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의 삶은 외롭다.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지식인들은 자신이 배운 만큼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
서 지식인들도 외롭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이자 일제시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우남(羽南) 이원철(1896~1963·사진)은 어떤 생애를 살았을까.
지난 28일 서울대 의대 함춘회관에서 열린 이달의 과학기술인물 세미나에서 나일성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이원철의 삶은 그가 공부했던 밤하늘의 별과 같이 외로웠지만 아름다웠다”고 회고했다.
이원철은 189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보성고와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에서 현대수학, 물리학, 화학 등을 수강할 만한 기본 지식이 있는 학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동기생은 3명뿐이었다. 후배도 4년 후에야 들어왔다.
수물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그는 미국인 선교사 베커와 루훠스의 도움으로 1921년 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원철의 연구주제는 여름철 은하수 서쪽에 보이는 독수리자리 에타별이였다. 그는 1923년 5월부터 1924년 10월까지 관측연구를 했으며 관측 일수는 70일이었다. 기
상상태와 달의 위성 변화를 살펴보면 독수리 자리가 보이는 초여름에서 늦가을까지 분광관측이 가능한 거의 모든 밤을 대형망원경과 함께 지새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원철은 결국 1926년 ‘독수리자리 에타성의 대기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박사논문을 완성했다.
이원철은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로 귀국, 연희전문학교의 교수가 된다. 나박사는 “당시 천문학계에는 맥동설이 확고하게 자리매김되어 있었으므로 미국에 남았다면 학자로서 업적을 쌓을 수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귀국했다”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인 당시에는 이박사의 존재 자체가 민중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1929년 발간된 과학전문지 ‘과학’은 “이박사의 논문은 조선에서 유일한 과학학위 논문이며 조선민족의 천재를 해외학계에 알린 귀한 은혜”라고 극찬했다.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영광을 주었지만 고난의 삶을 살게도 했다. 1938년 항일운동에 연루되어 일본 총독부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미처 피란을 가지 못했다가 인민군을 피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이원철은 광복 직후 연희대학교 이학원 원장으로 임명돼 편안한 학자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조선총독부 기상대의 귀중한 문건들을 일본으로 빼돌린다는 사실을 알고 군정장관인 하지 중장을 찾아가 이 사실을 항의한 것이 인연이 돼 관상대 대장직을 맡았다. 이원철
은 1946년 관상대 초대 대장으로 부임한 후 15년 동안 기상업무에 투신했다. 당시 총독부 기상대에 근무했던 조선 사람이 7명에 불과해 이들과 함께 역서를 만들고 기상을 관측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난 후 그는 관상대 대장직에서 물러났다. 자녀가 없었던 그는 전 재산을 YMCA에 기증했고 1963년 갈월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현재 YMCA 강남지회 회관에 아직도 ‘우남홀’이 남아 있다.
나박사는 “요즘 과거사 바로 세우기 등의 논란이 뜨거운데 이원철과 같은 초기 과학자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남이란 호는, 이승만 박사도 그런데 한자가 틀리네요,,,이런 분들 덕택으로 그래도 우리의 기술과 산업이,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단 생각을 하면서 자랑스러우면서도, 존경스럽습니다,,애국,,주어진 자기의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는것, 그런거라 다시한번 느낍니다,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첫댓글 워매 좋은 글....우리 삶의 이정표같으신이원철 박사 엄청 좋은 걸.... 손진담 님도 좋은 걸.... 향기 님은 더 좋은 걸....
학바우가 어디 감히 선배들의 노고에 비견할 수 있나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더. 이공계 홍보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더. Science Ambassador 자격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애국자 이시고 선구자 이시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우남이란 호는, 이승만 박사도 그런데 한자가 틀리네요,,,이런 분들 덕택으로 그래도 우리의 기술과 산업이,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단 생각을 하면서 자랑스러우면서도, 존경스럽습니다,,애국,,주어진 자기의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는것, 그런거라 다시한번 느낍니다,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테니스님 어느 한자가 틀림니껴 지는 이해가 잘안됩니다 (羽) 우자가 틀리는지요.좀 갈케주이소 죽는 그날까지 배워도 배움이란 끝이 없는것 같읍니다.스님이 보고자브 오늘도 먼산을 바라보며 넔을 읽고 살아갑니다.건강하시구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