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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6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우상혁 한국 남자 높이뛰기 신기록을 세우며 국제대회에서 우승.
우상혁은 체코에서 열린 ‘월드 인도어 투어 브론즈 후스토페체(World indoor Tour Bronze Hustopece)’ 높이뛰기 대회에서 2m36을 뛰어넘어 주본 해리슨(미국·2m32)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세운 한국 최고기록(2m35)를 1㎝ 경신한 신기록이다.
2m34를 1차 시기에 넘어 대회 우승을 확정한 우상혁은 2m36으로 바를 높인 뒤 1, 2차 시기에서는 실패했지만, 3차 시기에서 바를 넘었다. 우상혁은 바를 거의 건드리지 않고 신기록을 세운 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기쁨을 만끽했다. 월드 인도어 투어 브론즈 후스토페체는 유럽 정상급 선수와 유럽외 선수를 초청해 열리는 대회다.
2022년 평택 냉동창고 화재 진압중이던 소방관 3명 사망
2021년 손흥민(28세 토트넘) 유럽 빅리그 419경기 만에 150호골 기록
2021년 코스피 지수 사상 첫 3,000 기록
2019년 미스 모스크바 출신 모델 리하나 옥사나 보예보다니(26세)와 결혼한 무하맛 5세 말레이시아 국왕(50세) 전격 퇴위, 2020년 7월 이혼
2016년 북한 4차핵실험, 첫 수소탄 시험 성공 주장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파업 지원 위해 크레인 농성 돌입(11.10 노사합의 후 농성 중단)
2009년 박지성, ‘아시아판 발롱도르’ UAE 슈퍼어워즈 선정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2009년 1월 6일 ‘아시아판 발롱도르(ballond’or)’인 UAE 슈퍼어워즈 아시아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슈퍼어워즈는 아랍 지역 축구주간지 <슈퍼>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라비아 국가의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시상식으로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대한축구협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5일 “박지성이 UAE 시간으로 6일 오후 슈퍼매거진이 주는 슈퍼 어워드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슈퍼어워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권위를 인정 받는 스포츠언론 슈퍼매거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상인데 올해는 아시아선수에 박지성, 아프리카선수에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아스널)가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UAE 아부다비 스포츠 카운실의 세이크 하자 빈 자예드 알 나얀 회장이 후원하는 이 상은 아시아-아프리카판 발롱도르를 자처할 정도로 큰 자부심과 의욕을 가진 대형 프로젝트다.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 주심을 봤던 이탈리아의 스타심판 피에루이지 콜리나가 선정위원장이며 대한축구협회의 김주성 국제부장도 선정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은 팀 일정에 따라 7일 UAE 아부다비의 에미레이츠 팰리스 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했으며 대신 수상 소감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 감사를 전했다.
2009년 롯데칠성, 두산 주류사업부문 5030억원에 인수
롯데칠성음료가 소주 ‘처음처럼’ 등을 생산하는 두산의 주류사업부문인 두산주류BG(Business Group)를 5030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본계약을 2009년 1월 6일 체결했다.
롯데칠성은 매수 자문사인 KB투자증권과 협의 후 3주간의 실사를 거쳐, 2월 중 인수 대금을 정산해 거래를 마무리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두산주류BG의 인수주체는 롯데칠성음료가 지분 100%를 갖는 자회사인 ㈜롯데주류BG로 정해졌으며 대표이사에는 정황 부사장이 선임됐다.
롯데가 인수하는 두산주류BG는 소주 ‘처음처럼’·‘산’·‘그린’ 과 약주 ‘국향’·‘군주’, 포도주 ‘마주앙’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롯데칠성은 기존의 위스키(스카치블루), 전통주(천인지오), 맥주(아사히맥주 수입), 와인사업에 이어 소주 시장까지 진출하게 돼 주류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그룹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03년 부산 광안대로 개통
광안대로는 부산 수영구 남천동 49호 광장에서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근을 잇는 총연장 7.42㎞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국내 최대의 해상 복층 교량이다.
