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극
writer. 브로콜린
20
끼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굳게 잠겨 있었던 문으로 몇 년 전부터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로 구석에 박혀 있어 뽀얗게 먼지가 앉고 세월의 노쇠한 나무문의 열쇠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지 오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아무도 모르게 꽁꽁 감춰놨던 그 문을 이다지 쉽게 부서뜨
리고 들어와 버려 은오는 비명을 질렀다.
감춰뒀는데, 숨겨뒀는데 어떻게 찾아낸거야!!!
난 널 잘 알아.
우린, 닮았거든.
“집중해.”
상념에 젖어있던 머리가 울렸다. 지나치게 삭막한 문혁의 목소리다. 성은 나지 않았으나 미묘한 짜증이
섞여있다. 일부러 거친 몸동작으로 그녀의 안을 더 깊이 탐했다.
침대도, 애무도, 가식도, 문혁의 취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것들이지만 실상 그랬다. 싫다
거부하지 못하면 차라리 즐겨 버리면 그만인데, 문혁은 허락조차 하지 않는다. 본질적 욕망에 그득차서
조급하게 들쑤셔놨다.
들끓는 남성이 침투하자, 약간의 신음을 제외하고는 은오는 입을 달싹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보다 그만 들켜 버렸다.
“어딜 보고 있는거야. 내가 집중하라 그랬지?”
집중하게 생겼니? 란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너무 피곤했다. 급 피로감이 쏠리자 몸은 솜방망
이가 따로 없다. 문혁은 키스를 하려는지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은오는 얼굴을 피했다.
불쾌감? 당연하다.
지독한 술냄새, 취중에도 눈동자만은 어둠에도 불구하고 빛이 났다. 몹시 자존심이 상한단 얼굴을 하고선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은오는 동전을 넣는대로 움직이는 오락실 기계가 아니었다. 표정을 짓고, 감정
을 짓는 인격 가진 인간이다. 이런 취급을 받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을뿐더러 애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문혁이 혐오스럽다.
저도 모르게, 10년 전 끔찍했던 과거가 오버랩 되는 과정에서 그는 허물을 벗어던져 버리고 바쁜 손놀림
으로 그녀의 숨겨진 살갗을 속속들이 들어내었다. 발로 버둥대다 차기를 수십번, 발목은 그의 손에 족쇄
처럼 잡혀 질질 끌려서 끌어당겨져서 이 사단이 나기까지. 이것저곳 멍이 들었을 몸뚱아리, 난도질당한
마음. 어차피 남자에겐 아무것도 아니려나- 다신 짓밟히지 않겠다고 맹세해왔는데. 은오는 씁쓸했다.
키스를 요구하는 그의 바램에 순순히 당해왔어도 그것만은 죽어도 못하겠단 결사의 의지를 담아 입을 앙다물자,
“입 벌려.”
“…”
“고집하고는.”
가만히 있어보라 그러질 않나, 집중하라 그러질 않나, 이젠 입을 벌리란다.
“류은오, 넌, 받아들이만 하면 돼. 딴 생각할 틈 없이.”
무표정이었다가 정색을 했다가 다시 애 닳아 한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죽 끓듯이 한다. 서문혁이
이렇게 많은 표정을 지녔었던가. 결국은 서문혁의 뜻대로 은오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바닥이 밀착
되는 등 부분이 쓸려 은오는 얼굴을 찌푸렸다. 문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은오의 날개뼈와 뒷목을 잡고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등 부위에 불편함이 해소되자 한결 편해졌다.
“지금 네 목소리 듣고 싶어.”
“…”
“아무말이라도 괜찮으니까.”
“…”
“욕이라도 해. 인형처럼 굴지말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런말을 했던가.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에 힘겨워 비명이나 신음으로 요동
칠때 입닥치란 말을 들었던적은 많았다. 목덜미를 물며 키스마크를 새길때는, 다시금 욕지기가 샘솟았
지만 이내 되삼키곤 퍼뜩 목덜미를 감쌌다.
