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술을 마시고 나면 다음날 그 복수를 제대로 당한다.
술꾼이 다음날의 복수가 두려워 술을 참을 일은 아니지만
소인은 항상 후회를 하며 술을 절제해야겠다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한다.
이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토요일에 마신 술이 일요일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월요일까지 영향을 미친다.
책 한줄 제대로 읽지 않고 빈둥대다가 점심을 차려먹고 팔영산으로 간다.
파란 하늘 가로 솟아 오른 흰구름이 뭉실뭉실하다.
성주마을로 들어가며 팔봉을 건너다 본다.
개천 우측으로 돌아 능가사 앞을 지나 부도전 앞에 차를 세운다.
차가 몇 대 서 있긴 한데 직원들 거 같다.
호젓한 산길로 접어든다.
비가 많이 왔는지 계곡에 하얀 물이 소리내며 흐르고
돌로 구들장처럼 짜 맞춰 새길을 깔아놓은 등산로도 젖어 있다.
자주 다닌 길인데도 힘이 든다.
종아리에 힘이 없고 진땀만 난다.
그래서 산을 올라야 한다고 힘들게 발걸음을 옮긴다.
40분이 다 되어 흔들바위에 닿는다.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 마신다.
작은 암봉과 뒷쪽 금지된 길을 생각하다가 포기하자 하고 편한 등로를 잡는다.
유영봉삼거리에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 닿는다.
등짝이 젖은 배낭을 내려놓고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르고 나서 유영봉으로 올라간다.
조망이 좋다. 해창만도 좋고 그너머 득량만도 좋다.
멀리 오나도의 섬들도 보이고 장흥의 천관산부터 제암산까지 보인다.
월출산은 안 보인다. 참나무 이파리 뒤로 여자만이 또렷하다.
순천시내 뒤로 백운산 줄기가 보인다.
동쪽으로 여수반도 사이에 하얀 아파트가 보이고 그 뒤로 하동 남해가 보이는 듯하다.
흰구름에 덮힌 산하와 들판이 깨끗하다.
내려와 2봉 성주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서는 한번 쉰다.
생황 사자 오로 지나 두류봉을 오르며 몇번이나 멈춰 뒤돌아 사진을 찍어본다.
두류봉 끝에 앉으니 햇볕이라도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땀을 흘려으니 술 생각이 날법도 하지만 몸상태가 안좋은지 술생ㄱ가도 안난다.
에이스를 꺼내 물에 먹는다.
마른 견과류통도 꺼낸다. 술도 안 마시고 안주만 먹고 칠성은 포기하고 내려온다.
과역에서 전어회를 떠 갈까 하다가 참는다.
퇴근한 바보가 얼른 오라는데 우도 앞으로 빠진다.
빨간 기둥을 박아 다리를 놓으려는 모양이다. 구름 사이로 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중산마을을 지나 전망대 앞으로 운전하는데 공사중으로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바보는 삼겹살을 사와 깻잎 몇 장 따오라 한다.
술을 참으려다가 몇 잔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