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을 보았...었더랬습니다.
이것도 본 지 한 달여가 됐네요.
스포주의입니다~~
공교롭게도 2017년 첫 한국영화였습니다.
원래 외화보다 방화(아재가 아닌 분들은 이 말을 아실려나?ㅎㅎ)를 더 좋아하지만
현 세태를 소재로 했던 최근의 화제작들은 구미가 당기지 않더군요.
영화의 시대 반영은 문화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당연한 거지만
풀어낸 방식들이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본 건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작인 <남과 여>는 놓쳤고, <어느 날>은 예고편에서 본 밝은 분위기와
천우희, 김남길에 대한 믿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이윤기 감독의 세심한 연출은 여전히 좋았고 전반부까지의 밝은 온화한 기운도 좋았습니다.
예고편과 영화 전반부에서는 짐작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 영화는 존엄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존엄사는 이제 초등학생들도 한번쯤 토론해봤을 오래된 사회 쟁점입니다.
영화로 다룰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소재죠.
강수(김남길)는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를 떠나보냈고,
미소(천우희)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시각장애인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랜 투병생활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언젠가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기 마련이죠.
강수도 그런 적이 있었고, 아내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수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 데 대한 죄책감과
아내 홀로 그런 고통스러운 선택하게 둔 것에 대한 자책에 빠집니다.
강수가 아내의 장례에 가지 않은 것은 그런 죄책감과 자책 때문일 것이고,
미소의 영혼이 강수에게만 보이게 된 건 우연이 아니죠.
강수는 미소의 부탁들을 들어주다가 미소와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미소가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간 그 날 사고를 당한 사연을 듣고는
병상에서나마 엄마와 재회하도록 돕기까지 하죠.
그런데 자신을 간호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던 미소는 이제 그만 세상을 떠나기로 하고,
유일하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강수에게 세상을 떠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게 좀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현실을 생각하게 되는 대목인데,
강수는 가족이 아닌 제 3자입니다.
한 술 더 떠 미소를 친 교통사고 가해자의 보험회사 직원이죠.
보험처리 문제 때문에 미소의 귀책사유를 탐문하던 과정에서 미소의 영혼이 눈에 보인거죠.
현실적으로 교통사고 가해자의 보험회사 직원이
피해자의 산소호흡기를 멈추는 것은 살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소의 영혼이 부탁을 했다고 말해 본들 정신이상자 취급 밖에 더 받을까요.
강수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 미소와 감독이 너무해 보입니다.
결국 영화는 강수가 미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영화의 좋은 감상은 휘발되고 강수에 대한 걱정만 남습니다.
영화가 존엄사라는 안타까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당사자들의 심경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은데,
너무 지나쳤고 너무 감상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상황과 심경에서 한 발짝 떨어지게 했습니다.
할 만한 이야기이고, 영화의 분위기와 배우의 연기가 좋아서 더욱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좋은 배우는 일상을 연기 할 때도 특별함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천우희는 일상적인 연기를 하면서도 무색무취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과 맛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행복> 때 임수정이 그랬던 것처럼 천우희의 연기에 제 마음이 크게 흔들렸었는데...
친모의 행방을 알게 된 미소는 지방에서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는 친모를 찾아갑니다.
환대를 바라거나 뜨거운 재회를 꿈꾼 건 아니었는데 미소의 존재를 부정하는 엄마의 반응에
크게 당황하고는 허둥지둥 미용실을 빠져나옵니다.
미소는 평소 ‘이해해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합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텐데,
밝고 씩씩하게 자라온 것은 아마 그 주문 덕분이었을 겁니다.
외롭고 고된 삶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주문이고,
훗날 엄마를 만날 때를 대비한 것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미소도 자신을 부정하는 엄마의 반응은 견뎌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튼 그 바람에 자신의 눈이 되어준 지팡이(케인이라고 부르더군요)를 챙기지 못했고,
가장 큰 상처를 받았던 순간에, 가장 외로운 순간에, 너무도 캄캄한 세상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상처입은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한 발짝씩 내딛는 미소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아픔과 공포가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의 천우희의 연기를 보며 <행복> 때 임수정에게서 느꼈던 감정의 파동이 회상되더군요.