“영역표시.”
그러고 문혁은 해맑게 웃더니 입술을 부딪혀 왔다. 이 남자, 술이 취하긴 단단히 취한 모양이다. 이런
얼굴은… 한번도 본적 없다. 심지어 가식으로 일관한 현재에도 이렇게 나사하나 풀린듯한 문혁의 웃음
에 당황한 나머지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목을 받치고 있기도 했고, 순식간이기도 했다. 입술의 감각
도 없었다. 뒤로 빼려 도망가면 다시 쫓아와 사로잡았다. 이것 참, 희한했다. 마취제를 놓은것처럼 얼얼
했고 그 입안을 휘젓고 있는게 과연 혀가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희박했다. 술내음도 어느정도 무뎌져
무감각했다.
“류은오, 류은오, 류은오.”
그는 규칙적으로 은오의 이름을 담았다. 넥타이로 묶인 손목을 풀어주더니 풀려진 손바닥에 자신의 손
바닥도 겹쳐 깍지를 꼈다. 타이를 대신할 체온섞인 족쇄였다. 이미 타이에 끄슬린 손목엔 멍이 남았을
터였다. 문혁은 단 한번의 정사로 은오의 몸을 완벽히 파악했다. 어디를 어떻게 해주면 기절할만큼 좋
아하는지 오랜 파트너처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란 광고 카피가 생각나는 이때. 은오
는 눈을 감았다. 그 다음은 쉬웠다. 어디를 공략해줬으면 좋을지 소망하는 바를 상대가 알고 있는건 여
러모로 유익하다. 정신을 놓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일. 그녀는 점점 꿈을 꾸듯이 몽롱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
눈을 게슴츠레 뜨자, 짜증스런 얼굴과 대면하지 않은것은 천만다행인 일이다. 지금 심정으로는 칼부림
을 냈을지도 모르니. 예견했던대로 손목은 약한 멍이 남아 있었고 영역표시라며 유치한 장난질을 해놓
은 목덜미엔 뚜렷한 키스마크가 남아 있었다. 따지고 들자면 최상급에 해당하는 이 얼굴은 서문혁만 아
니었더라도 꽤 자신의 취향일것이다. 뭐, 정력은 가히 최고라 할수 있었고 테크닉면에서도 두말할것도
없다. 속궁합의 등급도 A이상. 원나잇스탠드로 넘겨버리기엔 아까운 상대. 필요할 때 언제든 부를수
있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서문혁’이라서다.
뻔뻔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조그만 부분이라는것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이를 으득이자, 협탁에 고급스럽게 밀봉된 케이스와 함께 카드가 보인
다. 그 중 눈에 띄는 골드 테두리에 메인칼라가 보라색인 카드를 집어들었다.
예전 말했던 기억이 나는 VIP 초청장.
케이스 안에는 겹겹으로 포장되어 있던 살구빛 드레스가 몰래 속살을 드러냈다. 단아하고 수줍은듯 심플
한 디자인이다. 집어 던지려다 그만두었다. 텍은 없었지만 드레스에 부착된 상표는 상상초월 할 브랜드
다. 침대에서 내려오다 지끈 울리는 허리통을 붙잡았다. 어찌나 지독스럽게 들러붙었는지 다리가 후들거
렸다. 카드고 나발이고 모두 베란다 밖으로 던져 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련만, 비상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씨익 웃었다.
서문혁, 날 만만하게 봤겠다.
**
은오가 평소와 판이하게 틀렸다. 진권도 당연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좋지 않은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이라 그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무엇이냐면 은오의 관심집중 대상이 되어 있는것이다. 한손으로
턱을 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크하며 키와 몸무게, 쓰고 있는 샤워코롱 제품까지. 이상할정도로 상세히.
결국 유심히 관찰하는 그녀에게 한마디 한다.
