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예이츠
비록 떠가는 달처럼
미의 잔인한 종족 속에 키워졌지만,
그녀는 한동안 걷고 잠깐은 얼굴 붉히며
내가 다니는 길에 서 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생각할 때까지
허나 나 그 위에 손을 얹어
차가운 마음을 발견한 이래
많은 것을 기도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매번 뻗치는 손은 제정신 아니어서
달 위를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웃었고, 그건 나를 변모시켜
얼간이로 만들었고,
여기저기를 어정거린다.
달이 사라진 뒤의
별들의 천공운행(天空運行)보다 더
텅 빈 머리로
[작품해설]
예이츠의 시 「수양버들 공원에 내려가」는 이렇게 되어 있다. “수양버들 공원에 내겨가 내 사랑과 나는 만났습니다. / 그녀는 눈처럼 하얀 귀여운 발로 버들 공원을 지나갔습니다. / 나뭇 잎 자라듯 쉽게 사랑하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만 / 나는 젊고 어리석어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 // 들녘 강가에서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고 / 나의 기울어진 어깨 위에 그녀는 눈처럼 하얀 손을 얹었습니다. / 강둑 위에 풀 자라듯 쉽게 살라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만 /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은 눈물이 넘칩니다.” 이 시는 한 노파가 예이츠에게 준 삼행시를 늘려서 썼다고 한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있고, 여인이 아마도 실의에 빠져 있던 남성에게 인생에 대해 말로 거들고 있다 물론 그때 시적 화자는 젊었던 까닭에 그 말을 받아안을 수 없었으며, 세월이 흐른 오늘에서야 그 말의 의미가 매우 깊어져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이시의 시구 가운데 “나뭇잎 자라듯 쉽게 사랑하라”라는 말이나 “강둑 위에 풀 자라듯 쉽게 살라”라는 시구를 펴놓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슬픈 곡조를 듣는 듯하며 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의 애틋한 얼굴이 떠올랐다.
예이츠는 또 다른 시에서 사랑을 하니 “그대와 함께 세상의 눈물이 모두 왔다.”(「사랑의 슬픔」)라고 썼고, “포도주는 입속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 속으로 들어온다”(「술노래」)라고 썼다. 예이츠는 『나의 딸을 위한 기도』라는 시에서도 “사랑스럽고 영원한 곳에 뿌리박은 푸른 월계수처럼 살기를”이라고 노래했는데, 예이츠의 시에는 이처럼 고결함, 존엄, 예의, 사랑, 신뢰 등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첫사랑」은 사랑에 사로잡힌 영혼을 노래한다. 사랑의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살과 피로 된 심장을 갖고 있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감정과 등가다. 그러나 사랑의 결과가 충분하고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기도하고 “뻗치는” 마음이 보답없이 돌아오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의 미소는 나의 판가름하는 능력을 중지시키고 저하시키고, 덜된 사람처럼 이리저리 방향없이 걷게 한다. 이 시에서의 사랑은 ‘달’로 비유되어 있다. 그러나 그 달은 천체를 일정한 궤도로 운행하는 달이 아니라 지상에서 올려 볼 때 지나가 버리는, 떠가는 달이다. 그것은 사라짐과 몰락의 행로다. 이 시는 사랑이 올 때와 사랑이 지나간 후를 동시에 보여 준다.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어리고 미숙해지며, 사랑이 종료되었을 때 우리는 휴화산의 분화구 같은 공허를 맛보게 된다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예이츠가 열모했던 여인 모드 곤이 어쩔 수 없이 생각난다. 예이츠는 모든 곤에게 여러 차례 청혼했으나 매번 거절당했다. 모드 곤과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열정적인 여인 모드 곤을 만나면서 예이츠는 아일랜드 전통의 부활에 관심이 켰다. 특히 그가 성장한 슬라이고 지방에 남아 있었던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 세계는 유령, 요정, 악령 등이 존재하는 신비주의적이며 샤머니즘적인 세계였다. 그가 후일 심령술을 교단에 참여한 것도 이런 취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예이츠는 문화의 통일을 통해 단일한 민족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켈트족의 정신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잘 “민족성이 없이 위대한 문학은 없고, 문학이 없이 위대한 민족성은 없다”라는 말을 했다.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에 관한 예이츠의 관심은 동양의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 명상, 금욕, 환생 등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 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에 심취했고, 이런 관심을 매개로 해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와 개인적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던 예이츠가 보다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은 일본의 전통 연극인 노(能)였다. 특히 유령이나 정령이 등장하는 몽환적인 무겐노는 예이츠를 매혹했다. 그것은 초자연의 세계였다. 예이츠는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비서 일을 보았던 에즈라 파운드를 통해 일본 연극을 접했다. 당시 파운드는 일본 동경제국대학교의 교수였던 어닛트 페놀로사의 유고를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서구 사회의 이성과 과학의 광포함에 맞서 인간의 내면에 초자연의 세계를 복원하려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신화와 전설, 동양의 정신세계는 그에게 이상적인 보고(寶庫)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예이츠의 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는 “시인은 현자처럼 생각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일반인처럼 표현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물론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차디찬 시선을 던져라. 말을 탄이여, 지나쳐 가라!”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작가소개]
윌리엄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
<요약>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 환상적이며 시적인《캐서린 백작부인》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했으며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독자적 신화로써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출생-사망 : 1865.6.13 ~ 1939.1.28
국적 : 아일랜드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
주요수상 : 노벨문학상(1923)
주요저서 : 《환상 A Vision》(1925)
1865년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출생하였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더블린 및 런던에서 화가가 되려고 수업하였으나 전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시집 《오이진의 방랑기 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는 켈트 문학 특유의 유현(幽玄)하고 표묘(縹渺)한 정서를 풍겨, 당시의 세기말 시인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들과의 교우로 ‘시인 클럽’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그는 라파엘 전파(前派)의 영향 아래, 낭만적인 주제와 몽환적(夢幻的)인 심상(心象)을 즐겨 묘사하였다.
1891년 동지들과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어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1899년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더블린에 창립하였다. 이 동안 그는 환상적이며 시적인 《캐서린 백작부인》(1899년 초연)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 J.M.싱 등과 협력하여 아일랜드 극(劇) 발전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미모의 민족주의자 M.곤 등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1922∼1928).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극장 경영, 배우 훈련, 정치 참여 등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의 중기는 대체로 실천에 중점을 두었다.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그의 시상은 이 실천으로 하여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여전히 심령론(心靈論) 연구를 계속하였고, 1917년에는 무녀(巫女)와 결혼까지 하였다. 예이츠의 복잡한 후기의 시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舞姬)》(1921) 《탑(塔)》(1928) 등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성적이고 우미하던 스타일은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환상적이던 심상(心象)은 금속적(金屬的)이라 할 만큼 구체성을 지닌 심상으로 전화(轉化)하였다. 그와 동시에 주의의 초점은 그 근저에 깔린 세계관(그것은 그의 경우, 동시에 예술관이기도 하지만)의 심화이다.
그는 시초부터 라파엘 전파, 이어서 상징주의의 영향에서 자연과 대립하여, 자연보다 우월한 것으로서의 예술의 세계를 믿어 왔다. 그의 후기의 고투는 이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는 고뇌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고뇌를 그는 W.블레이크의 《예언의 서(書)》를 생각하게 하는, 독자적 신화로써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 기록이 난해한 산문집 《환상 A Vision》(1925) 이다. 예이츠의 과제가 현대시의 중추 과제에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며, 시인·비평가인 프레이저가 J.던, J.밀턴, W.워즈워스에 그를 비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윌리엄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