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커다란 액자에 정지용의 시
'향수'가 캘러그라피로 흐르고 있었다.
캘러그라피는 활판이나 워드프로세서로 찍은
생명 없는 활자 말고
영혼의 숨결을 담아 쓴 글자를 말한다.
위 액자를 보노라니
이북으로 올라간 정지용이 떠오르고
그의 소설 임꺽정이 떠오르고
박인수와 이동원이 떠오르고
서예가 이영미가 떠오르고
어린 시절 실개천이 내려다보이던
내 고향이 떠오르고
함께 학교 다니던 순이가 떠오르던데
그 순이는 지금 뇌졸중 재활 치료 중이다.
어제 경희대 의료원에 문병하고 돌아왔는데
위 액자는 거기에 걸려있던 거다.
집에 돌이오니 전화가 오더라.
와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나는 그랬다.
밝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도 잘해서
나도 고마웠다고. / 2024. 6.
이제 나는 고향이 있어도 고향이 없다.
산천은 의구하겠지만 인걸이 없어서 그렇다.
오늘 대전에 간다.
고향친구들과 함께 가는 거다.
고향친구 섭이가 대전에 사는데
거길 가보잔다.
명선이, 수자, 명자, 정자, 또 정자
그리고 경희가 같이 가잔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이 사라진 고향의
그 인걸들을 보고 와야겠다. / 2024. 11. 25.
어제는 거길 다녀왔다.
그래서 탁구 동호회 모임도 빠졌다.
가보니 대전이 아니라 금산이었다.(추부?)
터 잡은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는데
메타세쿼이아 다섯 그루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단다.
그게 커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주인을 품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80 노객들은 하릴없이 나이만 먹어가며
감탄만 하고 있었다.
장한지고~
고향을 떠나는 일도 없이
토라지고 비틀리는 일도 없이
나무야!
너는 어찌 그리 늠름하냐~
어제는 그렇게 하루가 갔나 보다. / 2024년 11월 어느 날
위 글은 지난해 가을의 일기다.
어느 회원이 군고구마 이야기를 하기에 꺼내봤다.
어느 회원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질타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찔린다 했는데
욕심을 경계하자는 뜻일 거다.
지난가을에 대전을 거쳐 금산에 거주하는 벗을 찾았을 때 이야기인데
거기 고구마가 있었고, 장작이 있었기에
즉석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기로 하고
내가 불을 지폈다.
한참 구워지는 즈음에 시계를 보니
대전에서 출발하는 열차 탈 시간이 가까워 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서로 고구마를 집어 씨게 되었는데
나는 비교적 작은 걸 쌌던 모양이고
남들은 큰걸 쌌던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대전발 열차를 타고
군고구마를 펼쳐서 먹기 시작했는데
나는 잘 익은 걸 먹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설익었다고 투덜거리는 거였다.
글쎄, 큰 걸 먹겠다고 욕심부리지 말았어야지~
고구마는 찌다 말거나 굽다 말면 못 먹는데...ㅠ
욕심이 빚어낸 결과였다.
80년대 중반이었나 보다.
중랑천변에 루핑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그건 무허가라서 부동산등기부에 등재되지도 않는
이름만 가옥이었다.
그러나 구청의 건축과에는 루핑가옥 소유대장이 있었다.
정부시책의 흐름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걸 간파하고 무언가를 꾀하고 있었는데..
당시 잠실벌엔 시영아파트 신축계획이 수립 중이었고
루핑가옥 소유자들에겐 그걸 자진 철거토록하는 대신
시영아파트 입주권을 주기로 하는 정책이 수립 중이었다.
올타!!
일요일에 중랑천에 나가 실태를 살펴보고 난 뒤에
구청에 들려 루핑가옥대장을 열람하고
소유대장 상의 소유권자들을 찾아가서 10개를 샀다.
한 개에 5만 원씩,
한참 뒤에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입주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루핑가옥대장에 등재된 사람들에게 입주권을 준다는 거였다.
얼마 뒤에 루핑가옥 소유자가 아니라
실제 루핑가옥에 살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입주권 딱지를 되돌려달라는 거였다.
그것 참!
그들은 루핑가옥 소유자에게 전세금을 주고 살다가
쫓겨난 사람들이었고
나는 루핑가옥 소유자로부터 딱지를 산거였다.