“뭔데?”
“응?”
“밥먹자고 불러내더니, 밥은 안먹고 왜 이렇게 쇼핑이나 하실까 싶어서. 그것도 남자것을.”
“다 네꺼야.”
“?!”
“내가 너무 무심했던거 같아 선물 좀 하려고. 딱히 내가 무슨 의도가 있겠어.”
“너 참 뜬금없다?”
“잔말말고. 너 발사이즈는 어떻게 돼?”
“그 전에 내가 질문해도 될까.”
“?”
“너 오늘따라 기분 나빠보여. 거기다 너 쇼핑하는거 복잡하다고 싫어하면서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백화점을 뒤집어놓냐. 이건 앞뒤도 안맞고 마음도 모르겠고.”
은오는 피식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계략이 숨어있는 의도가 다분하다. 자신이 거주하는 맨션
의 호수도 모르면서. 지나친 관심은 부담이랄까, 어제만해도 네 할 일은 여기까지. 우리 사이의 선은
여기까지. 철두철미하게 선을 긋던 여자가 오늘은 왜 이러실까.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내심
기쁜건 어쩔수 없다.
“질문은 또 왜 그렇게 많고?”
“내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면 돼. 내 말 잘들으면 언제나처럼 상이 있다니까.”
그의 걸음은 천천히 그녀의 보조를 맞춰 있었다. 은오는 그런 진권의 손을 잡았다. 거기다 깍지까지 껴서
누가 보나 연인으로 보임이 틀림없다. 괜히 내 여자가 된듯한 착각이 들어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듯
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있다니까!
그런데도 홀라당 넘어갈 판이니. 이놈의 심장이 주인 말을 듣게 되는 날이 과연 오게 되긴 한 걸까. 원체
호기심이 충족했던 사내는 그게 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너 나랑 여행 가고 싶다 그랬지. 어디든 괜찮으니까 단 둘이서.”
“…즉슨, 원하면 그 여행도 갈수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이번주는 나한테 반납해.”
“너…또 어디 아픈거 아냐? 아니면 스트레스에 머리가 약간 돌았거나.”
“진권아. 너 내가 거짓말 하는거 봤니?”
“아니…. 이상하니까 그렇지. 갑자기 왜 그러냐. 난 네가 이럴때마다 무서워.”
“내가 귀신이니, 무섭게.”
“그게 아니라…”
진권은 자신의 머리를 헝끌어트렸다. 복잡한 심경이 반영된 행동이었다.
“기대하게 되니까.”
“…”
“…기대하면 실망이 더 크다는걸 잘 아니까."
“이번엔 기대해도 돼.”
“정말?”
“정말. 실망시키지 않을게.”
은오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수년을 봐와도 저 미소만은 아직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은오는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오늘 긁은것만 벌써 네 개째다. 라인이 예술품처럼 근사하게 들어간
슈트와 남성미를 강조한 검은색 셔츠, 어울리는 넥타이는 최신 유행으로 칼라가 예쁘게 빠졌다. 신발
사이즈를 묻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그야말로 활동성 제로인 이태리제 악어가죽 슈즈를 카드로 긁었다.
그럴때마다 진권이 이건 왜 사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조건이 걸려 있기에 그 말을 그대로 삼켰다.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할뿐이다. 물론 옷은 잘 어울렸다. 하지만 어색함으로 도저히 자신의 옷 같지 않았다.
슈트야 점잖은 자리나 격식을 따져야 하는 장소에서 종종 입었었다. 그러나 넥타이는 목을 죄는듯한 느낌
에 거의 하지 않는다. 악어가죽의 슈즈는 어차피 사봤자 집 구석에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걸
뻔히 아는데 살 리가 없지 아니한가. 사치를 부릴줄 모르는 여자가 남성용 마네킹의 코디를 한꺼번에
벗겨 자신에게 쏟아 붓는다. 오늘 구입한것만 그녀의 한 달 월급을 웃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다니, 무엇
이든 체계적이고 계획적인걸 좋아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것에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것도 굉장한.
