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협력자이신 성령께서는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어 공동체의 발전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은사를 받고 어떻게 활동할지는 성령만이 아십니다.
또 성령의 은사를 받아 활동하는 ‘그’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거나
선배, 후배일 수 있고, 내 가족이거나 혹은 ‘나’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듣든, 또는 반항하든 그들 안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
(에제 2,5참조)이라는 1독서 말씀처럼, 예언의 은사는 모두의 구원을 위해
누군가에게 반드시 주어지고 그들을 통해 말씀이 끝없이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는 말씀과 성령의 활동에 대한
‘마음과 귀의 열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마음과 귀의 열림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고를 따져, 나와 공통된 것이 있으면 잘 해주고,
없으면 무시하는 행동,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분하고 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 내가 어릴 때부터 너를 봐왔고 좀 아는데,
네가 아무리 뛰어나도 나에게는 코흘리개 어린이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무시하는 것 등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상호관계와 발전을 저해합니다. 또 신앙적으로는
성령의 활동과 말씀의 선포를 방해하기에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르6,4)고 하신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예수를 좀 안다.’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당신을 무시하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향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하느님의 축복과 기적까지 방해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성장과 변화를 주도하시고 구원의 말씀을 계속 선포하십니다.
주님 말씀이 내 귀에 들렸을 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보고 고정관념을 앞세우면
구원에서 멀어질 것이고,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를 통해 전해진 주님 말씀에
마음과 귀를 열면 축복과 기적이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여러 방법과 많은 사람을 통해 말씀을 전하시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고, 주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
은총과 축복 안에 살아가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
글 : 최재현 (베드로) 신부 – 부산교구
서로의 귀한 재능
한적한 동네를 자동차로 지나다 보면 마을 입구에 “축 000 사법고시 합격”
“000 장관내정 축하” 등의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마을이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 축하한다는 뜻과 함께
이 정도의 인물을 배출할 정도로
우리 마을이 대단하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정반대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랍니다.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마르 6,2)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이 분명 위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을에서 위대한 인물이 났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축하라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마르 6,3) 하며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요즘 말로 “네까짓 게 무슨?”
또는 “개천에서 용 나냐?”라는 말로 자신들의 열등감을 드러냅니다.
열등감은 남과 비교하여 스스로 못하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사람들은 나이, 옷차림, 외모, 지위, 재산 등 이런 것들을 가치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열등감에 빠지며,
역으로 자기 자존심만 강해지게 됩니다. “내가 왜 너에게 굽혀야 해”
“너 주제에 뭘.” 등의 생각은 자신의 자존심이 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첫째, 열등한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연민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열등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사랑을 차단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일수록 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스런 존재로 창조하셨고,
나만의 독특하고 귀한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잘하는 것도 있고, 못 하는 것도 있으며,
이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아가도록 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서로에게 귀한 재능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나에게 복음을 받아들일 힘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글 : 이정근 (요한) 신부 – 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