1994년 12월 착공하여 2002년 12월까지 총 공사비 7899억원을 들여 8년간의 공사를 하였으며 연장 7,420m 폭 18m∼25m의 2층구조 왕복8차로의 교량이며 현수교900m, 트러스교 720m, 접속교 5,800m이다
또한 지진 내진 1등급(리히터 규모 6), 풍속 45m/sec(부위별 67 ~ 72m/sec), 파고 7m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광안대로는 교량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이 일품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손을 뻗으면 잡힐듯한 오륙도, 광안대로를 둘러싼 황령산과 아기자기한 백사장, 해운대 동백섬과 달맞이 언덕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국내에서 처음으로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첨단 조명 시스템이 구축되어 10만가지 이상의 색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경관조명은 광안대로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 실리콘 유방확대 피해자 미국서 집단소송 승소
실리콘 보형물을 사용한 유방확대수술의 부작용으로 피해를 본 국내 여성들이 거대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한 8년여간의 소송에서 이겨 내달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실리콘 젤 제조사인 미국 다우코닝사(社)를 상대로 한 국내 여성 1220여명의 집단소송을 맡았던 김연호(金然浩) 변호사는 6일, “작년 12월 11일 미국 연방법원이 다우코닝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실상의 최종 판결을 내림에 따라 내달 18일부터 전세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절차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따라 국내 여성들이 받게 될 액수는 1인당 최대 9만7500달러(약 1억1700만원)까지 총 2500만달러(약 300억원) 가량”이라며 “이들 가운데 440여명은 다우코닝사 제품을 사용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600달러(약 72만원)씩 보상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1998년 미국, `루나 프로스펙터` 무인 달 탐사선 발사
미국이 1998년 1월 6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무인 달 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를 발사했다. `프로스펙터`의 달 탐사는 지난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의 우주인 유진 서먼과 해리슨 잭 슈미트가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지 25년만의 일이었다. 프로스펙터는 지구를 떠난지 105시간 뒤인 11일 오후 8시(한국시간)에 달 궤도에 진입했다. 프로스펙터에 든 비용은 6천3백만 달러. 30년전 첫 달 탐사때 2억6천만달러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들었다.
길이 1.2m, 무게 2백96kg인 드럼통 모양의 `루나 프로스펙터`는 1년 간 달 1백km의 궤도를 돌며 달 표면지도를 작성했고, 극지(極地)의 얼어붙은 물, 가스 및 광물의 존재 여부를 보여줄 증거를 찾았다. `루나 프로스펙터`가 보내온 자료를 분석한 미국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와 달 연구소는 우주 탐사선 달에 최고 1백억t의 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달의 남북극 근처 토양에 최소 10억∼최고 1백억t의 물이 얼음형태로 묻혀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달 탐사 역사는 1959년 1월 소련의 무인우주선 루나 1호 발사, 1959년 9월 소련의 무인 우주선 루나 2호 최초 달 착륙, 1962년 4월 미 우주선 최초인 레인저 4호의 달 착륙, 1968년 12월 미우주인 프랭크 보먼과 짐 로블, 빌 앤더스에 의한 인간최초의 달 상공 비행, 1969년 7월 미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에 의한 인간 최초의 달 착륙, 1972년 12월 미우주인 유진 서먼과 해리슨 잭 슈미트의 인간으로서는 마지막 달 착륙으로 이어져왔다.
1996년 인기가수 김광석씨 사망
인기가수 김광석씨(32)가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기 집 거실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나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수십곡의 히트곡을 발표했던 그는 서정적인 노래들로 20∼30대 젊은층들 사이에 인기를 누려온 국내의 간판 포크스타다.
김광석은 19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기성 가요계에 진출한 첫 가수이다. 명지대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통기타를 치던 그는 1984년 대학 노래패에 가입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87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해 운동권 음악의 기수 역할을 했으며 1988년 1월 대학생들이 만든 7인조 포크록그룹 ‘동물원’의 리드보컬로 제도권 음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4년 대입본고사 14년만에 부활
14년만에 본고사를 치르는 서울대 등 명문대 입구와 교정에는 수험생을 격려하기 위한 유머 섞인 플래카드와 격문 등이 나붙어 시선을 끌었다.
각 대학에는 고교 선후배들이 이른 아침부터 길목을 지키며 자신들의 출신학교 수험생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꽹과리, 북, 심지어 브레이크댄스까지 추며 격려전을 벌였다.
과거 시험지 도난사건이나 부정출제 시비등으로 큰 홍역을 치른 탓인지 대학들은 문제지 보안 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서울대 본고사 출제본부가 차려진 기숙사 행정동과 917동 주변은 그동안 1.5m 높이의 녹색 펜스만 설치,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해 왔으나 이날 아침엔 2백여m 떨어진 출제본부 진입로까지 흰색띠를 치고 접근 엄금 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경비차량을 배치하는등 경비를 더욱 강화했다.
