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이며 끔찍하고 처참할 수 있는 것인지를 잘 모르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어느 정도로 큰 은혜이고 놀라운 것이며 강력하고 감격스러운 것인지도 잘 알지도, 사모하지도, 의지할 수도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당연히 죄악들과의 싸움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박한 것인지도, 범한 죄악들에 있어 자복하고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절실하고 긴급한 것인지도, 또한 한편으로는 말씀의 신앙이, 말씀의 열정이 얼마나 복되고 절대적인 것인지도 제대로 통찰하기 힘 드는 것인데 어쨌든 아래 본문에서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죄악들 가운데에는, 곧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하면서 그 뜻을 어기고 말씀과 다른 선택을 하며 말씀대로가 아닌 것을 의지하는 불신앙과 세속과 정욕 등과 같은 죄악들에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저주와 불행들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참으로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말씀대로 의지하고 말씀 그대로 의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을 받게 되는데..
그에 있어서 크게는 두 가지인 것으로 식물에 있어 더위나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음 같이 해롭고 문제되고 상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도와주시며 막아 주신다는 것이고, 반대로 물가에 심은 나무가 늘 좋은 결실들을 맺게 되듯이 선하고 형통하며 풍성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응답하시며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에 있어서의 의지나 의뢰는 단순한 기도, 무조건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짖는 차원의 간구라기보다는 아래 본문의 뒷부분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잘 분별할 수 있는 것이듯이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전적으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심히 당연할 수밖에 없음은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누릴 수 있는 복들, 기도의 응답들 등을 위시해서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말씀으로 하나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해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실질적으로 해로움들이나 상함들이 아닌 온갖 모양의 복과 결실들이 나타나고 누리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는 것 자체부터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들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실상 그 전에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부터도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이며, 반드시 하나님으로 인해 창세 전부터 택하심을 입고 믿음과 함께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 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대로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렇게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더 이상의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에 우선을 둠과 함께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병들고 죽은 듯한 신앙이 됨으로 인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과 같은 징계들이나 마치 광야 40년과 같은 방황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치열하게 싸울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도 제대로 자복하며 돌이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최우선으로 사모하며 가까이하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그로 인한 역사들, 온갖 복과 응답들 등으로 갈수록 넘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예레미야17:5~11)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6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