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박모(43)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분양받은 은평뉴타운 211㎡(분양가 8억6000만원)의 입주 마감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중도금 일부와 잔금(5억16000만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서다. 살고 있는 아파트(138㎡ㆍ시세 8억원)를 팔려고 내놨지만 석 달째 중개업소에서는 전화 한 통 없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전세 놓으려 중개업소를 찾은 박씨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박씨는 전세 가격이 집값의 절반인 4억원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는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의 아파트가 2억2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아직 두 달째 세입자를 못 찾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서울ㆍ수도권 중대형 아파트(전용면적 85㎡초과) 전셋집이 찬밥신세다. 경기는 나쁜데 물가는 치솟자 실질소득이 줄어든 세입자들이 관리비 부담이 만만찮는 중대형 전세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중대형 수요 끊겨…중소형 전셋값과 엇비슷
전세 물량이 쏟아지는 신규 입주 단지에서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약세 현상이 두드러진다. 입주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은 서울 은평뉴타운의 경우 211㎡ 전세 가격이 두 달 전에 비해 1억원 이상 떨어졌다. 지금은 2억원에 나온 물건도 있다. 집 크기가 절반인 113㎡ 전세가격(1억7000만~1억8000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
다음달 3000여가구가 입주하는 강동구 암사동 롯데캐슬 단지도 중대형 전세를 찾는 수요가 드물다. 198㎡ 전세 가격은 한 달 새 1억원 이상 내려 4억원대다. 저층인 경우 3억9000만원에도 구할 수 있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얘기다.
전용면적 85㎡인 112㎡ 전세 가격(2억원)에 3000만원만 보태면 중대형인 145㎡ 전셋집을 구할 수 있다. 암사동 1등공인 양경 사장은 “지난해 7월 입주한 암사동 트라이어팰리스 단지 내 중대형 아파트 중 일부는 1년 넘게 전세가 나가지 않아 지금도 빈집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1만8000여가구의 재건축 단지 입주가 시작된 잠실 일대도 마찬가지다. 신천동 장미아파트 151㎡ ‘급전세’가 2억2000만원으로 같은 단지 108㎡ 전셋값(2억~2억2000만원)과 엇비슷하다. 잠실동 금풍공인 이경희 대표는 “예전에 비해 가족 수가 적어진 데다 관리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중대형 아파트보다는 새 아파트 중소형 전세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북구 길음동 오렌지공인 정혜정 사장은 “물가 상승으로 전기세ㆍ난방비 등 관리비가 부담돼서인지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보다 더 작은 전셋집을 구하려는 문의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길음동 래미안3차 108㎡ 전세 가격은 2억3000만원 선으로 인근 푸르지오 165㎡ 전세 가격(2억6000만원)과 3000만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원구 중계동 중앙공인 양일모 대표는 “중대형을 찾는 문의도 뚝 끊겼고, 거래도 1년에 3~4건에 불과해 전세 물량만 쌓인다”고 말했다.
수도권 중대형 전셋집도 인기 ‘뚝’
수도권 역시 중대형 전셋집을 찾는 사람이 줄고 있다. 고유가로 서울 출ㆍ퇴근에 드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다. 용인시 성복동의 경우 수지자이 아파트 119㎡의 전세가격은 1억5000만원 선인데,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강남아파트 195㎡ 전세 가격(1억7000만원 선)과 큰 차이가 없다. 인근 벽산첼시빌 2차 214㎡는 1억6000만원에 전세로 나와 있다.
인근 상현동도 상황은 비슷하다. 동일스위트 188㎡ 전세 가격은 1억6500만원이다. 인근 D중개업소 박모 사장은 “집주인과 말만 잘하면 1억6500만원 하는 전세가격을 1억5000만원까지 맞출 수 있다”고 귀띔했다.
남양주시 평내ㆍ호평지구도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도 약세다. 평내 중흥 S클래스 2차 185㎡와 125㎡의 전세 가격은 올 들어 1000만~2000만원 넘게 떨어져 각각 1억5000만원, 1억3000만원 선이다.
중대형 전셋값 약세 지속 전망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약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ㆍ수도권에 새로 입주하는 중대형 아파트가 많은데 전세 수요는 줄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 강남공인 김종석 사장은 “중대형 아파트 공급 과잉과 경기 침체가 맞물려 전세시장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돈암동 중앙공인 이순옥 사장은 “중대형은 전세 매물을 의뢰받으면 부담이 될 정도로 전세 물량이 쌓이고 있다”며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8.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