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두모리 2974-1번지의 가장 북쪽(2338번지 맞은편)
비석 앞면에는 “孝子高允文之閭” 뒷면에는 “上之十七季丙子十一月 日 命旌 歲久之後恐其板刻之易漫新磨片石以志永世不朽云 道光三十年 五月 日 再從孫濟宗 竪”이라 새겨져 있다.
효자 고윤문은 두모리 사람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목자(牧子)의 역을 맡아 나갈 때마다 쌀과 찬을 준비하여 드리고 돌아와서는 배고프고 안 고픔을 여쭈어 배불리 해 드림으로써 법도를 삼았다. 어머니의 성미가 조급하고 노여워하며 매를 가지고 때릴 때에는 누군가가 피하라 해도 “어머니의 노여움이 한창이신데 만일 피하여 달아난다는 것은 자식의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노여움만 더한다.”고 하여 피하지 않았고, 혹은 아내를 얻으라고 권하면 “아내를 가져 어머니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몸소 뜻을 받드는 것만 못하다.”고 하여 종신토록 아내를 얻지 않았다. 순조14년(1814)에 정려되었으며, 이 비는 철종1년(1850)에 재종손 제종(濟宗)에 의해 세워졌다. 1814년(조선 순조14) 정려되었는데, 효자비는 1850년(조선 철종 1) 그의 재종손에 의하여 한경면 신창리에 세워졌다가, 현재는 두모리에 있음.(제주학연구센터 고창남 제공)
또한 일설에 따르면 효자 고윤문은 기러기떼가 창공을 소리내며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저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야. 떨어져 우리 어머니 공양이나 하게.’ 말하자 공중에서 날아가던 기러기 한 마리가 갑자기 고윤문 앞에 떨어지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공양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어머니께서 바닷고기를 먹고 싶다는 말을 하니 고윤문은 낚싯대를 가지고 거머들 해안에 가서 고기를 낚으려고 하는 찰나에 물고기가 파도에 휩쓸려 올라오니 그것을 가지고 와서 공양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두모리 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을 옮겨 본다.(4329. 1. 9.)
“효자상을 받게 되연 친족 중에 대신 받으레 가십주. 제주목에 간 상을 딱 받으난 집이선 그 순간 고효자가 딱 운명ᄒᆞ였젠 ᄒᆞ여마씸. 원래가 효자상은 받으민 죽은뎅 ᄒᆞ는 겁주.”
《작성 200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