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레이건
<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러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
(마태 19.3-6)
레이건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2년쯤 남겨놓은 1987년. 아내 낸
시는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가슴을 절개해 종양만 제거해도 될 수준
이었다. 낸사는 자청해서 유방을 아예 도려냈다. 종양만 드러낼 경우
방사선 치료를 병행해야 하고, 그래선 퍼스트레이디 역활을 충실히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이딧 윌슨
이래 낸시 레이건처럼 남편에 억척스럽도록 헌신한 퍼스터레이디도
없다.
파산한 구두 외판원이자 알콜중독자의 아들 레이건은 눈밭에 쓰러
져 숨진 아버지를 목격했다. 낸시는 생모가 이혼하면서 버림받아 6년
이나 친척들 손에 자랐다. 어릴 적 불행이 둘의 성격에 끼친 영향은
판이했다. 레이건은 누구와 맞서거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는 상황을
피했다. 낸시는 성정이 불안하고 투쟁적이었다. 항상 웃는 속 편한
남자와 신경이 날카로운 여자와 단단한 결합, 레이건은 회고록에서
'낸시와 나는 한 사람이나 다름없다' 고 했다.
모든 것을 남편을 위해 판단하고 행동했던 퍼스트레이디 낸시의 평
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언론은 그녀가 거만하고 사치스럽다며 '퀸
(Qucen)낸시 '팬시(Fancy)낸시'라고 비아냥 됐다. 그러던 시선이 10년
전부터 동정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1994년 레이건이 치매에 걸렸음을
밝히고 "나는 이제 인생황혼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고 선언하면
서다. 치매만큼 주변의 시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한 질병도 드물다. 가
족 멀고 누구도 어찌 해줄 방법도 없고, 가족도 인내로 견디는 수 밖
에 없다.
"사랑하는 이가 조금씩 해체돼 가는 것을 지켜보기가 정말 힘듭니다.'
"오래 사랑해 온 사람과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슬퍼다." 낸시
는 남편과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켜 "길거 긴 이별."이
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한 침대를 쓰고 있다. 우리 사
랑은 이전에도 지금도 각별하다."고 행복해 했다. 그 인내와 사랑으로
10년을 꿋꿋이 버텨냈다.
낸시는 2년 전 결혼 50년을 맞아 사랑의 비결을 말했다. "결헌 생활
은 50대 50이 아니다. 항상 둘 중 하나는 더 많이 주고 양보한다. 우
리 둘도 50년간 양보해 왔다." 두 사람다 배우로서는 정상 근처도 밟
아보지 못했지만 부부에게 있어선 누구도 밟지 못할 고지에 올랐다.
낸시는 레이건이 있어서 존재했고 레이건 역시 낸시가 있어 존재했
다. 미국 대통령의 비참한 말년까지 아름다운 황혼여행으로 탈바꿈시
킨 것도 마르지 않는 아내의 사랑이었다.>
- 오대진, 동아일보. 2004년 6월 8일자 '만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