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가을의 중심에 서고 싶어 세상 변방에 자리한 화천 비수구미 마을로 향했다. ‘대한민국에 더이상 오지 마을이 어디 있을까?’ 싶은 세상에도 비수구미 마을은 여전히 오지로 불린다. 화천댐 건설로 파로호가 생겨나면서 한쪽은 산으로, 한쪽은 물로 막혀 ‘육지 속 섬’이 되어버린 곳. 배를 타거나 산길을 통해서야 갈 수 있는 비구수미 마을엔 가을이 한창이었다.
가을빛 가득한 오지 마을, 비수구미
가을을 독차지하며 비수구미 마을로 향하는 길
비수구미 마을로 가려면 화천읍에서 460번 지방도를 탄다. 구불구불한 산중 도로를 달리면 갑자기 쭉 뻗은 터널 하나가 나타난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최를 기념하며 1986m 길이로 만들었다는 해산터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에는 해산령 표지석이 서 있다. 산길로 비수구미 마을에 들어갈 요량이면 이곳에서 차를 세워야 한다. 해산령 표지석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도로 맞은편 산길로 들어선다.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산길 입구 쪽에 위치한 해산령 표지석
호젓하고 상쾌한 숲길
안내판에 따르면 마을까지 거리는 6km. 산 중턱에서 아래쪽 마을로 향하는 내리막 코스라 다행히 그리 힘들지 않다. 트레킹 코스는 시작부터 숲속 한가운데다. 이름 모를 수목이 둘러싼 숲길은 호젓하고 상쾌하다. 가을이 채색한 풍경 덕에 눈이 행복하다. 내내 길을 함께하는 계곡 덕에 귀가 즐겁다. 인적 드문 숲길이라 자연 풍광과 소리에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집중하게 된다.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불편함은 가을과 자연을 오롯이 만끽하는 즐거움을 낳았다. 아름다운 가을을 혼자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가을 풍경을 연신 눈에 담으며 걷는다
걷는 내내 계곡이 함께한다
6km 길이의 트레킹 코스는 지루하지 않다. 바람에 또르르 떨어지는 나뭇잎의 낙하를 관찰하고 겨울 채비로 분주한 다람쥐도 조심스레 살펴본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다소곳이 피어오른 가을 야생화에도 눈길이 머문다. 중간중간 골짜기와 계곡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과부터골 앞에는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6.25전쟁 후 피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화전을 일궜는데 우연히도 그들이 아홉 명의 과부였다 하여 이 골짜기를 과부터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숲길에 소담스레 피어난 야생화
과부터골 안내판
오지 마을에서 즐기는 산채비빔밥과 출렁다리
비수구미 마을 풍경
이런저런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덧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 이르면 자연스레 간판 하나 달리지 않은 밥집으로 발길이 향한다. 마당 가득 장독이 늘어선 이 집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도 등장한 바 있다. 메뉴라야 산채 정식, 도토리묵, 밤전 정도다. 직접 채취한 산채와 소박한 시골 반찬으로 차린 산채 정식이 맛깔스럽다. 트레킹 후의 밥상이라 그런지 맛있게 한 그릇 뚝딱한다.
직접 채취한 산채로 차린 밥상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
마당 한쪽을 채운 장독대
호수와 산이 둘러싼 오지 마을은 아늑하고 고요하다. 울긋불긋한 산들에 폭 안긴 호수, 그 위를 장식한 출렁다리가 한 폭의 가을 풍경화를 완성한다. 2시간여의 트레킹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그림이다. 출렁다리는 길지 않지만 걸어볼 만하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수려하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비소고미금산동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비소고미는 비수구미의 옛 지명으로 추정되며 금산동표는 조선 초기에 왕궁 건축에 사용되는 소나무 군락을 보호하고자 벌목 금지를 표시한 것이다.
비수구미 마을의 명물, 출렁다리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호수 위에는 보트가 여러 대 정박해 있는데, 비수구미 주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물길로 비수구미를 찾는 방문객들을 실어나르는 수단이기도 하다. 일반 방문객들은 비수구미 내 식당이나 민박 이용 시 미리 전화해서 배를 이용(유료)할 수 있다. 배로 타려면 해산터널에서 계속 직진해야 한다. 터널을 빠져나와 약 9.4km 지점에 갈림길이 나오면 선착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빠진다. 여기서 약 2.7km 거리에 선착장이 위치한다.
배를 타고 마을로 들어올 수 있다
단풍 물결 따라 평화의댐까지
굽이굽이 아흔아홉 고갯길이 이어진다는 해산령을 따라 평화의댐까지 여행을 이어가자. 평화의댐까지 가는 길은 가을이면 단풍이 화려한 물결을 이뤄 이동하는 내내 눈이 즐겁다. 평화의댐은 40대 이상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한 번쯤은 평화의댐 건설을 위해 성금을 내 본 기억이 있을 터. 평화의댐은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 축조에 대응해 1989년 1단계 공사를 준공했으며 추후 증축 공사를 완료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화의댐 가을 풍경
북한강 최상류 물줄기를 막아 건립한 평화의댐은 다양한 볼거리를 갖춰 관광지로도 사랑받는다. 스카이워크를 비롯해 물문화관, 비목공원, 국제평화아트파크 등이 있다.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집한 탄피를 모아 만든 세계평화의종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종은 1만 관(37.5톤)으로 제작됐는데 1관(3.7kg)에 해당하는 용뉴의 비둘기 날개는 따로 분리해뒀다. 현재는 9,999관으로 미완인 종을 통일되는 날 비둘기 날개를 붙여 완성한다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비둘기 날개 부분은 종 앞 안내판에 보관되어 있다.
댐 일대에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타종 체험도 가능한 세계평화의종
댐 주변으로 산이 에워싸 단풍놀이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장쾌한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댐 상부를 비롯해 일대에 산책로가 많다. 여유롭게 거닐며 짙어가는 가을을 가슴 깊이 음미해보자.
가을 단풍 명소로도 손색없다
여행정보
비수구미 마을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비수구미길 470
문의 : 화천군 관광안내소 033-440-2575
이용시간 : 상시
요금 : 무료입장, 선박 이용 시 요금 발생
평화의 댐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481-18
문의 : 평화의댐 물문화관 033-480-1528
이용시간 : 상시
요금 : 무료입장
글·사진 : 김수진(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3년 10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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