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6: 14 모든 일을 사랑으로 - 고전 16: 18 마음을 시원하게
고전 16: 14 모든 일을 사랑으로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
고린도 교인들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함으로 일치 단합해야 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일치 단합하며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며 주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을 것이다.
1]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가페'(*)는 '사랑을 가지고'(with charity)로 번역하기보다는 '사랑안에서'(in love)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전치사 '엔'(*)이 '도구' 혹은 '기구'의 용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본 절에서는 '범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Lenski, Morris).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그들의 행동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어야 한다.
바울이 마지막 권면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랑을 최고의 것으로 본 동시에 최종적인 열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고전 16: 15 아가야의 첫 열매 -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
스데바나의 집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바쳐진 가정이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은 교회의 봉사자들이었던 것 같다.
1]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1) 스데바나
스데바야의 회심은 바울이 아덴에 복음을 전했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행 17: 34 -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행 17: 34의 누가의 기록이 스데바나의 회심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면 본 절과 지명의 차이의 보이는 문제가 생기지만, 본 절에서는 스데바나 개인만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가족 전체를 가리켜 아가야의 첫열매로 지칭한다고 보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2) 집
'집'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키안'(*)은 라틴어의 '파밀리아'(familia)와 마찬가지로 '가족들'뿐만 아니라 '노예들'까지도 포함하였다(Boice).
따라서 스데바나가 아덴에서 회심한 이후에 아가야에 돌아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회심시켰다고 볼 수 있다.
2]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1) 성도 섬기기로
바울이 보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 때문에 스데바나의 가족이 어떤 종류의 봉사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둘로 나눌 수 있다.
① 혹자는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돕는 일, 자기 집을 집회 장소로 내어 놓는 일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Godet).
② 혹자는 스데바나가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에 많은 연보로 봉사했다고 본다(Edwards, Hofmann).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①의 견해가 보다 더 옳은것 같다. 왜냐하면 ②의 견해를 따르면 스데바나가 연보를 시작한 것은 바울이 연보에 대해 가르친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행했다는 뜻이 되는데 연보를 시작한 것이 시기상 그렇게 이르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 작정한 줄을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태산 헤아우투스'(*)는 '스스로를 준비시켰다'라는 의미로 스데바나의 가정이 자발적이고도 헌신적으로 봉사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또한 그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직무로 선출(選出)되지도 않았음을 추측케한다(Morris).
3]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일보다는 같은 성도로써 권면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동등한 자세보다 더욱 검소하게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권하였다.
고전 16: 16 수고하는 사람 -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
교회 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권면하였다.
1]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순종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탓세스데'(*)는 '휘포탓소'(*)의 명령형으로 '휘포탓소'가 능동태일 경우에는 '밑에 두다', '밑에 첨부하다' 등의 의미이지만 본 절처럼 중간태로 쓰이면 '자신을 복종시키다', '주(主)로 인식하다'(acknowledge as lord) 등의 의미로 쓰인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스데바나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자발적인 순종을 본받아 자신들을 낯춰 교회와 성도를 섬기기에 힘쓰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서신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나이나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일을 천성적으로 못하였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의 이러한 결점은 바울의 서신보다 약 35년 늦게 보내어진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서신에도 나타난다(Godet).
고전 16: 17 부족함을 채움 -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
그들은 바울을 찾아왔고 정신적으로 또 아마 물질적으로 그를 돕고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바울과 또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헌신된 자들을 세우셔서 자기의 양들을 지키시고 양육하게 하시고 교회가 진리 안에서 바르고 질서 있게 진행되기를 원하신다.
1]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이들은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등장한다. 브드나도는 바울의 편지가 있은 지 약 35년 뒤에 기록된 로마의 클렌멘트의 편지에는 종종 등장하지만 동일인이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런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아가이고는 다른 곳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노예였거나 노예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그들이 스데바나의 노예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고(Godet, Grosheide), 혹자는 1: 11을 근거로 하여 글로에의 종들이었다고 추정한다(Edwards, Lenski). 이 견해들 가운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분명치 않다.
2]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 너희의
'너희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메테론'(*)은 공인 본문을 비롯하여 오래된 사본들(P, , A)에서는 '휘몬'(*)으로 되어 있지만 이들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2) 부족한 것
'부족한 것'에 해당하는 '휘스테레마'(*)는 적은 재산을 가리키기도 하고, 물질적 궁핍을 의미하기도 한다.
* 막 12: 44 -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고후 8: 14 -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또 믿음의 교훈이 부족하다는 것
* 살전 3: 10 -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을 나눔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빌 4: 10 -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본 절에서는 물질적인 부족함보다는 사랑의 나눔의 부족함을 가리킨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인들을 행한 바울의 충고와 애정을 대신 전해 주었고 또한 바울에게도 그를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을 전해줌으로 바울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은 고린도 교인들과 떨어져 있는 바울에게 그들 세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고전 16: 18 마음을 시원하게 -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의 복음의 일을 위해 또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한 봉사자들을 존중하고 알아주고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1]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뉴마'(*)로 바울이 여기에 '프쉬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스데바나와 함께 온 형제들이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시원함을 준 것은 단지 감정상의 위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혼에까지 영향을 끼쳐 참안위를 주었음을 가리킨다(Godet).
2]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헌신자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도록 알아주어야 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람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십시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