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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로버트 실러 미 예일대 교수는 주택시장 버블을 경고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빠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선 전세가가 치솟지만 집값은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한다. 골프장 회원권은 추락하고 미술품 가격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항산항심(恒産恒心:안정된 재산과 여유가 있어야 반듯한 마음을 유지한다)이라는데 곳곳에서 자산가치가 떨어지며 투자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지금이 바닥인가 아닌가. 부동산, 골프장 회원권, 미술품을 중심으로 ‘바닥 논쟁’을 살펴본다.
14일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안성골프클럽Q로 들어가는 입구엔 ‘3억원 회원권이 5000만원이냐’ ‘현대판 사기극’ 같은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클럽하우스에는 근조(謹弔) 표시의 리본이 걸려 있었다. 이 골프장의 법원 매각 결정에 반발하는 일부 회원이 붙여 놓은 것이다. 2010년 4월 개장한 이 골프장의 소유주 태양시티건설은 경영난을 못 이겨 지난해 3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것을 스크린 골프장 업체인 골프존과 사모펀드(PEF)인 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인수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3억원에 분양했던 회원권의 가치가 17%인 5000만원으로 평가받자 회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골프장 회원권은 대표적인 추락 자산이다. 지역·골프장별로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론 ‘아직도 바닥이 아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회원권이 적지않다. 경영난에 세금을 못 내는 골프장도 속출한다.
골프회원권, 투자가치 잃은 일본형 닮나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골프장 회원권의 평균 가격은 2008년 4월 3억1705만원을 정점으로 계속 떨어져 지난 1월엔 1억3002만원을 기록했다. 59% 폭락이다. <그래픽 참조>
회원권 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면서 입회금 반환 청구도 잇따를 전망이다. 업계에선 올해에만 반환해야 하는 입회금이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입회금 반환자금이 부족하면 골프장 운영업체는 부도가 나고 이는 다시 회원권 가격 하락을 초래한다. 악순환이다.
국내 골프장 숫자는 2002년 187개에서 2007년 308개, 지난해 468개로 늘어나고 있다. 이용객도 늘고 있지만 골프장 증가 속도엔 미치지 못한다.
이런 흐름은 일본 사례와 비슷하다. 일본 골프장 회원권의 평균 가격은 1990년 2월 4388만 엔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03년 6월 249만 엔까지 폭락했다. 예탁금 반환을 둘러싼 논란도 상당했다. 아베 신조 정권 등장 이후 돈을 마구 푼 덕에 회원권 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말 135만 엔이었던 게 5월 현재 179만 엔으로 됐다. 하지만 정점엔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서천범 레저산업연구소장은 “한국에서도 골프장 과잉공급과 이용객 감소 때문에 회원제 골프장을 중심으로 경영수지가 크게 악화될 전망”이라며 “회원권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골드먼 삭스가 과거 일본에서 헐값 골프장들을 인수해 퍼블릭 골프장으로 바꿨던 것처럼 국내 골프시장도 일부 최고급 골프장을 빼곤 퍼블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이현균 골프 애널리스트는 “골프장을 퍼블릭으로 운영할 경우 은행금리보다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만큼 골프장에다 스파·호텔·레스토랑·영화관을 갖춰 복합 레저시설로 만들어 운영하는 추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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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값 2007년 100이라면 지금은 절반
미술품은 감상 대상이지만 투자상품으로도 중요하다. 수년간 침체를 면치 못하는 미술품 거래시장에선 최근 ‘바닥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술품의 특성상 가치를 계량화하기는 힘들지만 가격이 공개되는 경매 낙찰가의 데이터를 이용해 아트밸류연구소가 산출한 KAPIX(Korea Art Price Index)를 보면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2003년의 그림가격 지수를 100으로 뒀을 때 2007년 293.54까지 올랐다. 하지만 금융위기 영향으로 KAPIX는 2008년 27.6%, 2009년 25.9%나 폭락했다. 이후 3년째 18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2007년을 100으로 봤을 때 지금은 50~60수준이다. <그래픽 참조>
아트밸류연구소 최정표 소장(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은 “국내 그림시장은 활황과 불황이 장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향을 보여왔는데 최근 지수의 움직임을 볼 때 더 빠질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며 “당분간 횡보세를 보이다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의 이상규 대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우환(77) 화백의 작품을 예로 들어 미술품값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예술작품은 같은 작가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크기로 비교해선 안 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스타일의 작품으로 설명한다면”이란 조건을 달아서다. 지난 9월 이우환 화백의 작품 ‘점으로부터’(1980년, 40호, 80.3x100㎝)는 3억원에 거래됐다. 2011년 9월에 매매된 ‘점으로부터’(1977년, 100호, 162.2x130.3㎝)는 8억5000만원이었고, 앞서 2008년 6월 팔린 ‘점으로부터’(1980년, 10호, 33.4x53㎝)는 2억2000만원이었다. 그는 “아주 단순화해 크기만 봤을 때 지난 9월 거래된 작품값은 4억원 선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수년간 미술시장이 바닥을 다져왔고 최근 좋은 작품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이건 바닥이란 증거의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 대표를 역임한 아트컴퍼니 김순응 대표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락했던 세계 미술시장이 최근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재벌과 얽힌 부정적 인식 때문에 국내 시장은 여전히 침체지만 조만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거래 늘지만 가계부채가 변수
회사원 박모(45)씨는 이달 초 경기도 죽전의 108㎡(33평형) 아파트를 팔고 서울 세검정으로 이사했다. 그는 2007년 10월 5억원에 샀던 죽전 아파트를 4억원에 팔면서 20%가량 손해 봤다. 그는 “아파트 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지도 않고 회사 출퇴근도 힘들어 팔았다. 부동산 가격이 꿈틀댄다는 소식을 들을 땐 조금 후회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잘 팔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선 ‘바닥 논쟁’이 치열하다. 바닥론의 바탕엔 최근 미미하지만 상승세를 보이는 가격과 조금씩 늘고 있는 거래량이 있다. 반면 ‘더 떨어질 것’이란 주장의 바탕엔 막대한 가계부채, 주택소유 인식 변화 등이 있다.
양쪽이 팽팽히 맞서지만 부동산 가격이 조만간 빠르게 회복되긴 힘들 거란 의견은 비슷하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픽 참조>
최근 동향을 보면 8·28 부동산대책 발표 후 중소형 매물을 중심으로 거래량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월 주택매매가격은 전달에 비해 0.05% 올랐다. 9월의 거래량은 전월보다 21% 늘었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바닥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기순환 흐름과 거래량 등을 볼 때 지금을 바닥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전세금이 매매가의 일정 수준이 되면 매매로 전환한다는 가설이 많이 깨졌지만 지금처럼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면 매매로 이어지는 수요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은 “우리의 집값은 가계소득과 비교했을 때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고 가계부채는 1000조원이 넘는다. 집값이 오르려면 주택가격이 충분히 떨어졌거나, 구매력이 증가하거나, 투기적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모두 다 아니다”고 주장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최근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소화되면서 지표가 조금 나아지고 있으나 일반 매매로 확산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상당 기간은 현재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염태정·노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