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자법 익히기
최 병 창
저물어 가는 글씨가 꽤나 어지럽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하기도 하고
한 뙈기 손바닥만 한 텃밭에
어리어리한 햇살이
허름하게 그림자 하나 품은 듯도 하다
먹다만 음식찌꺼기처럼 쳐다보기도 그저 그렇고 그렇다고 몸 칸을 딱
떼어놓고 건너서기도 역시 그런데
글씨체의 모양새가 그렇다고 몸과 마음이 똑같지는 않지만 글씨 모양이
어찌 그런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여쭤보아야 할 것도 같은데
잠시 멈춘 손끝으로 바르르 저려오는 떨림이 무례하게도 녹슨 말초신경을
짓누른다
기억하니 니은이 있고 니은 하니 디귿이 있다고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들 죽 날 죽 두서없는 어지러운 감각뿐 눈뜨고도 코 베어 먹는
세상에 자고로 순서가 없다는 하루는 제 홀로 자근자근 풀어내야
할 것도 같아
햇볕에 널어놓은 푸른 등허리가 제아무리 속삭인대도 순서는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생각을 아무리 내세워도 앞서가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오직 기역다음에 니은이 있었고 니은 다음에 디귿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 아니던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한 발자국씩 가다 보면 밑바닥을 꼭 지나쳐야 한다는
것은 오직 오르기 위해서였다니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른단다
기역과 니은
니은과 디귿이 서로가 엎드리며
기웃한 밑바닥이었다는 사실을.
< 2023. 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