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소리에
최 병 창
아주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러시아의 민요 트로이카를 듣고 있네
스크린 속의 말들이 마차를 끌지 않아도
트로이카는
걸음걸음의 속도를 따라잡네
눈을 떼지 않아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
눈앞으로 지나치고
벌판을 가로지르는
눈발 속의 눈은 하늘을 맞고 있는데
눈 내리는 소리는 어느새
말발굽소리가 되어 온몸을 휘감고 있네
눈 속에서 나타샤가 걸어 나오고
얼룩진 눈밑으로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처음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어제가 다시
새로운 오늘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달콤한 말들은 언젠가부터
기억 속의 눈 속에 묻혀버렸네
특별한 풍경은 이제 특별하지 않네
눈 속에서 멀어지는
트로이카의 희미한 여음이나
미련을 두지 못한 길을 따라
아득하게 보이는 것처럼
높고 낮은 음률이
휘날리는 눈 속으로 멀어지네
빠르게 또는 느리게
그리고 은밀히 사라지면서.
< 2023. 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