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편 묵상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연중 33주간)
제사권
제 94 편
1 복수의 하느님, 야훼여, 복수의 하느님, 나타나소서.
2 일어나소서, 세상을 재판하시어 교만한 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소서.
3 악인들이 언제까지, 야훼여, 악인들이 언제까지 만세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은 악담하며 큰소리치고 악한 짓을 하며 스스로 거만합니다.
5 야훼여, 저희가 당신의 백성을 짓밟으며, 당신의 택하신 민족을 괴롭히옵니다.
6 과부와 나그네를 목 조르고,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야훼는 안 본다. 야곱의 하느님이 알지 못한다." 합니다.
8 이 미련한 자들아, 정신차려라. 어리석은 자들아, 언제 깨닫겠느냐?
9 귀를 붙여주신 분이 듣지 못하시겠느냐? 눈을 끼워주신 분이 보지 못하시겠느냐?
10 만백성을 교훈하시는 분이 벌하지 못하시겠느냐? 사람을 가르치시는 분이 그것을 모르시겠느냐?
11 야훼는 사람의 생각을 다 아시고 그것이 바람결 같음도 알고 계신다.
12 야훼여, 당신의 교훈을 받아 당신의 법을 배우는 사람은 복됩니다.
13 마침내 악인들이 묻힐 무덤을 파는 날, 괴롭던 나날은 모두 지나고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14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택하신 민족을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15 마침내 법정이 정의로 돌아오리니 정직한 사람들이 정의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16 그 누가 나를 위해 악한을 치러 일어나며, 그 누가 내 편을 들어 이 못된 자들을 칠 것인가!
17 야훼께서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이 몸은 하릴없이 적막한 무덤에 떨어지리라.
18 그러나 내가 "다리가 휘청거립니다." 하고 말하면 야훼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나를 붙들어주신다.
19 걱정이 태산 같을 때, 위로해 주심으로써 마음에 기쁨을 채워주신다.
20 법의 허울로 남을 해치는 법정과 주께서 어찌 함께 어울리시리이까?
21 그들은 의로운 자의 목숨을 노려 달려들고 죄없는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22 야훼께서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나의 하느님, 내가 숨을 바위이시니,
23 그분은 그들의 죄를 갚으시고 그들의 죄를 물어, 없애버리시리라. 야훼 우리 하느님께서 그들을 없애버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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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편은 짧지 않은 분량에 여러 주제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느님께 간청하고, 탄식하며 불평까지 늘어놓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에 대한 분명한 신뢰를 고백하기도 하고, 악한 자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절에서 시인은 하느님을 복수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례적입니다. 교만한 악인들에 대해 보복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이들에 대해 하느님께서 직접 철퇴를 가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본인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근심 중에도 시인은 악한 자들이 벌이는 끔찍한 일들과 악행에 대해 열거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하느님을 찾는 것이지요. 선한 의도를 가지고 그들과 맞서거나 대항하면서도 연약한 자신의 힘으로 물리치기 어렵기에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을 나열하며 미어지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걱정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근심 중에도 시인은 하느님께 위로를 얻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절대로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구절이 시 전체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시인에게 하느님은 악인들의 악행에 복수하시는 하느님보다는, 선하게 살려 노력하지만 나약하기만 한 자신을 위로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즉 악인들을 처참하게 무너뜨려 달라는 극단적인 용어들을 썼지만, 그들의 악행을 나열하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는 말이지요.
악행에 보복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닐 터. 시인의 기도는 결국 우리가 바른길에 서고, 옳은 길을 가도록 항상 동행해 달라는 간구로 묵상하게 됩니다. 심판과 복수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기에 의로우신 하느님의 힘을 기대하며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가운데서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