공교롭게도 또다시 영혼을 연기했고 대체로 난이도가 있는 연기를 해왔는데,
차기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영화도 줄거리가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조만간 밝고 가벼운 영화에서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김남길의 얼굴엔 개구쟁이의 능글맞음과 세상 다 산 심드렁함이 함께 보입니다.
<선덕여왕>의 비담은 그런 그를 위한 것 같은 캐릭터였고,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무뢰한>에서 극단의 다른 얼굴을 각각 보여주었죠.
이번 작품에선 다양한 감정들을 연기해야 했는데,
잔잔한 영화이다 보니 운신의 폭이 좁아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불균질해서 그렇지 김남길의 연기는 균형을 잘 맞췄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우리 광숙이가 나옵니다.
초반에 영정 사진으로 잠깐 지나가는데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뽀글이 광숙이가 차분한 임화영으로 돌아가니 제법 분위기가 있습니다.
회상 장면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대체로 CF나 뮤비의 연기를 보는 듯한데,
우리 광숙이 좀 더 본격적인 연기를 자주 볼 수 있기 희망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장님이 아니구요. 시각장애인입니다!!”
을 각인시켜준 것.
논쟁에서 감상주의는 독이 된다는 교훈 ★★☆
첫댓글 보고싶네요 이런 주목받지못했는데 볼만한 한국영화 좋아함 방화가머에여? 방콕영환가
역시 아재적 표현..^^;
자국영화의 옛날식 표현이에요. 요즘은 국산영화로 순화해서 부르죠.
아쉬움은 많지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풀코트프레스 감사합니다 근데왜 방화죠? 궁금증이가시질안네 ㅜㅈㅅ
@화이티잉 한자가 '나라 방'에 '그림 화'자래요. 그래서 자기나라에서 만든 영화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풀코트프레스 와우! 감사합니다! 그렇게깊은뜻이
저는 그냥 아무생각없이 김남길 멋있다,천우희 연기 잘해서 좀 슬프다는 느낌만 받았는데 이런 깊은 해석도 가능하네요.님 감상평으로 인해 저도 다시 영화를 곱씹어보게 되네요.
영화를 보고 나면 잡 생각을 해보는 편이라...^^
김남길 멋있죠. 그게 평범한 회사원 수트핏이라니...ㅎㅎ
존엄사는 환자 스스로 고통에서 해방하는 것이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짊어지게 하죠.
더구나 가족도 아닌 제3자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건 너무 잔인해 보입니다.
존엄사를 다룬 로맨스(?)영화 '미 비포 유'라는 영화에서 존엄사를 선택하는 주인공의 입장이 저와 비슷한지라 감정이입을 하며 보았는데 주인공에 이해가 가는 마음과 그래도 나는 살아 갈거다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저도 중환자실에서 한달여간 있으면서 아내에게 나 좀 죽여달라 몇번 말했던 기억이 스치더군요.
참 잔인한 말이었어요.
어느날도 그렇고 미 비포 유도 그렇고 제 3자에게 존엄사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참 마음에 안드네요.
그런데 존엄사에 대해 흔한 클리셰를 사용해 존엄사에 대해 너무 가볍게 접근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미 비포 유'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미 비포 유>도 그렇고 당사자분들은 복잡한 감정이 드실 것 같네요.
영화의 진정성 여부는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날>은 진정서이 의심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공감을 얻기 위해 너무 감정에 치우친 얘기를 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늘해랑 그러셨군요. 특히 <미 비포 유>를 보는 마음은 남다르셨겠네요.
전 <미 비포 유>를 못봐서 뭐라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어느 날>은 가볍게 접근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전 오히려 더 간절한 마음을 전하려다 실책(?)을 저지른 케이스처럼 보이더군요. 물론 늘해랑 님이 보시면 다르게 느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