유명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총총걸음의 그녀를
뒤따라 걸으며,
“계획이나 말해줄래?”
“확실히 재밌는 일이란것만 알아둬.”
은오가 화사하게 웃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수밖에 없었다.
**
21
VIP 중 VVIP로 구성된 이번 친선파티. 초호화 여객선 ul유람선측과 경쟁을 펼쳤으나 인맥과 스케일
면에서 뒤지지 않는 K호텔이 결국 이번건을 성사해 마련한 자리다. 날이 선 슈트와 수려한 마스크, 우아한
몸동작은 기품이 흘러넘쳤다. 연회장은 화려한 밤이다.
“샹들리에가 바뀌었군요. 굉장히 화려한데요?”
“시즌이 바뀔때 바꿨습니다. 맨 상단은 D-Flawless 등급을 받은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세공되었습니다.
국내에 들어온건 단 하나뿐이죠.”
“저 정도의 다이아몬드면 쉽게 값을 따질수 없겠네요. 국내 최대 수준아닌가요? 역시 K호텔답군요.”
문혁은 피곤했다. 독보적인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그의 능력, +외모까지 겸비했으니 혼기가
꽉 찬 레이디들이 1등 신랑감으로 눈독을 들이는것은 당연했다. 젊은 차세대 기업주, 사로잡는 언변,
영국 귀족같은 이미지 등등 여러 형용사로 이목이 집중되어 누가 뭐라해도 주인공일만큼 돋보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고 무심했다. 그저 K호텔의 대표로써 젠틀한 미소로 위장
해 억지로 웃고 있는 탓에 경련이 일 참이다. 품위 유지를 하고 있는것부터 형식적인 안부인사는
기계적 반복으로 강철같던 체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의 얼굴은 그것을 대변해주는 피로로 역력
히 덮였다. 레이디의 쉴새없이 말을 붙여 오고 앵무새처럼 대답하면서도 그는 입구를 힐끔거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자존심이 쎈 사교계 여성들은 배려를 가장한 정중한 거절에 나가 떨어지면 또 다른 여성이 말을 걸었
다. 벌써 몇 번째인지… 구세주가 나타났다. 금명이 어깨를 두르고선 접근했다.
“저도 끼어도 되겠어요?”
여성의 의사는 듣지 않고 자연스레 문혁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이름모를 여성은 금명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불쾌해하더니 어색하게 자리를 떴다.
“나 잘했지?”
“고맙다. 죽는줄 알았어.”
“네 얼굴에 써 있었어. 나 폭발 직전이니까 제발 좀 꺼져달라고 써있는데, 왜 그 여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걸까?”
칵테일을 연거푸 마신 금명의 콧잔등에 약간 붉은 기운이 생겼다. 꼴을 보니 오늘도 진탕 마시다
그나마 취향인 여자를 건드려볼게 뻔했다. 뒤처리가 깔끔한 문혁에 비해 이곳저곳이나 들쑤시고 다니
는 금명의 악명은 단연 최고라서 상류 고급계층 아가씨들의 기피대상 1호였다.
“넌 오늘 고독한 남자 컨셉이냐? 주최측이면서 참석자면 좀 유들유들한 대응을 해야지. 너처럼 표정
관리 잘하는 놈이 레이디들의 흑심을 무참히 짓밟아서 쓰나~”
“그런거 따지는 너나 챙겨. 남 상관말고.”
“어허. 섭한 소리. 친우를 내버려두면 그게 우정이던가. 그나저나 오긴 오는거 맞냐. 너 이렇게 기다리는
거 다 류은오때문이면서 안오면 어떡할래?”
“올꺼다.”
“에이~ 그건 아니다. 친구로써 충고해보마. 막말로 류은오가 올지 안올지 모르는 일. 목빼고 기다리다
후회하지 말았으면 싶네.”