그래서 찾아온 사람들을 따라 그 거처를 찾아가 봤는데
그들은 루핑가옥 대장상의 소유자가 아닌
봉천동 산비탈의 달동네에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아뿔싸!! 그래서 그들에게 루핑가옥 철거증을 돌려주고 말았는데
나의 부끄러운 욕심이었던 거다.
그래도 루핑가옥 소유자에게 돌아갈
아파트입주귄을
루핑가옥 세입자에게
돌아가게 했으니
나는 구세주이기도 했던 거다.
2025. 2. 26. 도반(道伴)
첫댓글 게으른 소 움메하고소리지를때
저는 태어났다고.울엄니가 말했었죠
농삿일바쁜데.계속책만본다고
분명.대통령부인될끼다.하던 울할머니.
님.글읽다보면
어린시절 생각이나.한줄쓰게됩니다.
울동네 처자들은
죄다.산업체 공장보냈는데
유일하게.울아부지만.나를 도시로 유학보내셨고.
딸키워 뭐하냐고손가락질 당하셨지만
지금.그큰딸은.든든한울집가장이라며
손잡으시고.세상떠나셨네요. .답글이길어지는건
님글탓입니다.
지금도 달동네가있나보군요. .
제 잘못이라고요?
그런 잘못은 또 해도 괜찮은거죠.
아버지 생각 많이 나겠네요.
달동네는 80년대 이야기죠.
산비탈에 굴을 파고
가마니로 입구에 출입문 해걸고
그모습을 보고 제가 눈물도 흘렸다네요.
@도반(道伴) 어릴적.외갓집이 봉천동였는데
다들세들어 사는데.
그당시.스레트로지은집들이
많었는데.오손도손
정겹게 사시든데
지금은.엄청변해버렸지요. .
@로터스 네에, 70년도생인 제 사위도 봉천동에서 신혼살림 시작했다네요.
말씀하신 곳과 인연이 있습니다
금산군 진산면에 제 첫 직장
농장과 부화장이 있어 자주 갔지요
봉천동에는 아파트 재건축 할 때
잠시 살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아파트촌으로 변모했지요
어제 저녁엔 군고구마를 먹었습니다
총각네라는 체인점에서 사 온
아주 맛있는 군고구마였습니다
세 꼭지 모두 저와 인연이 있군요.ㅎ
추부란곳이 추어탕으로 유명하다 하고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서강대 후문 루핑판자촌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급했는지 이웃집에 딱지를 팔아
우리는 재개발 하는 곳으로 이사를 못 갔습니다.
제가 장녀이고 올망졸망 자식이 6명이나 되는데
아버지를 원망하는 엄마 막내 데리고
친척집으로 가출한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어릴때 매일 점심대신 물고구마를 삶아 주신
전라도 해남이 고향인 엄마때문에
고구마 싫어서 거의 안 먹습니다.
지금도 삶아서 쪽 빨면 껍데기만 남는다는
해남물고구마 드시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루핑가옥 슬픈 역사가 또 있었군요.
저는 욕심으로 그 딱지를 소유자로부터 샀었지만
결국은 불쌍한 세입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이 돌아가게 했지요.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부러움으로 머물러 갑니다.
더 행복하시고
더 아름답길
기도합니다.
김옥춘 올림
네에 고마워요.
이 향수 라는 싯귀 는 그저 빠져 들게 되지요
왜 정지용 님은 북 으로 가셨을까 라늗 안타카움 있고요
선배님 그래도 옛 벗님들과 조우 하며 지내시는 모습 평온 해 보이고 순이 라는분은 첫 사랑 이신가요
멋지십니다
첫사랑이라고라고라?
어린시절 동무지요.ㅎ
향수 한번ㅇ불러서 올려보세요.
박수 치게.
캘리그라피라는 글씨체도 있었군요
그림인듯,물결인듯,참 아름답군요
그 글씨체가 벌써 전에 유행했지요.
정원이 굉장히 넓은 집이군요 잘 가꾸고
자자 친구들과 즐건 하루 여행에 고구마가 맛있게 함께 했네요
자자친구?
그랬답니다.
고구마 그거 굽기가 쉽지 않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