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작품해설]
“나는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리 / 리라로 선량한 감정을 일깨웠고 /
나의 잔혹한 시대에 자유를 외쳤고 / 쓰러진 이들에게 동정을 호소했으므로” 이
시구는 푸시킨이 1936년에 쓴 「기념비」의 일부분이다.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쓴 시로 자신의 생애와 시적 성과를 자평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후 자신의 문학이
미칠 영향을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예언한 대로 알렉산데르 세프게예비치 푸시킨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며,
러시아 문락의 아버지로 칭송괴었다. 러시아 작가 고골은 푸시킨을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작가로 치켜세웠고, 푸시킨이 사망하자 “균형된 정신세계를 지닌 위대한 인간의 상실”이라며 몹시 애석해했다. “인간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선을 불러일으켰다”라고 평가받는 푸시킨의 문학 세계는 인간 영혼의 평온과 자유를 노래하는 데 바쳐졌다. 한때 정치적인 성향의 풍자시를 창작해 검열을 받고 1825년 12월 근대적 선진 지식인들에 의해 일어난 혁명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를 짓기도 했으나, 보다 큰 그의 문학적 성향은 삶을 긍정하고 고상한 정신을 지향하는 데에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자유, 신성, 환희로 고동치는 가슴을 노래해 삶의 경이를 일깨우고자 했따. 그가 “겸허와 인내와 사랑과 순수의 정신이 / 제 가슴속에 살아나도록 하소서” (「신부들과 수녀들이......」)라고 썼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시는 삶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슬픔과 우울을 담담하게 인내하라고 당부한다. 시간은 흘러 가는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경과하면 내 삶에 친밀하던 눈물과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곤란은 시간의 그늘과 주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현재는 슬픈 것” 이라는 이 유명한 시구에서도 푸시킨은 현재의 일이 순조롭지 않아 어렵더라도 내일의 시간에 생생한 기운이 샘솟아 날 것임을 믿으라고 말한다. 고통이 풀리고 생동의 빛이 우리를 감싸는 후일에는 힘들었던 순간이 오히려 우리들 삶의 궤적의 기록이며 소종한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삶의 근심을 큰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시간의 흘러감,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완력에 의한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음은 물론 삶의 음지를 양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둡고 비통한 삶의 단면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일관(日光)을 비춤으로써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는 이러한 푸시킨의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는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 / 들판에 화려한 첫 꽃들보다도 / 우리 가슴에 슬픈 꿈들을 / 더 생생하게 일깨우는 마지막 꽃들 / 그렇게 간혹 이별의 이순간은 / 더 생생하네, 달콤한 만남의 순간보다도‘ 라고 노래한 시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에서도 드러난다.
나탈리아 곤차로바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사교계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었으나 사치벽이 있었다. 푸시킨을 죽음의 사지로 내몰아 간 것도 아내의 염문설이었다. 러시아 근위대에 근무하는 프랑스인 장교 단테스와의 추문은 푸시킨을 괴롭혔고 결국 단테스와의 결투라는 파국에 치닫게 했다.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총상을 입은 후 푸시킨은 이틀 후인 1837년 2월 10일 숨을 거두고 만다.(레르몬토프는 푸시킨이 이런 비극적 죽음을 맞게 된 것은 러시아 궁정의 시시한 무리들의 함정과 음모 때문이라고 분노했다.) 푸시킨이 영면하자 2~5만 명의 문상 인파가 몰려들었고, 니콜라이 1세는 조문 행렬에 놀라 6만 군대로 경계를 세운 후 푸시킨의 관을 미하일 로프코예 인근의 수도원으로 급히 옮기도록 했다.
미래파가 푸시킨 문학을 트집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들고, 또 무용한 문학이라며 현대의 증기선에서 던져 버려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기도 했지만, 푸시킨 문학의 신화화 작업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푸시킨 문학의 휴머니즘과 삶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은 러시아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단일하게 묶어 내는 데 아주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보적이고도 아주 양심적인 문학가들이 결과적으로 푸시킨 문학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푸시킨이 구속되지 않는 자유정신으로 문학가로서의 위엄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혁명 시인 마야콥스키가 1912년 미래파 선언을 통해 과거 전통의 과감한 청산을 선언하며 그 청산 목록에 푸시킨의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후일 푸시킨의 문학을 지지하고 옹호한 까닭도 내면의 양심에 귀 기울렸던 푸시킨의 준엄한 예술가적 면모에 있었다. 푸시킨이 다음과 같이 시인의 시혼을 노래했듯이 “시인이여! 사람들의 사랑에 연연해하지 말라 / 열광의 칭찬은 잠시 지나가는 소음일 뿐 / 어리석은 비평과 냉담한 비웃음으로 들어도 / 그대는 강하고 평정하고 진지하게 남으라 // 그대는 황제, 홀로 살으라, 자유의 길을 /가라, 자유로운 지혜가 그대를 이끄는 곳으로/ 사랑스러운 사색의 열매들을 완성시켜 가면서 / 고귀한 그대 행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시인에게」)
[작가소개]
푸슈킨(Pushkin) - 1799~1837년.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근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러시아 문어의 창시자이며
러시아 문학의 표본이 될 작품을 쓰고 ‘현실을 노래한 시인’이었던
그는 19세기의 후기 고전주의 작가들의 눈에 러시아 문학의 초석으로
비쳐졌다. 고결한 관념을 내포하고 시민적 책임의식을 강조하며 삶을
긍정하는 활력이 넘치고 이성이 편견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푸슈킨의 작품은 전 세계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주요 작품으로는
《루슬란과 류드밀라》, 《신랑》,《집시》, 《대위의 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