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란 말 어디에서 왔을까
소란스런 거리에 서서
“안녕”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면
꽃잎이 지고 하루가 저물어 가네
얼마나 많은 별리들이 사람들 앞에 있었을까
바람 속을 떠돌고 강물에 섞여 흘러갔을까
“안녕”하고 뒤돌아서면
적막에 묻힌 집 한 채
떠오르고
잊혔던 이름들 등불처럼 내걸리네
안녕이란 말 어디로 갈까
허공에 매달려 반짝이는
이름들아
불멸의 노래들아
-『경북매일/이성혁의 열린 시세상』2023.02.14. -
이별할 때 말하는 ‘안녕’이라는 말. 이 시에 따르면, 이 말을 “읊조리면” “소란스런 거리”에서도 적막의 공간이 열린다. 그 공간은 가슴 아픈 이별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곳이다…. ‘안녕’이 시적인 말이라는 것을 이 시를 읽고 새삼 깨달았다. 시적인 말이란 “불멸의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 노래들은 “잊혔던 이름들”이 내걸리는 ‘등불’을 의미하는데, ‘안녕’을 읊조리면 이 등불에 불이 켜지는 것이다
가을의 말씀에는 은유가 없다.
은유의 꽃이 사라지고
은유의 잎이 떨어지고
은유의 뿌리였던
허기와 향기가 지워지고 나면
원색의 하늘만 남아, 침묵의 하늘만 남아
태초의 말씀,
허공 가득한 바람으로
그대의 한 생을 증언하고 있다.
-『경북매일/이성혁의 열린 시세상』2023.02.17. -
인간의 언어가 은유를 통해 탄생하고 작동한다면, 은유가 지워진 언어엔 무엇이 남을까? 시인은 “태초의 말씀”인 ‘침묵’만 남는다고 한다. 은유의 꽃, 잎, 뿌리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 남는 건 허공과 그 허공을 가득 채우는 바람뿐이다. 우리가 저 푸르른 가을 하늘의 허공을 보았을 때, 태초의 말씀이 침묵을 통해 들려온다. 그리고 그 ‘하늘-침묵’은 바람처럼 허공을 지나가고 있는 “한 생을 증언”해주는 것이다.
〈이성혁 / 문학평론가〉
Mozart - Piano Concerto No.23 A major K.488, 2nd Ada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