한편 고려대는 이날 오후 2시 마지막 시험과목인 영어-수학Ⅱ 시험이 시작되자 지난해 12월 24일부터 교내 외국인숙사에 마련했던 입시출제본부의 해단식을 갖고 출제-검토위원 35명을 해금 시켰다.
출제위원들은 “대입학력고사 시험지 도난사건 등의 영향으로 이번에는 지정장소 이외에서는 절대 휴식을 취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식사시간도 엄수해야 하는 등 20여가지의 까다로운 생활수칙을 지키느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1993년 세계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추정 `삼장문선` 발견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고려의 직지심경(=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1377년간)보다 30여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의 금속활자본 `삼장문선`이 발견됐다. 1993년 1월 6일 상암문고가 "고려시대 서적원 간행의 `삼장문선`(원제 신간류편역거삼장대책)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며 이 책을 공개했다. 출간연대는 1341년에서 1370년 사이로 `직지심경` 보다 짧게는 7년, 길게는 36년 앞서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본의 활자들은 대-중-소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자 본문에 소자 두줄로 주석을 달아 인쇄할 수 있는 완벽한 체제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활자와 체제외에도 내용이 구본은 고려본, 신본은 조선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삼장문선`은 원나라에서 주관한 국제적인 과거시험(향시와 중서성 회시)의 대책문제를 뽑아 고시관의 비평을 곁들인 명답문집으로, 이 책에는 1314년에서 1335년까지의 출제가 들어있고 초간본은 1341년에 나왔다. 내용에 고려본인 구본은 경의를 표시하는 대두법을 사용, 원황제나 황실이 나오면 문장을 별행하고 있으나 조선본은 이를 무시, 출판국가가 다름을 확연하게 증거하고 있다.
1992년 한국-앙골라 국교 수립
1990년 서울-파리간 KAL여객기, 소련 시베리아 영공 첫 통과
우리 국적기가 1990년 1월 6일 정기편으로는 최초로 소련 영공을 통과해 서울-파리간을 운항했다. 여객기는 이날 밤 10시30분 서울발 파리행 대한항공 901편이 니가타-하바로프스크-모스크바 항로를 거쳐 7일 오전 3시30분 파리에 도착했다. 여객기에는 승무원 20여명과 승객등 2백90여명이 탑승했다.
이 여객기의 정기항로는 서울을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해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지만 대한항공측은 앵커리지 남쪽 리다우트 화산의 폭발로 기존항로 운항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시베리아 항로를 택했다. 교통부 관계자는 앵커리지의 화산폭발 활동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다가 4월 한-소간 직항로 개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시험비행 차원에서 관계기관과 협조, 소련측의 영공 통과 허가를 얻어냈다고 밝혔다.
우리 국적기의 소련 영공 통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동구권 선수단 수송을 위해 시베리아 영공을 통해 헬싱키까지 여객기를 운항한 일은 있으나 이때는 모두 전세기였다.
1990년 그린벨트내 재개발 허용
정부는 1990년 1월 6일 현재 규제일변도의 그린벨트제도를 주민생활 편의도모와 일반시민의 진정한 휴식처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대폭 개선키로 한 정부방침을 발표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내 주민 3분의2 이상이 원할 경우 해당관청이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낡고 불량한 주택, 축사, 가게 등 기존건물을 헐고 새로운 주거단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 또 현재 그린벨트 내 산림, 숲 등 자연공간을 시민들이 이용 가능하도록 관리인원을 대폭 확충하며 산림욕장 야영장 등 체육, 레저시설 등의 설치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이같은 방침은 현행 그린벨트 관련법규 및 행정조치가 지나치게 규제, 억제위주로 되어 있어 그린벨트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에 장애가 되어 왔다. 이는 민원의 소지가 될 뿐 아니라 그린벨트 내 자연공간의 관리가 사실상 방치돼 시민들의 이용도가 적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1981년 이란 미국 인질석방에 관한 알제리 중재안 수락
1980년 인도 총선에서 간디 재집권
1978년 충북 단양에서 진흥왕 순수비 발견
1978년 한국-기니 국교 수립
1972년 중국 군부 원로 진의 사망
중국 혁명 공신인 `10원수`의 한 사람이며 외교부장을 역임한 진의가 1972년 1월 6일 밤 11시 55분 숨을 거두었다. 71세였다. 1901년 사천성에서 태어나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했던 진의는 그곳에서 데모하다 체포되어 1921년 강제로 송환되었다.
