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과 책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을 찾은 박지선은 평소에 읽는다는 책들을 한 아름 안고 왔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박준 시인의 책을 펼쳐 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책 관련 인터뷰니까 나는 딱 책 얘기만 하고 싶어요. 다부진 말투의 개그우먼 박지선은 그러면서 제 가방에 들어 있던 책들을 잔뜩 꺼내어 늘어놓았다. 내가 만들었으니 단박에 알아챌 수밖에 없는 박준 시인의 시 구절이 수로 놓여 있는 갈색 톤의 천 가방에서였다. 박준 오빠가 탄탄하게 만든 가방이라더니 헤진 것 좀 봐, 언니 내가 너무 메고 다녔나봐, 아주 속상해 죽겠어. 뭔가 ‘덕후’나 ‘덕력’의 기질을 짐작케 하는 그녀만의 말법.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우리 둘은 친한 언니 동생 사이다. 솔직한 성격들이다 보니 정색하고 처음 뵙습니다, 하는 연기는 도저히 못할 듯싶어 전에 없이 편한 투의 말법이 오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코너 제목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던 것 같다. 그려라 책만 하자, 하고 우리는 정말 ‘책’만 했으니까.
김민정(이하 김)= “개그우먼들끼리 독서 모임을 꾸렸다고 하더니만 잘 하고 있나요? 회장을 맡았다고 한 게 지난 12월이었는데 말이지요.”
박지선(이하 박)= “모임 이름은 ‘심비디움’이고요, 지금은 방학 기간이에요. 우연히 제가 송은이 선배 하시는 라디오에 나갔다가 사적으로 독서 모임 같은 걸 한다니까 은이 선배님이 개그우먼들도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해서 급 결성이 되었던 건데요, 멤버는 송은이, 김숙, 강유미, 신봉선, 안영미 선배님들과 저 이렇게 여섯이요.”
김= “무슨 뜻인가요? 신비로움의 뉘앙스로도 읽히네요.”
박= “제가 지었거든요. 화려하고 색깔이 다양한 꽃을 피우는 강인한 난과 식물이라는데 왠지 개그우먼들과 이미지가 잘 맞겠다 싶더라고요. 또 뭔가 심포지엄 같잖아요. 아직까지 오프라인에서 전 멤버가 다 모여본 적은 없어요. 면면이 다 바쁜 사람들이라 단체 카톡방 만들어서 책 얘기는 주로 그 공간에서 하고 있어요.”
김= “책 선정부터 발제와 감상과 토론까지 뭔가 온라인에서 진행하기에 벅찰 것도 같은데 보통 어떤 식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하나요?”
박= “읽고 싶은 책 선정하자니까 무서워들 하시더라고요.(웃음) 발제에 대한 거부감도 있으셨고요. 그럴 수 있잖아요. 또 책을 자주 접해온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섞여 있는 어려움도 있고요. 그래서 일단 제가 다 하겠습니다, 했죠. 제가 왜 언니에게도 몇 번 전화를 드렸잖아요. 멤버들 면면을 고려해서 엄청 고민해가면서 책 정해왔어요.”
김= “리스트가 궁금한데요.”
박= “1월에는 박정민 배우님의 ‘쓸 만한 인간’, 2월에는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집 ‘비행운’ 가운데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함께 읽었어요. 그 작품을 제가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이건 단편소설이니까 겁먹지들 말고 읽어보자 했어요. 개그우먼들이 되게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공감대 형성도 잘 될 것 같았고요. 그랬더니 정말로 다들 너무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3월에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다른 책을 정할 게 아니라 ‘비행운’을 통으로 다 읽어보자 했어요. 제가 막 팁을 줬죠.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김애란 님 매니저처럼 자 일단은 좀 어둡다, 놀라지 말고 보시라, 김애란 작가님은 어떤 분이다, 막 썰을 보탰죠. 다 읽고 난 뒤에는 여러분들은 어떤 게 가장 비극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 비극의 순서를 정해보자 하면서 감상을 이끌었어요. 무겁고 딱딱하지 않게요. 4월에는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를 읽었어요, 이렇게 무리 없이 읽히니까 좀 다른 장르로 가고 싶어서 5월에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정했는데 아, 거기서들 힘들어하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송은이 선배님이 방학을 합시다, 그래요. 그때 방학을 맞이했어요. 그렇게 6월과 7월을 쉬었고, 8월 책으로는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정해놓은 참이에요.”
