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중앙포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일정이 속속 확정되면서 각 예비후보 캠프의 문턱을 넘는 정치인과 전문가의 숫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1일 현재 각 후보 캠프에 직함을 갖고 참여하고 있는 현역 국회의원 숫자만 해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각 9명, 유승민 전 의원 8명, 홍준표 의원 1명 등 모두 27명이다.
특히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윤석열 전 총장과 최재형 전 원장이 경쟁적으로 캠프 참여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당내에선 “세몰이 경쟁이 지나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캠프 참여 의원을 “레밍(들쥐)”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윤석열·최재형 캠프에 직책 맡은 TK 의원은 0명
그런데 특이한 건 이들 현역 의원을 지역별로 나눠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의 두 축인 윤석열 캠프와 최재형 캠프에 부산·경남(PK) 의원은 각각 3명(장제원·윤한홍·정점식)과 4명(박대출·조해진·박수영·김미애)인데 반해 대구·경북(TK)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캠프에 참여한 인사들 중엔 윤 전 총장과 같은 검사 출신인 정점식 의원, 최 전 원장처럼 입양 가정을 꾸려본 경험이 있는 김미애 의원과 같이 후보와의 동질감 때문에 합류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후보들과의 인연이나 동질감이 깊지 않은 인사들도 많다.
선친인 고(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해군 기지에서 근무할 때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자란 최 전 원장의 경우 PK 인사로도 분류되지만 윤 전 총장 캠프에까지 PK 인사가 많이 몰리는 걸 당 안팎에서는 "이례적"으로 본다.
윤석열(오른쪽)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입당 발표에 앞서 장제원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선 “내년 3·9 대선 뒤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실시되는 6·1 지방선거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남지사 무주공산 되면서 미리부터 경쟁 치열
내년 6월 치러지는 광역단체장 선거 중에 큰 주목을 받는 곳이 바로 경남지사 선거다. ‘드루킹 사건’으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사직을 잃고 수감되면서 무주공산이 됐다. 만약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에 성공할 경우 경남지사 자리를 되찾아올 가능성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당내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부산시장 선거의 경우도 지난 4·7 보궐선거를 통해 박형준 시장이 당선됐지만 내년 선거 때 도전장을 내미는 국민의힘 당내 도전자가 꽤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부산과 경남의 지역 언론은 벌써부터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후보군 기사를 쓰고 있고, 그 명단에는 캠프에 참여한 현역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PK 의원들의 경우 광역단체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주요 후보 캠프의 문을 두드렸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같은 영남권이지만 TK와 PK의 정서가 다르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TK는 PK와 비교할 때 국민의힘의 지지세가 압도적이다. 야당이 완패했던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부산과 경남에선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승리했지만 대구시장(권영진)과 경북지사(이철우)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승리를 챙겼다. TK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누가 이기든 그 후보를 몰아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의원들의 움직임도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우리 지역에서는 어떤 특정 후보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아니라 누가 정권 교체를 해줄 거냐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굳이 본선도 아닌데 지금 특정 캠프에 들어가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호남과 TK는 이기는 쪽에 몰아주는 성향이 강하다”며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 입장에서도 TK보다는 PK 의원들 영입에 더 신경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임시 현충탑 참배소에서 참배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미애 의원, 부인 이소연 여사, 최 전 감사원장, 박대출 의원. 뉴스1
TK의원들의 콧대가 높다는 점도 거론된다. 경북 지역의 또 다른 의원은 “누가 후보가 되든 TK 의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선거 이기기가 어렵다”며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어떤 후보를 돕겠다고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6·11 전당대회 당시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힘 전체 책임당원 27만6339명 중 대구와 경북은 각각 2만9018명(10.5%)과 5만7679명(20.9%)으로 TK 전체는 8만6697명(31.4%)에 달한다. PK는 부산(2만2246명, 8.1%)과 울산(1만3223명, 4.8%), 경남(3만2952명, 11.9%)까지 모두 합해 6만8421(24.8%)다. 인구 대비 책임당원 숫자로 보면 전체 지역 중 TK가 압도적으로 충성도 높은 당원이 많은 셈이다.
TK 당원 충성도 높아…“누가 후보든 TK 의원 도움 받아야”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이든 최재형 전 원장이든 누구든 지금 당내에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국회의원 공천에 영향을 끼칠 대주주가 아무도 없다”며 “의원들이 섣불리 특정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