귀국 후 22살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 1927년 무한 중앙군사정치학교에서 정치 공작을 담당한 후, 주덕의 부대에 들어가 초기 혁명의 근거지인 강서성, 호남성 경계선의 벽지 정강산에서 모택동과 합류, 군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신4군 창설에 관여했고, 화동 야전군 사령관, 제3야전군 사령관 겸 정치위원, 상해시장으로 활약했다.
건국 후인 1954년 주은래가 불러 국무원에 들어가 1958년에 외교부장에 취임했으나 문화대혁명 중인 1967년 군 원로들과 강청, 임표가 대립한 `2월 역류`사건으로 직무 정지를 당하고 급진파에게 거듭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진의는 비록 문혁으로 실각했으나 이날 추도식장에는 모택동이 직접 방문, 그의 죽음을 애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71년 미국 국방장관, 월남지상작전을 월남군에 연내 이양한다고 발표
1969년 길재호 공화당사무총장, 개헌논의 제기
1966년 철도화물운임 횡령사건
대검 이선중 검사를 특별반장으로 한 검찰이 1966년 1월 6일 철도청 소화물탁송료를 횡령한 이근상 서울역장 등 68명을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1백10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사건은 1966년 현재까지의 공무원범죄사상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됐다.
검찰은 지난 2년간 전국 12개 역에서 근무한 이들의 횡령액이 약3천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역 직원들은 지난 1964년 10월부터 1년간 모(某)제약회사 화물운임료 1천1백50만원 중 물표를 없애는 방법 등으로 3백20만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횡령한 혐의다. 서울 형사지법은 5월 20일 이들 피고인 중 35명에 대해 선고공판을 열고 이 가운데 14명은 실형을, 21명에겐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추징금 54만2천5백원을 물렸다
1962년 구정치인 연금상태 해제
1958년 문교부 한글전용안 실천요강 발표
1950년 영국, 중국을 승인, 자유중국은 영국과 단교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실시
1950년 1월6일, 정부수립 후 첫 고등고시 시험이 실시됐다. 이날의 고등고시는 행정과였고, 사법과는 1월26일에 치러졌다. 지원자는 각각 500여 명에 달했으나, 5명(행정과)과 19명(사법과) 만이 합격의 영예를 누렸다.
고등고시는 1949년 8월 12일에 공포된 국가공무원법에 의해 만들어졌다. 법에 의하면 고시와 전형을 통해 인재를 채용할 수 있었고, 고시는 고등고시와 보통고시로 구분됐다. 고등고시는 다시 행정과, 사법과, 기술과로 나뉘었고 보통고시는 4급(현 7급) 공무원을 채용하는 시험이었다.
고등고시는 13년 동안 치뤄지며 행정과는 총 14회에 374명, 사법과는 총 16회에 667명의 인재를 배출한 뒤 1963년 2월을 끝으로 사라졌다. 당시까지 고시보다는 전형에 의한 선발에 의존해 대다수의 인원을 선발했다.
사법과는 1963년 9월부터 사법시험제도로 전환돼 현재에 이르고 있고, 행정과는 1963년 3급을류(현재 5급) 공개경쟁 채용시험으로 대체됐다가 1973년 행정고시로 개칭됐으며 외무고시는 1968년에 행정고시에서 분리됐다.
고급관료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고등고시는 ‘과거제’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제가 처음 도입된 때는 고려 광종때. 광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호족출신들을 억압하고, 그 자리에 유교적 소양을 갖춘 새로운 관료들을 배치하고자 했다. 조선조는 과거제의 폐단이 가장 심했던 때. 합격자 중 20∼30% 밖에 등용되지 않아 벼슬자리 얻기가 어려웠던 탓에 합격자들은 권문세가의 이른바 ‘빽’에 의존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붕당과 파당분쟁이 그치질 않아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1949년 정부 일본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 요구
1944년 서독 레온 지방서 열차 충돌 사망 500명
1943년 미국 교육자 아보트 로렌스 로웰 사망
1941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반파시즘 선언
1940년 대마도에서 밀항선 교영호 침몰 130명 익사
1930년 최초의 우리말 사전 간행
1926년 조선총독부, 전(前) 중앙청 건물로 청사 이전
1925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내각 성립
1920년 통일교 교주 문선명 출생
1920년 조선총독부, 조선일보ㆍ동아일보ㆍ시사신문 발행 허가
3ㆍ1독립만세 운동은 일제의 무단정치를 포기토록 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며 식민지 조선 지도층에는 대오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같이 무단정치에 한계를 느낀 일제는 제3대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를 임명, 1919년 9월 10일 이른바 4개항의 ‘문화정책’을 발표했다. 민간지 발행허가도 그중 하나였다. 민간신문 허용방침이 알려지자 1919년 10월 장도빈이 ‘서울일보’를 신청하는 등 수십건의 발행허가 신청이 총독부로 몰려들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1920년 1월 6일 조선일보ㆍ동아일보ㆍ시사신문 등 3종의 민간 일간신문 발행을 허가했다.
