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편 묵상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연중 34주간)
제사권
제 95 편
1 어서 와 야훼께 기쁜 노래 부르자 우리 구원의 바위 앞에서 환성을 올리자
2 감사 노래 부르며 그 앞에 나아가자 노랫가락에 맞추어 환성을 올리자.
3 야훼는 높으신 하느님,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높으신 임금님,
4 깊고 깊은 땅 속도 그분 수중에, 높고 높은 산들도 그분의 것,
5 바다도 그의 것, 그분이 만드신 것, 굳은 땅도 그분 손이 빚어내신 것,
6 어서 와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야훼께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이끄시는 양떼.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니
8 “므리바에서, 그날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마라.
9 그들은 거기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서도 나의 속을 떠보고 나를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 세대에 싫증이 나버려, 마침내 나는 말하였다.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구나. 나의 길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구나.'
11 나는 울화가 터져 맹세하였다. '이들은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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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5편은 예배에 초대하고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찬양 시편과 예언적 훈계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아침 기도를 시작하는 초대 송가 (주여, 우리 입을 열어주소서. 우리가 주님을 찬미하리이다.)에 이어서 오늘 시편을 함께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송가라고 하고, 95편과 100편 중 하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한 성무일과로 초대하는 노래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그 시작부터 ‘환성을 올리자.’라고 노래합니다. 이어서 ‘노래 부르자,’ ‘나아가자.’ ‘환호하자.’라는 권고로 찬양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의 바위이신 하느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여 사는 양 떼와 같다고 고백하며 노래합니다. 목자와 양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가장 완전한 돌봄 그리고 친밀한 의탁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과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것은 7절 이하의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찬양이 고조되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경배가 끝날 줄 몰라야 하는 데 갑자기 예언자적 경고로 바뀝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이끄심을 받았는지 새삼스럽게 상기시켜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므리바와 마싸(민수 20:13, 출애 17:7, 같은 지명입니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광야 생활 중 하느님께 불순종한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인데요. 그들의 불순종으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낯선 곳에 묻히게 됩니다. 이곳에서 목이 마른 백성의 거친 불평으로 인해 모세가 바위를 쳐 물이 터지게 했음에도 결국 그들은 하느님의 질책을 받았습니다. 안식은 먼 미래에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참 안식을 위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분의 뜻을 항상 살피며 용기 있게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 마음 자세라는 사실을 새깁니다.
안정적으로 믿고 따르며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인한 아픔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분노와 화의 근원에 있는 단단한 두려움과 불안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고백하며 우리를 다잡는 바가 있습니다. 늘 우리를 살피고 또 살피며 걸을 때 세상이 주지 못할 참 안식을 주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온통 요란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마음은 평안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마태 11:29)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참 평안과 안식을 구하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걷습니다. 안전함과 평안함을 함께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