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꽃 외 1편
김형로
哭을 꽃으로 읽은 적 있다
한참을 그렇게 읽었다
뜻이 커졌다 오독이 은유가 되었다
그 후로 꽃을 보면 우는 것 같았다
꽃을 哭이라 한들
哭을 꽃이라 한들
꽃을 哭으로 읽으면
꽃은 세상을 위한 곡쟁이가 되고
哭을 꽃으로 읽으면
우는 세상이 환한 서천꽃밭 같다
哭을 매단 꽃
꽃을 둘린 哭
늘 흔들리는, 흔들리며 우는
사람이라는 꽃
사람이라는 哭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설문대할망 다리를 놔 줍서
너럭치마에 고래실 흙 덩실덩실 떠 담아
남해나 동해 숨텅숨텅 놓아 줍서
나 백두산 마슬 다녀올라네
관덕정에서 북청이나 단천 어디쯤
다리 좀 놔 줍서 설문대할망
거기서 갑산 삼수 거쳐
영등할망 부럽지만 나 걸어갈라네
산에 산에 핀 꽃들 다시 볼라네
엎드려 꽃과 함께, 산사름 함께 며칠 지내다가
백두산 전에 고하겠네
큰넓궤 지슬과 정방폭포 총성을
정뜨르 안경과 알뜨르 녹슨 전선을
얽은 손과 부르튼 발을
그 위로 떨어지던 핏빛 동백꽃을
한몸으로 왜 못사나
훠이 훠이 날려 주고 오겠네
그해 남쪽 섬
붉지 않은 바위 셔낫던가
돌아앉지 않은 꽃 이서낫던가
설문대할망 다리를 놔 줍서
한라에 봉화 오르면
웃밤애기 알밤애기 오름마다 불을 받고
벌겋게 섬이, 달마저 붉게
백두에도 불 오르는 통일의 그날
호랑이도 곰도 느영 나영 춤을 추고
사름이 사름으로 살아지도록 신명나게 놀아봅주
좋은 싀상 우리 같이 살아도 봅주
설문대할망 어서 다리부터 놔 줍서
울어도 울어도 못다 운 노래 한 자락
가심에 박힌 돌멩이 들어내듯
검은 땅 검은 숨 붉게 울어 볼 거네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가만 풀어 볼 거네
― 김형로 시집, 『숨비기 그늘』 (삶창 / 2023)
김형로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파주, 춘천에서 유년을 보내고 부산에서 성장.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미륵을 묻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2021년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