조선일보는 경제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예종석, 동아일보는 매일신보의 편집장을 지낸 이상협, 시사신문은 친일단체 국민협회의 민원식 명의로 허가받았다. 조선일보는 3월 5일에, 동아일보와 시사신문은 4월 1일에 창간됐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이 두 신문은 창간되자마자 식민지 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기사를 게재, 일제에 의해 압수당하는 등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의 중추로 그 역할을 다했다.
1919년 동경유학생회학우회 독립선언실행방침 밀의
1919년 미국 제26대 대통령 데오도르 루스벨트 사망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이었던 데오도르 루스벨트가 1919년 1월 6일 사망했다. 미국 뉴욕주 뉴욕시 출생으로 1900년 대통령 W. 매킨리 밑에서 부통령으로 있다가 매킨리의 암살로 1901년 9월 제2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1904년 재선됐다.
대통령 재임 시 내정면에서는 혁신주의를 내걸고 트러스트 규제, 철도통제, 노동자 보호입법, 자원보존 등에 공헌하였으며, 외교면에서는 먼로주의의 확대해석에 의하여 베네수엘라 문제, 카리브해 문제, 파나마운하 건설 등 강력한 외교를 추진했다.
특히 러-일전쟁의 조정, 모로코 문제 중재 등에도 적극 힘써 1907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13년 폴란드 공산당 지도자 에드워드 기에레크 출생
1906년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 창간
1904년 러시아,만주에서의 특권확립 재천명
1902년 서양화가 도상봉 출생
1901년 인도네시아 정치가 수카르노 출생
1901년 아이슬란드의 시인 토마스 그뷔드뮌드손 출생
1884년 유전학자 멘델 사망
1852년 프랑스의 교육자 루이스 브라유 사망
1838년 독일의 작곡가 막스 브루흐 출생
1838년 모르스 미국 뉴저지 주에서 첫 전보 시험
1809년 프랑스의 교육자 루이스 브라유 출생
1766년 파라과이 독재자 프란시아 출생
1564년 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출생
1412년 프랑스 성녀 잔 다르크 출생
‘성녀(聖女)’ 잔 다르크가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412년 1월6일 프랑스 동레미에서 태어났다. 백년전쟁은 영국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고집해 1338년부터 1453년까지 115년동안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며 프랑스 땅을 황폐화시킨 전쟁이다.
잔 다르크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신앙심 하나 만은 누구 못지않은 농촌처녀였다. 그에게 ‘나라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가 내려진 것은 열세살이었지만 그가 전쟁에 뛰어든 것은 4년 후였다. 그는 열일곱살 때 곧 프랑스 국왕이 될 샤를 왕세자를 찾아, 흰 갑옷과 프랑스 왕가의 문장(紋章)이 수놓인 군기를 전달받았다. 전선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모습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되살려, 프랑스 최후의 방어선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기적같은 연전연승을 거둔다.
그러나 신(神)도 은총을 거두었는지 영국군에 사로잡혀 1431년 5월30일, 마녀로 낙인찍혀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열아홉이었다.
잔다르크의 활약상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6세’, 쉴러의 희곡 ‘오를레앙의 처녀’ 등 문학 곳곳에서 재현돼 역사를 뛰어넘는다. 라이프지(誌) 선정 ‘1천년 밀레니엄’을 일구어 낸 100인에 오르기도 했던 그도 한때는 기피인물 1호가 된 적이 있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이 그를 우상시하며 집회 때마다 동상을 앞세우고 행진했기 때문. 영국인은 지금까지도 잔 다르크(Jeanne d’Arcㆍ아르크 사람 잔)를 고유명사로 인정하지 않고 ‘조운 오브 아크(Joan of Arc)’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며 분을 삭힌다.
.샤를 드골은 ‘찰스 오브 골’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1402(조선 태종 2) 문과 과거시험 처음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