김= “책은 다 사겠지요? 인증하나요?”
박= “그럼요. 게다가 송은이 선배가 지갑을 잘 여세요. 저 같은 경우는 우리 회원 분들의 취향에 맞는 걸 찾아야 하니까 미리 사는 편인데 송은이 선배님이 자주 책을 뿌리시는 편이에요. 전부 만나기는 어려워도 각개로는 자주 볼 수 있잖아요. 보면 건네시는 거죠. 저도 ‘비행운’이랑 ‘주말엔 숲으로’는 은이 선배가 사줬어요.”
김= “책 사주는 사람, 참 좋은 사람인데. 저마다 애정이 많겠어요.”
박= “신봉선 선배는 이 모임이 너무 고맙다고 전화를 따로 주셨어요. 인생의 새로운 재미랄까, 다른 삶을 하나 찾은 것 같다고도 하셨고요. 안영미 선배도 텔레비전으로 보면 엄청 개구지고 그렇잖아요. 근데 책 흡수가 정말 빠르세요. 리뷰도 가끔 카톡 방에 올려주는데 와 이런 생각도 하시는구나, 그 사람의 사유를 엿보게 되니까 되게 뿌듯하고 보람되고 그렇더라고요.”
김= “대체 언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된 건가요?”
박= “저는 ‘사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책을 좋아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특히 대학교 때 만난 친구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의 영향이 아주아주 절대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여름에 몸이 아파 갑자기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친구가 집으로 ‘무진기행’과 만화 ‘괴짜가족’을 잔뜩 보내줬어요. ‘무진기행’ 면지에 “지돌, 무진에서의 그림을 담아”라는 사인을 적어서요. 휴학을 했으니까 아무 일도 안 했을 때니까 쉬면서 놀면서 그 책을 다시 보는데 수능 지문으로 봤을 때랑 너무 다른 거예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천명관 님의 ‘고래’, 박민규 님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같은 장편소설들도 그 친구 덕분에 알게 되어 읽었어요. 제가 국어교육을 이중전공으로 했는데요, 국어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가기에 따라갈 정도였다니까요.”
김= “그 친구가 없었다면 오늘날 심비디움도 없었겠어요.”
박= “근데 그 친구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 내 큰 부분이 없어져버린 거죠. 그 빈자리는 절대로 못 채울 테지만, 그 빈자리는 계속 느끼게 될 테지만, 내가 뭐라도 하고 싶어서 재작년부터 그 친구가 나가던 독서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슬픔을 이기는 방법은 다 상대적인 거니까 다들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 독서 모임 친구들은 그걸 책에서 찾기도 하더라고요. 해서 각자 나누고 싶은 책을 들고 와서 말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저마다의 추억을 쏟아내기도 하고……”
김= “음…… 그거야말로 진짜배기 애도의 과정 같은데요.”
박= “저는 그때 ’벗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을 들고 갔는데요, 거기 이런 대목이 나와요. 아픈 김유정 님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채만식님이 뭐라고 썼냐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봐요, 제가 표시해뒀잖아요. 내 마음이 딱 그랬거든요.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유정임을 절절히 느꼈다. 공손하되 허식이 아니요, 다정하되 그냥 정이요, 유정에게 어디 교만이 있으리오.” 내 친구가 딱 그랬거든요. 워낙에 책을 사랑한 친구였으니까, 저는 어쨌든 그 친구랑 십몇 년 동안 좋았던 기억밖에는 없으니까, 둘이 함께 좋아하던 책으로 계속 추억을 하니까 그 친구의 부재가 어디 이민 가 있는 정도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첫댓글 지금은 친구를 만나셨겠지 너무 좋은 사람
언니 보고싶어요
정말 멋진 사람ㅠㅠ 지선언니처럼 책 열심히 읽어야지
아고 언니는 참 속이 깊고 정많은 사람이셨구나.. 아쉽고 슬퍼 언니가 추천해주신 책 나두 읽어봐야지..
ㅠㅠㅠ 너무 좋은 사람 나도 책 좋은 문장 있는 페이지 접으면서 읽는데 딱 한페이지만 접을 수 있으면 그 책 산 거 후회안되더라구 기사에 나온 책들 꼭 다읽어보고싶다
울컥하게 되네요 그곳에서는 행복하시겠죠?나도 언니처럼 단단한 사람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