“꼭 와.”
“고놈의 확신은. 어라? 저게 누구야?”
소란스러움이 잠시 주춤했다. 젊은 남녀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인 듯 했다. 이상함을 느낀 금명이 고개
를 돌려 시선의 중심에 놓인 곳을 쳐다봤다. 바로 한 여성의 입장 때문이다.
문혁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향하더니 조금 놀란 듯 마시던 칵테일에서 입을 떼었다.
화려한 미모는 아니지만 눈코입의 조화와 하나로 깔끔하게 업스타일 된 헤어, 강렬한 레드컬러 드레스
의 매치가 시선을 끌었다. 체형커버와 심플함으로 무난한 블랙 드레스를 선호한 여성이 많기에 레드컬러
드레스의 등장은 흥미를 유발시킨다.
“휘유~ 이 파티에서 저런 레이디가 있다니- 작년에는 못봤는데. 사교계를 싫어하는 집안댁 따님이신가.”
문혁은 간단하게 말했다.
“왔어.”
“엉? 류은오가 왔어? 언제온거야? 어디어디? 어딨는데?”
“지금 들어온 사람이 류은오다.”
거봐, 못알아본댔지?
“………뭐?!”
쇄골이 드러나면서 가슴이 깊이 파인 드레스에 블랙 퍼 숄더를 매치시켜 우아하면서 관능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실내의 따뜻한 온기에 퍼 숄더를 걷어내자 시원스럽게 오픈한 등이 뒷태를 뽐냈다. 붉은 장미
를 연상시키는 레드 드레스는 정열적이었고 맵시 좋은 몸매를 감싸 줘 단연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남성들의 탄성이 흐르고 여성들의 질투의 화살을 한 몸에 받으며 입장했다.
문혁은 세 가지에 의문점이 있었다.
첫째,
그녀에게 보낸 드레스는 저 드레스가 아니다. 브이라인에 색상은 베이지, 무릎까지의 길이로 진주 장신
구가 박힌 차분하면서 단아한 드레스였다.
둘째,
왜 자신의 선택에 결함이 없음에도 파격적 노출 드레스를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은 탁월했다. 베이지색의
심심한 의상보단 그녀가 선택한 드레스가 뇌쇄적인 매력을 풍겼으며 현기증이 일만큼 아름다웠다. 문혁
은 마음 한편으로 은오가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불참했다면 차라리 이해가 되었을 것을
오기 싫다고 바락바락 대들던 그녀가 왜 자신이 드레스를 선택하면서까지 이 곳을 찾아왔냐는 것이다.
셋째는….
“야. 내가 보고 있는게 조진권 맞는거야. 거진 10년 만의 조우인가. 달라졌네. 짜식. 사회인 티 좀 나는데?
어이어이. 여긴 파티장이야. 인상 좀 풀어. 서문혁. 그동안 관리한 이미지 틀어지면 어쩌려구?”
“저 자식이 왜 여기 온거야.”
“초청장엔 1매 2인이ㄴ… 아. 서문혁, 너 한방 먹었네. 류은오가 조진권을 데리고올줄은 몰랐지?
예상밖의 상황 아냐?”
바로 조진권의 등장이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을 잡아 에스코트 하면서 함께 입장한 진권은 익숙
치 않은 자리에 심통이 난 듯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지만 옷차림과 포스만은 상류계층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그녀가 높은 힐에 약간 휘청이자 진권은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쌌다. 문혁의 눈썹이 꿈
틀거리더니 앞으로 뛰쳐나갈 기색이다.
“저 쪽이 이쪽을 봤는데? 어쩔까나.”
“…”
“온다. 서문혁. 제발 부탁인데 사고 치지 마라. 여기 사람들 눈이 좀 많냐. 거기다 이 사람들있을때
사고 치면 일 복잡해지는거 알지? 행동 조심해.”
