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6: 22 주여 오시옵소서. - 고전 16: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전 16: 22 주여 오시옵소서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마지막으로, 바울은 두 가지 내용을 말한다. 첫째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선택사항이 아니고 모든 성도에게 필수적 사항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둘째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모든 일이 완성될 것이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주를 사랑한 자들은 영광과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1]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저주'를 대비시켜 주님께 대한 사랑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데마'(*)는 어떤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맡겨진 것'을 의미한다(Boice).
본 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치는 바는 주님께 대한 사랑도 없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Lenski, Edwards).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던 주님이시다. 우리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죄인이었지만,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사심으로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자라면 어찌 주를 사랑치 않을 수 있겠는가!
2]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바울은 '저주'에 이어 곧바로 '소망'의 말을 잇는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라나다'(*)는 아랍어 '마라나타'(*)의 음역이며 어떤 사본에서는 '마란아다'(*)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랍어 '마란아타'(*)의 음역이다.
양자는 시제 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의 경우 '우리 주님이시여 오시옵소서'(our Lord, Come!)라고 번역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우리 주님께서 오셨다'(our Lord has come)라고 번역할 수 있다(Chrysostom).
계 22: 20에 나오는 헬라어 번역 '에르쿠퀴리에'(*, '오소서 주여')는 명령형으로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진실로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하였다. ‘진실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함을 나타낸다.
주께서는 참으로 속히 오겠다고 말씀하셨고 사도 요한은 참으로 오시기를 소원했다. 요한계시록 1: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나이). 아멘.”
주께서는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을 나타낸다.
베드로후서 3: 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전통본문)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불타버리리라].”
계 22장에서만 세 번 반복 확인.
* 계 22: 7, 12, 20 –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 진실로
재림의 확실성을 나타낸다.
(2) 속히 오리라
① 영원한 현재 진행형.
② 현재 오시고 있는 중이다.
본문은 본 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 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낸다. 본서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준다.
(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한다(Morris). 이것은 고전 16: 22에 나타난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마라나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고전 16: 22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마라나다'는 아람어 '마라나타'(*)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낸다.
본 절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데 전자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역점을 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역점을 둔 것이다.
여기서 후자의 표기를 따라 완료형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심판을 담당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담고 있고 예언적 과거(prophetic past)의 용법으로서 미래적 사건을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명령형으로 사용된 경우는 주의 재림을 촉구하는 의미로 모든 분쟁과 불의를 종식(終熄)시켜 고난을 없애주실 것을 소원하는 의미가 된다(Godet, Lenski).
고전 16: 23 그리스도의 은혜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하고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은혜'의 헬라어 '카리스'(*)는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진 주님의 선물을 가리킨다. 바울이 이 문구로 고린도 교회에 문안 인사를 끝맺는 것은 고후 13: 13에서도 나타난다.
* 고후 13: 13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 절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의 미숙한 신앙 행동들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1: 4)가 더욱 깊어지고 계속되길 소원하는 바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고전 16: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찌어다. )
1]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에 해당하는 '엔 크리스토 예수'(*)가 '나의 사랑'(*, 헤 아가페 무)을 수식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의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너희 무리와 함께'(*, 메타 판톤 휘몬)를 수식한다고 보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후자의 경우가 더 타당하나, 의미상 '엔 크리스토 예수'는 문장 전체를 수식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이는 헬라어 구분상으로서가 아니라 의미상으로 볼 때 본서 전체에까지 적용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Barrett).
바울은 본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록하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사랑을 모든 성도에게 쏟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2) 너희 무리
'너희 무리'(*, 판톤 휘몬)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은 그를 대적하고 따르지 않는 모든 교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사랑을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Morris).
본 장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본 장은 헌금에 대해 교훈한다.
① 헌금은 교회의 공집회의 한 중요한 순서이다.
② 헌금의 용도는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이다.
헌금은 전도자들과 교회의 전임봉사자들의 생활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또 교회 안의 물질적 어려움을 당한 교우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③ 헌금은 깨끗하고 덕스럽게 관리되어야 한다.
헌금의 계수와 관리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사람들의 의심과 의혹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헌금의 계수와 관리는 교회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세워서 깨끗하고 정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헌금에 대한 범죄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큰 죄가 된다.
④ 성경이 보이는 헌금의 기준은 풍성하게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득의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게 하셨다. 그것은 신약시대에도 헌금의 모범이 된다.
주 예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마 6: 20-21).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 7에서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헌금]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 말했다.
둘째, 우리는 성도의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귀히 여기며 사모하며 나누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며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겨울을 지나기를 원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의 교회다운 점은 성도들 상호 간에 서로 사랑하는 데 있다.
셋째, 우리는 동력자를 존중하여야 한다.
우리는 전도자들을 위해 또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 사역이 힘있게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 전도자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들에 대한 합당한 예절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에게 복종하고 또 그런 자들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물론,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은 부득이 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실천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고 남자답게 강건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삶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또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약속들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또 우리는 남자다워야 하고 강건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섯째,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주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영광중에 다시 오시면, 교회 안팎의 모든 일들과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심판하시고 선악 간에 보응 하실 것이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삶에도 여백의 공간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에 여백이 클수록 사랑과 행복을
넉넉히 채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