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마라톤 전투와 산미나리
그리스용사의 용맹한 기운 산미나리에 ‘비밀’ 있었네
‘마라톤’ 지명 뜻은 산미나리(회향) 많이 자라는 땅로
마군, 고작 1만 명 병력으로 20만 페르시아군 물리친
‘마라톤 전투’ 기념해싸우기 전 씹고 출정
산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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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의 유래는 모두 알고 있다. 기원전 490년,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 연락병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까지 42㎞를 달려와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친 후 숨을 거둔 것을 기념해 열린 경기가 마라톤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평소에도 적지 않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소식을 전했을 연락병이 왜 42㎞를 뛰었다고 사망했을까? 사연이 있다. 마라톤 전투가 벌어지기 전,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약 150㎞를 이틀 만에 달려 페르시아의 침공 소식을 전했다. 스파르타는 즉각적인 지원 대신 신의 계시에 따라 보름달이 뜬 후 병력을 보내겠다고 했고 지원군이 늦어진다는 소식인 만큼 전력을 다해 뛰어 아테네로 돌아갔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후 42㎞를 달려 승전보를 전하기에 앞서 이미 왕복 300㎞를 있는 힘껏 뛰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뛰었기에 숨을 거둔 것이다.
전투 중인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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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궁금한 점이 또 있다. 잘 뛰었기 때문에 연락병이라는 보직을 받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평소 무엇을 먹었기에 며칠 사이에 그렇게 엄청난 거리를 뛰어다닐 수 있었을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달리기 실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꾸준한 운동과 함께 운동선수에 버금갈 만큼 제대로 영양을 섭취했기 때문이었을까? 페이디피데스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며칠 사이에 342㎞를 전력을 다해 뛰어다녔을 정도면 평소 운동선수 못지않게 체력을 관리했을 것이다.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상당수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전문 연락병의 식단을 짐작해볼 수 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고대 올림픽 경기의 첫 번째 우승자는 192m 달리기인 스타디온에서 승리한 엘리스 출신의 코로이보스다. 직업이 요리사였던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는 잘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무렵 그리스 상류층 출신이었던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주로 단백질로 근육을 단련했다.
고대 올림픽에서 여섯 차례나 우승했다는 레슬링 선수 마일로는 도시국가 크로톤의 군인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올림픽 우승의 월계관을 쓰고 부대를 지휘하면서 체력과 용맹을 과시했다. 마일로는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승리한 후 상으로 황소를 받았는데 이 황소를 어깨에 메고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았을 만큼 장사였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선수들은 평소 고기를 먹으며 단백질을 공급했지만, 시합을 앞두고는 특별한 음식으로 체력을 관리했다. 그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이 마늘과 양파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양파가 힘을 북돋워 주는 자양강장제 기능을 한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고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시합 전에 힘을 내려고 양파를 먹고 양파 주스를 마셨으며, 로마 검투사도 싸우기 전 몸에 양파를 문지르면 근육이 강해진다고 믿었다.
또 서양 고대 문헌에서는 마늘이 육체적인 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던 식품으로 나온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The Histories)』에서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노동자에게 마늘을 제공했다고 적었고,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 역시 로마에서는 병정과 선원, 노동자들이 마늘을 먹는다고 했다. 고대 올림픽 참가 선수들도 운동능력을 향상한다며 시합 전 마늘을 먹었다니 페이디피데스 역시 고기와 양파·마늘을 먹으며 평소 장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체력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하나,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먹었다는 기록이 없지만, 페이디피데스는 먹었을 수 있는 식품이 있다.
로마 병사들이 평소 허리띠에 차고 다녔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씹어 먹었다는 산미나리 씨앗, 회향(茴香)이다. 향신료인 회향은 이탈리아 요리에 많이 쓰이는 양념이다. 양고기꼬치 양념으로 많이 쓰이는 쯔란(cumin)과 비슷한 향신료인데, 로마 군인들은 이런 회향을 씹으면 힘이 생기고 용기가 솟아나 적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배경에는 마라톤 전투의 승리가 전설로 자리하고 있다.
마라톤의 기원이 흔히 그리스의 지명으로 마라톤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알려졌지만, 마라톤이라는 지명은 사실 산미나리, 회향이 많이 자라는 땅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회향이라는 향신료를 고대 그리스어로 마라토스(marathos)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지금의 이탈리아나 고대 로마에서는 회향을 양념으로 많이 사용하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로마 군인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회향을 씹었던 이유는 그리스군이 1만 명의 병력으로 20만 명의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 그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달라는 주문이었다고 한다. 승전보를 알리고 숨을 거둔 페이디피데스처럼 며칠 사이에 342㎞를 뛰어다니며 죽을힘을 다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던 용기와 힘을 달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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