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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7일,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은 정신장애인의 자조와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의 근본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행정 중심의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동료지원쉼터를 ‘주간형’과 ‘종일형’으로 구분하고, 동료지원인 교육훈련기관에 정신의료기관을 포함시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는 정신장애인의 자발적 회복을 촉진하려는 본법의 취지를 왜곡하거나 축소할 우려가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15조의4(2026.1.3. 시행)는 동료지원쉼터를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당사자가 임시로 보호받으며 동료의 상담과 지원을 통해 회복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규칙은 이를 단순한 정서 안정 프로그램 제공 시설로 정의하고, ‘주간형’이라는 운영 형태를 추가함으로써 쉼터의 역할을 시간적·기능적으로 제한했다.
정신건강의 위기는 주간이나 야간으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제도의 목적은 행정 효율이 아니라 위기 당사자의 실질적 안전과 회복에 있다. 이에 따라 쉼터의 운영 형태는 시간대 구분이 아닌 위기 대응과 회복 지원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동료지원인 양성기관으로 정신의료기관을 포함한 조항은 동료지원의 기본 원리와 상충한다. 동료지원은 치료가 아닌 경험의 공유와 상호 지지를 기반으로 하며, 수평적 관계 속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정신의료기관은 본질적으로 진단과 치료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어, 그 안에서 자율적이고 당사자 중심의 교육과정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기는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여러 차례 당사자단체가 제시한 의견과 현장의 경험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채 행정적 관점에서 개정안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가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제도는 실제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정책 효과성도 낮아질 수 있다. 따라서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행정의 효율보다 당사자 중심성, 회복 경험의 전문성, 지역사회 연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을 재검토하여,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참여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동료지원쉼터는 주간형 운영이 아닌, 위기 대응과 회복 지원이 원활히 가능한 체계(동료지원센터 전환 등)로 재정비되어야 하며, 동료지원인 양성기관 지정 기준에서는 정신의료기관을 제외하고, 당사자 중심의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정신건강 정책 과정에서 당사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절차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회복은 행정의 통제가 아닌, 당사자의 경험과 동료의 연대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시행규칙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법의 취지에 맞는 당사자 중심의 회복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신건강 정책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2025. 10. 28.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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