“……그건 나도 장담 못하겠다.”
문혁이 이를 갈며 조용히 말했다. 어느새 그들이 가까이에 접근했다. 문혁은 그녀의 향기에 질식할것
만 같았다. 끊이지 않던 로즈향이 잠식해가 사고를 마비시켰다.
“확인하니 2인 참석 가능하다 해서 제 파트너를 데려왔는데- 두 분 초면이 아니죠? 아- 세 분이네요.
옆에 계신 신사분도 합해서.”
그녀는 마치 처음보는 사람에게 대하듯 문혁과 금명을 대했다.
“이렇게 화려한 파티에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스레 앞섬을 여미고 퍼스트 레이디다운 은은한 미소로 애간장을 녹일 듯 살며시 웃었다. 그러더니
불쑥 서문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사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악수는 지금 이 순간 잡을수도 그렇다고
안 잡을수도 없는 억지스런 상황이었다.
“악수 안해주실건가요?”
이미 사람들의 여러 눈이 쏠려 있었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은 자기 편한데로 이용해 먹었다. 문혁은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었고 진권이라고 편한 자리라서 이곳에 온것은 아니었다. 진권 역시 불편했
고 은오가 그동안 비밀리에 부쳤던 계획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확실히 재밌긴 했다. 빌어먹을 서문혁의
분노게이지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있었다. 서문혁이 당장 달려들것 같기에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서문혁이다. 소란을 일으키면 안돼는 불리한 입장.
그가 만든 시나리오 중 예측할수 없었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문혁이 은오의 손을 마주 잡았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장한 채, 그는 물었다.
“동행한 분은…”
“제 연인입니다.”
예의상 건넨 말에 뼈저리게 후회했다. 확실히 엿먹이려고 나온 상대다. ‘혈연관계’나 ‘친구’그런 말을
할리가 없는데 왜 이딴 바보같은 질문을 물었을까. 문혁은 눈이 어둡게 침식되어갔다. 은오는 그런
그를 비웃었다. 금명은 이들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진권은 통쾌한지 연신 히죽이며 손을 내밀었다.
이 자리에선 누가보나 은오의 연인은 자신이었다. 문혁이 입술을 악물고 진권의 손 또한 마주잡았다.
진권에겐 한번 느꼈던 승리자의 느낌이 높게 밀려왔다. 다시 한번 도취된 감각은 깨기 싫을만큼 짜릿
했다. 문혁의 얼굴에선 씁쓸한 패배감과 더불어 지독한 환멸적 감정에 입술이 떨렸다.
“그럼 이제 파티를 즐겨야겠군요. 모처럼 초대해주신 자리 재밌게 보내도록 할께요.”
“네, 즐.거.운 시간 보내시죠.”
불필요한 악센트. 잡아 뜯어먹을듯한 짐승의 눈. 방금전까지 생글거리며 웃던 그녀의 입가가 문혁이
보이지 않게 되자 순식간에 굳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었나- 아니, 없다. 하지만- 옛날의 자신
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싶었다. 농락당하고 기만당하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물처럼 지나가는건 싫었
다. 되풀이되는 과정은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그에게 자신은 달라졌다, 예전의 류은오가 아니다,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복수다.
“권아. 재밌지 않니?”
“이 상황? 끝내주게.”
“서문혁은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 이 정도면 자존심에 꽤 큰 흠집이 났을꺼야. 약올라 죽을거 같던 얼굴,
킥- 우습지. 난 그렇게 얼빠진 얼굴이 보고 싶었어.”
“그 놈 얘긴 그만해.”
“?”
“네 입에서 그 놈 얘기 흘러 나오는거 싫어.”
“풋- 질투하니? 통쾌하지 않았어?”
“물론 통쾌해. 그렇지만, 이렇게하면서까지 그 녀석 얼굴을 봐야되는건 유쾌한 일이 아냐.
