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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14. 큐티
다니엘 3:19 ~ 30
풀무불 가운데를 거닌 네 사람
관찰 :
1) 느부갓네살의 진노
- 19절.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a. 느부갓네살은 세 젊은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이 아까운 인재였고, 그들이 순복하면 더욱 자신의 의도한 바 중앙집권체제가 돋보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아까웠지만,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들에 대하여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b. 문제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다니엘의 하나님이고,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느부갓네살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c. 그는 논리적으로 본다면 최소한 7배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금 신상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던 거대한 풀무의 불길을 7배나 더 뜨겁게 타오르게 한 것입니다. 이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d. 그 과정에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마음이 쪼그라들고 백기를 들게 되기를 원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문무 백관들이 더욱 왕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 20절.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a. 풀무의 불길이 너무나 거세고 두렵게 타올라서 감히 아무나 그 근처로 갈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b.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군사들 중에서 용사들을 명하여 하나냐(사드락), 메삭(마사엘), 아벳느고(아사랴)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결박을 해서 집어 던지라 명했습니다.
2) 왕의 명령의 결과
- 21절.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a. 느부갓네살의 무서운 명령은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제국의 황제의 권한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뭉개서 금이나 은, 동, 철을 제련하는 불에 사람을 집어넣는 일이 공식적인 명령을 통해서 시행된 것입니다.
b. 거의 사적인 원한을 갚고자 하는 수준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인 세 청년들이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 그들을 증명하는 모든 외적인 증거들을 다 갖춘 채로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은 채 불속에 집어넣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제왕의 분노였습니다.
- 22절 ~ 23절.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a. 풀무의 불이 너무 거세어서 세 청년들을 끌고 갔던 이들이 모두 불에 타 죽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단지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신실하고 용감하게 순종한 것뿐이었습니다.
b. 그러나 제왕이 미련해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용사들이 그렇게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세 청년은 그 무시무시한 불길 속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3) 다시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느부갓네살
- 24절.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a. 그 당시에 만든 풀무는 매우 거대했습니다. 그래서 풀무 속에 사람들이 걸어 다닐만했고, 또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b. 느부갓네살은 잔인하게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타 죽는 광정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그 광경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그 가운데를 거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c. 그들이 타 죽지도 않고, 분명히 세 사람을 집어넣었는데, 그 속에서 네 사람을 발견했으니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보좌관들에게 다시금 확인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 25절.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a. 세 청년들을 결박한 끈은 진작에 불타서 없어졌기에 결박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또 한 명의 사람이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또 한 명의 인물은 신의 아들과 같이 홀연하게 등장하여 세 사람을 불로부터 완전히 보호하고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b.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그것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26절.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a. 느부갓네살은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체험하고서 그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친히 풀무불 입구 근처에 가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b. 그들을 부를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상당히 양보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신상의 봉헌식에 다른 신이 더 높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 27절.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a. 풀무불에서 나온 이들을 자세히 검사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머리털도, 그들의 옷의 보푸라기도 그을리지 못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심지어는 불에 그을린 냄새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b.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것을 모든 왕의 행정관과 모사와 지방의 모든 총독들이 다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부갓네살 뿐만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의 모든 지방에까지 알려지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c. 느부갓네살은 중앙집권 통치를 위하여 지방의 모든 문무백관을 데려와서 자신의 신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그로 말미암아 국론을 하나로 모아서 통치하고자 했으나 세 청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만이 참 신이심이 증거되었습니다.
4) 세 청년을 높이는 느부갓네살
- 28절.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a. 이 일은 느부갓네살에게 분명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가 천사를 보내사 그의 종들을 보살피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시는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b. 세 청년의 믿음에 탄복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크심이 온전하심을 느부갓네살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29절.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a. 느부갓네살은 세 청년들에게 너희를 구원할 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할 신이 없다고 다시 자신의 말을 번복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하여 경솔히 말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자는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만드는 조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b.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섬기는 신이 이렇게 높여지게 되는 일은 역사상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스스로 취하신 놀라운 일이었고, 이 일을 위하여 세 청년들의 놀라운 믿음의 결단이 사용된 것입니다.
- 30절.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a.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통치 철학에 방해가 된 이들을 제거하거나 좌천시키지 않고 도리어 더 높은 자리에 앉히고 그들을 활용하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제국의 황제다운 모습입니다.
b. 하나님의 사람들의 결단이 그들을 망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 스스로도 높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소망한 것은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헌신과 결단, 그리고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소원함과 같이 이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명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증거하셨습니다. 풀무불이 제 아무리 뜨거웠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를 구원하시기에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능력은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2) 바벨론의 모든 지방에서 올라온 지도자들이 이 광경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이 엄청난 황금을 쏟아부어 만든 금 신상이 받아야 하는 경배는 오히려 모두 하나님이 취하셨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세상의 군왕이 어찌어찌 자신들의 지혜를 모아보지만 그것은 택도 없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취하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의 사람이 바르게 반응하고 드려진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모든 상황을 뒤집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빼앗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3) “이 때 다니엘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때 그 자리에 모여있었던 사람들은 중앙 관료들이 아니라 지방의 문무백관들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원했던 것은 중앙집권 통치였고, 지방의 제후들을 비롯한 리더들이 자신의 능력 앞에 굴복하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중앙의 관료들이 그 자리에 모두 나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시각에 아마도 왕궁에서 느부갓네살을 대신하여 다른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혹은 다니엘이 그 자리를 피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전자에 무게를 더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다니엘도,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포로로 끌려온 상황에서 믿음의 결연함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뜻을 정한 인생”을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적용 :
1) 나의 삶을 통하여 과연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식하기에 그것이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이 바뀌는 조변석개의 존재가 어찌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진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다만 나는 나를 드리면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에서 믿음으로 허리를 세우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 세상을 대하는 어떠한 것보다 더 우선하는 나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사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이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이 자신과 세 친구의 믿음의 위대함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심이지. 그것을 나도 바라보겠습니다. 그것이 승리의 비결이고 이기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GSC 01 모임이 세번째 모이게 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부흥을 허락해 주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