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트는 들녘
겨울 들머리 추위가 반짝 찾아온 십이월 첫째 주말이었다. 금요일은 평소보다 일찍 뭍으로 건너가 치과진료를 받고 친구와 잔을 기울였다. 이튿날 토요일 새벽은 지난여름 고향에서 온 마늘을 모두 까놓았다. 아침나절 북면 지인 농장을 방문해 안부를 나누고 농막 시렁에 시래기를 걸어두고 나왔다. 저녁엔 오래 만에 문학 동아리 정기모임 자리 얼굴을 내밀었더니 모두 반가워했다.
일요일 아침나절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구산 갯가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낚시꾼들이 더러 찾는 원전으로 가는 62번 버스였다. 최근 개장한 로봇랜드를 지난 난포리에서 내려 다시 로봇랜드로 되돌아 와 놀이기구 구역을 지나 새로 뚫린 길을 따라가니 재단 사무실과 연구단지가 나왔다. 저도 연륙교가 가까운 구복 포구에서 윤슬로 반짝이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봤다.
일요일 오후 이른 저녁을 먹고 날이 저물기 전 팔용동 터미널로 가 고현행 버스를 탔다. 창원터널과 녹산터널을 지나니 깜깜한 밤이었다. 신항만에서 가덕도로 건너 거가대교를 지났다. 진해만 역시 어둔 밤바다였다. 고현에 닿아 연사로 되돌아 와 와실로 들어 보일러를 켜 방을 덥혀 일찍 잠에 들었다. 잠을 깨니 한방중이라 조금 더 미적대다 두 시가 지나 실내등과 노트북을 켰다.
뉴스를 검색하고 지인 블로그를 순례하고도 남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씻어둔 쌀로 전기밥솥 전원을 넣고 명태포로 콩나물국을 끓였다. 세 시 무렵 표고버섯 볶음과 짠지로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설거지야 간단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소포로 방바닥 먼지를 닦아놓고는 세면을 하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뉴스 전문채널로 날씨를 살피다가 설핏 선잠에 들었다가 깼다.
여름에는 아침 여섯 시, 가을엔 십오 분을 늦추어, 이제는 삼십 분을 늦추어, 여섯 시 반에 와실을 나선다. 동지가 가까워진 때라 날이 늦게 밝아와 출근 시각을 늦추게 되었다. 여섯 시 반에 나서도 바깥은 아직 가시지 않은 어둠이 남아 있었다. 골목을 지나 연사 정류소로 나가니 조선소를 출근하는 사내들을 횡단보도에서 만났다. 나도 그들과 같이 길을 건너 연사 들녘으로 갔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명의 들길을 걸었다. 고현에서 옥포 방면으로 가는 차량들은 전조등을 켜고 달렸다. 나는 차도 곁 농로를 따라 연초다리로 향했다. 연초천에 이르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그래도 둑길에 설치된 밤을 샌 자동점멸 보안등은 아직 꺼지지 않는 채였다. 길섶과 들녘 논바닥엔 서리가 보얗게 내려 있었다. 대기 중 습도가 높고 바람이 자는 밤에 내리는 서리다.
와실을 나서면서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다. 머리엔 모직 헌팅캡을 써야함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귓불이 시려오고 손가락 끝이 살짝 아렸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 않은 편이니 이 정도 추위야 거뜬히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 들었다. 날이 더디 새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둑길로 나오던 산책객이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저만치 연초 삼거리 방향엔 엷은 안개가 번지고 있었다.
둑 아래 하천에는 오리들이 밤을 새고 놀았는데 어디로 출장을 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먹이가 많은 어느 들녘이나 샛강으로 떠났을까? 아니면 여기가 추워 더 따뜻한 대한해협 건너 큐슈로 내려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속에 진작 남녘으로 내려갔어야 할 여름 철새 왜가리 한 마리가 나래를 펼쳐 비상을 준비했다. 겨울을 여기서 나려면 춥지 싶은데 걱정이 좀 되었다.
들녘을 빙글 둘러 연효교에 이르렀다. 연초천에 산책객을 위한 가설된 쇠줄 교량이다. 상판이 나무였기에 밤새 내린 서리가 보얗게 깔려 있었다. 발을 디디니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어 학교가 가까운 국도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마을로 가는 길에서 들어 교정으로 들어섰다. 교무실에 들어 실내등을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몇몇 지기들에게 출근길 남긴 새벽 들녘 풍경을 날렸다. 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