다신 만나기 싫다구. 더군다나… 네가 그 녀석을 보는건 끔찍히 싫어.”
은오가 진권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안심하란말을 대신해.
“입 꾹다물고 있었던건 한꺼번에 받을테니까 각오해.”
진권은 말을 돌렸다.
귓가가 빨개진건 이미 감출수 없는데도 말이다.
**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흑흑흑흑 한달 하고 조금 넘었죠. 제가 연재 시작할때 최우선으로
염두하는건 [완결]입니다. 이게 목표이기에 잠수를 타도 다시 돌아옵니다! 꼬옥! 기다려주시는 모든분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혼자 있을때 글이 써지는 타입입니다만, (특히 저녁때 가장 잘 써진답니다)
물론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제가 드리는 변명은
1. 고등학생인 동생의 방학으로 집에 비는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컴퓨터 앞에 앉게 되더라도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2. 제가 또 엄청나게 손이 느리고 잡생각이 많아서 한편 완성하는데 한시간일때도 있고, 일주일,
이주일의 시간이 걸릴때도 있습니다.
3. 대학 전공과 무관하게 다른쪽 직장을 가지고 싶어 컴퓨터학원을 다니게 됐는데 컴퓨터 수업시간이
하루 6시간을 차지합니다. 하루종일 붙들고 있는 컴퓨터를 집에와선 쳐다보지 않게 되더군요.
집중이 되지 않다보니 허접스런 글을 내놓기보단 잠시 머리를 식히자- 란 느낌으로 손을 놓게
되었더니 배신감(!)을 느낀 독자분들도 계시더군요 ㅜ 흑흑 (독촉쪽지 감사드려요 살앙훼요) 오늘
같은 날은 특별한(!) 날로 마침 저 혼자 집에 남게 되었거든요. 그래도 두편 한꺼번에 들고왔지 않습니까.
언제든 질타, 독촉, 오타지적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려요- 핑계가 너무
많죠. 그래도 어떡하나요- 앞으로도 이럴듯 ㅜ 그러니까 독촉은 꾸준히 부탁드려요.
늦게와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올 그날까지, 조금만 참아주세요! 뿅!
문혁이는 정신좀 차리고 은오한테 진심으로 대했으면 좋겠네요 진권이는 이용당해서 쩜 불쌍ㅜㅡ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아는거겠죠? 우리 함께해요~
ㅠ.ㅠ너무오래기다리다지쳤는데 다시보니까힘이불끈! 돌아오셔서 기뻐요 문혁이짱
문혁편이시군요! 저는 여전히 둘 다 좋아해서 갈팡질팡 ㅜ
다음편기대하겟습니다
넵 기대해주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최대한 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빨랑빨랑돌아오셔서연재하시길기다리겠습니다
네. 자꾸 더뎌지고 있죠. 이게 말로만 듣던 슬럼프인지- 흑흑
권이랑 은오랑잘됬으면좋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 권이편이예요!!!
권이♥은오
권이♥은오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될지 와그자작님이 원하시는 커플이 될지! 끝까지 함께해주세용!
다음편 너무 기대되는데....
죄송합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요. 다음편은 대망의 폭로전입니다. 어떻게 폭로가 될지 어떤 상황인지 틀만 짜놓고 세심한 부분은 지금 손도 못대고 있어요. 으윽- 최대한 머리를 짜내서 돌아올께요!
자극 땜에 맨날맨날 인소닷 들러와용 ㅜㅜ 다음편 너무너무 궁금해용~~
22편 들고왔습니다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은 23편으로 보답할께요 ㅜ
ㅠㅠ........! 너무재밌어서 더 슬프다....... 언제돌아오실꺼예요흑....
저 돌아왔어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3편으로 보답할께요~
연중인줄 알았잔아요 ㅜㅜ 실망하고 있었는데 ...
아니에요 장담하건데 연중은 절대절대 없어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