님이 대꾸한다. '산 고기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그까짓 죽은 물고기를 등뒤에 지고 다니기로서니 무슨 잘못이람.' 실로 시니컬한 한 마디였다. 그 남루한 스님의 바로 문수보살이었다.
이러한 문수보살의 모습은 그 이후에도 우리의 대지에 계속 나투어 수행자들로 하여금 보리를 향한 원과 수행을 돕고, 형식적 계율주의에 물든 수행자를 일깨운다. 그리고 그 나타나는 모습도 한결같이 누더기 걸망을 진 남루한 형색으로 출현했다가는 청사자를 타고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을 ꂙ는다.
근세의 해담(海潭) 스님도 괴팍한 성격에다 철저한 계행으로 이름낫는데, 문수는 죽은 강아지를 망태기에 담은 채 온 몸에 피를 뚝뚝 흘리는 과객으로 이 스님에게 나타나 염정불이(染淨不二)를 일깨워 준후, 죽은 강아지가 변한 청사라를 타고선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호불적 군주 세조 또한 상원사로 가던 도중 물맑은 계곡을 만나 몸을 뎶던 중 문수 동자를 친견하여 부스럼병을 치유하는데, 거기서 긴장미 넘치는 대화가 오고간다. 세조는 동자에게 말한다. '그대는 어디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 하지 말지어다.' 그러자 동자가 대꾸한다. '대왕께서도 어디가시든지 문자동자를 친견했다 하지 마옵소서.'
이렇듯 문수는 관음보살 못지 않게 사람의 근기에 마추어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지만, 관음이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품에 비하여 문수는 수행자로 하염금 그 어리석음을 꾸짓어 올바른 마음을 갖게 하는데서 두드러진 차이점을 볼 수 있다.
문수의 땅, 문수 신앙, 문수 문화
이러한 문수보살이 우리나라 땅에 거주한다 하여 문수를 예참하려는 문수 신앙이 신라시절부터 줄곧 이어져 왔다. 수행자로서 문수보살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보리심을 익혀 깨달음에 이르는 중요한 루트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문수의 진신(眞身) 그 자체를 뵙는 것만 해도 감읍할 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앞서 말한 자장 스님과 세조가 문수보살을 만났던 오대산, 그리고 금강산은 문수보살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문수 신앙의 터전이 된다. 오늘날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의 문수보살상과 문수동자상, 그리고 금강산 사선계(四仙溪) 계곡, 거기 40미터 높이의 거대한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묘길상보살상에서 그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문수 신앙은 대사회적 빈민 구호 활동에 지울수 없는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그것이 문수회(文殊會)다. 이 문수회의 기원은 중국땅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 시절 승정(僧正) 근조(勤操)와 원흥사(元興寺) 승려 태선(泰善) 두 사람은 향리의 가난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음식을 베푼다. 『문수반야경』에서 '만일 문수사리의 이름을 들으면 12억겁 생사의 죄를 제거하게 되며, 예배 공양하면 문수사리의 보호를 받게 된다. 공양하여 복업(福業)을 닦는다면 문수는 그 몸을 빈궁, 고독하여 고뇌에 찬 중생으로 바꾸어 행자〔수행자〕 앞에 이르게 되리라'라 했기 때문이다. 즉 빈궁하고 고독한 이에게 보시를 베푸는 일은 그대로 문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훗날 근조가 죽자 태선 혼자 이러한 문수회를 이끌다가, 그 일이 승려를 총괄하는 승망(僧網)의 주목을 받아 전국적으로 행해져 공식적인 법회로 전개된다. 이 법회를 전후로 하여 3일간 살생을 금하며, 그 자리에 모인 빈궁한 남녀에게 오계를 주고, 약사 문수의 명호를 외우게 한뒤 보시를 행한다.
이러한 문수회는 왕족과 귀족 사회에서 연중 행사로 널리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우리 고려 사회에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고려말 변조(遍照) 대사 신돈(辛旽)은 문수회 등의 법회를 자주 열었는데, 차별없는 대중 법회와 대중 공양으로 부녀자로부터 문수의 화신이라고 칭송받는다.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 - 1376 )도 문수회를 성대히 거행한다. '나옹이 양주 회암사에서 문수회를 베푸니 모든 사녀(士女)가 귀하고 천한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옷감과 비단, 과일과 과자를 싸가지고 와서 시주하였다. '는 『고려사』의 기록에서 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우리의 문화 유산으로 남아 있는 문수보살상을 볼 것 같으면 가부좌를 하거나 서있는 상태에서 자비로운 미소를 보내는 형상 외에 사자를 타고 이검(利劍)을 찬 당당한 모습이 여러 사찰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석굴암 문수보살상은 본존불 우측, 그러니까 본존불을 향하여 좌측에 제석천상 다음에 의연한 자태로 서 있다. 오른 손을 가슴 방향으로 굽혀 올려서 경전〔梵莢 : 범어 경전 묶음〕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뜨리고 있는 늘씬한 체구에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이렇게 경전을 들고 있기 때문에 그는 본존불을 아미타불로 볼 경우 대세지보살로 거론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또 보현보살이라는 주장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지혜를 상징하는 경전을 살포시 거머쥐고 있다는 점에서 문수보살로 보아야 하리라고 본다.
얼마전(1997. 3) 전남 도갑사에서 최초로 발견된 고려시대 청동 문수보살상은 사자를 탄 동자상으로 칼을 허리에 차고 있다. 이는 어떠한 장애도 베어버리고 모든 번뇌를 없애는데 그침이 없는 지혜를 나타내는 당당한 체험의 주인공으로서 문수보살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렇게 사자를 탄 문수를 언급한 최초의 경전은 초기의 밀교 경전인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이다. '(문수)의 몸은 온몸이 흰색이며 정수리 뒤에 빛이 있다. 칠보의 영락과 보관(寶冠) 천의(天衣) 등 갖가지로 장엄(莊嚴)하여, 사자에 올라타고 있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