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 : 빌립보서 1:21-30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오늘 본문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제가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25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27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28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30 여러분은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지금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이해하기 쉽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관심이 없어요. 자신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안에 사시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 바울의 행복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것이 된 자들의 행복이에요.
여러분도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지금 바울과 동일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계실 거예요. 아닙니까? 물론 저와 여러분이 아직 육신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쁨과 행복보다는 세상 근심과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에요. 대단하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같은데, 우리 주님은 그런 것까지도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되는 것으로 바꾸어 주신단 말입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영,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롬 8장)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대해서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 존재로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살아있는 존재,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산 존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피조물들을 한 단어로 ‘아들’이라고 해요. 아들.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그 아들들이에요. 이렇게 신분 자체가 바뀌었단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나를 살펴보고 분석해 봐도 그런 존재가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시각은 그렇지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이미 묵시 안에 우리가 완료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 그게 세상보다 더 먼저란 말이에요.
이렇게 신분 자체가 바뀌었는데, 어떻게 바뀌었느냐?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어요. 쉽게 말하면 족보가 바뀌었어요. 그것을 가리켜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아담에서 하나님과 같은 영적 존재가 된 그 언약의 성취, 우리가 있기도 전에 있었던 그 하나님 언약의 성취, 그 현실을 지금 사도가 선포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성경 말씀이 옳을까요, 아니면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게 옳을까요? 당연히 성경이 옳죠.
이렇게 성경 말씀으로 규정된 내가 따로 있어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하신 그 언약의 성취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확정되었음을 사도가 지금 교회에 증언하고 있단 말이에요. 끝났다! 완료되었다! 다 이루었다! 이보다 더 놀랍고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모르지만, 세상에는 감추어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열린 다른 현실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더러 기뻐하라는 건 그것을 보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로또 열 장 당첨되는 것보다도 더 기쁜 일이죠. 그건 나중에 다 없어질 것이지만, 이 영원한 현실은 말 그대로 영원한 현실이에요. 그 영원한 현실에 대해서 눈을 열어서 보게 해주신단 말이에요. 누가? 성령,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래서 성도는 더 이상 육신에 매여 사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죄와도 상관이 없는 자가 되었어요. 어떻게? 이미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므로 해서 죄가 더 이상 저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어요. 죽어버린 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 문제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셨기 때문에 성도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게 로마서 6장 전체 내용입니다.
(롬 6장)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교회에 처음 나오면 세례를 주잖아요. 그 세례는 ‘나는 이 교회에 등록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을 겁니다’ 하는 그런 통과 의례가 아니고, 방금 읽은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확증시켜 주는 세례예요.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분명하죠?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여길지어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시각. 그렇게 여겨주심. 헬라어로 ‘로기조마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하신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음 안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여겨주심을 우리가 믿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현실이 곧 우리의 현실이라는 뜻이에요. 놀랍죠? 단순히 감정적으로, 또는 우리의 머리 지식으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현실, 확정된 그 현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게 새 생명으로 사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예금 통장에 한 백억 정도 들어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마치 돈 한 푼 없는 거지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 중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이건 돈 백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단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죽어도 안 죽어요.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확정하신 이 진짜 현실을 우리의 현실로 살게 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우리 안에 계신 그분. 우리와 영원을 함께하시는 그분.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 돼요. 그 진짜 현실에 우리의 눈이 열리는 거예요. 성도는 그게 믿어진단 말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 원어 파자하고 연구해도 육에서 영이 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안 돼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의 영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므로 해서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성취된 것을 우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믿음 안’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것을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 그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기에 너희 안에 계신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반드시 살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방금 읽은 로마서 6장과 같은 말씀은 우리가 수시로 반복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해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성도는 죽음까지도 기꺼이 환영하게 됩니다. 왜?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아담이라는 육신을 벗는 그날부터가 진짜 사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성도는 이 세상 속에서도 세상과 분리된 채 성령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층이 다른 겁니다.
(요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의 ‘거처’가 뭡니까? 우리와 예수님이 함께 거하는 성령 안을 거처라고 해요. 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단 말이에요. 아버지께로 가셔야 성령이 오시잖아요. 이 성령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보내신 성령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지금 여기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도라면 이것을 날마다 체감합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렇게 주님과 함께할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마저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바울처럼 어서 이 육신을 벗고 주님과 함께하는 그날을 소원하게 된단 말입니다. 여기 아직 젊은 분도 있고 해서 이런 말을 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이 세상 사는 거 이거 별거 아니거든요. 이 세상이 정말 지옥임을 성도는 날마다 체감하면서 살아요. 보이는 것과 들리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어떤 지옥을 살고 있는지를 날마다 체감하고 있어요. 온갖 거짓이 난무하고 내가 남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정글의 법칙.
그래서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들도 피조물의 썩어짐의 허무한 데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게 뭡니까? 죽음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완성되는 그날이면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사망이 없단 말이에요. 썩어짐의 종노릇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세상 어디에 가서 들을 수 있습니까? 서울대에 입학하면 듣나요? 미국 하버드에서 들을 수 있어요? 하버드 나온 도올 김용옥은 맨날 헛소리나 하는데.
그거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라는 자리, 예수가 나누어지고 복음이 나누어지는 그 진리의 터전,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시는 그 자리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는 거예요. 세상 어디에 가도 복음의 진리를 들을 곳이 없어서 이 자리를 사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성도인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영을 받았다면 반드시 이 자리를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바울처럼 어서 빨리 이 육신을 벗고 주님과 함께할 그날을 소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그 영원한 현실을 이 땅에서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이것보다 더 분명한 현실은 없어요.
(요 14장)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가 예수님과 날마다 함께하고 심지어 예수를 본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봅니까? 말씀 안에서. 말씀과의 교제.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린도전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잖아요. 그럼, 주를 사랑한다는 게 뭐예요? 말씀 사랑이란 말이에요. 태초부터 계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잖아요. 그리고 아버지 약속을 다 이루시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면 이 성경 말씀이 그냥 문자로만 보이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그렇게 우리와 늘 함께 사귐이 있게 됩니다. 늘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 말씀이란 말이에요. 이렇게 예수님이 보내주신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으로 인해서 성도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것을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숙이셨다고 해요.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런데 이것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그 영혼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는 뜻입니다. 떠나가셨다가 아니고 교회에 그 영을 넘겨주셨다. 그래서 하나님만 아시는 것들을 이제 우리도 알게 된 거예요. 방금 읽은 요한복음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하나를 더 보태신 거예요. 사위일체가 되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아시는 그것을 우리도 알게 되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시잖아요. 저들에게는 감추어진 것들을 너희에게는 알게 하였다. 그런 거란 말에요. 그래서 진리의 영, 하나님의 성령은 세상이 받을 수 없어요. 정확하게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그 사람들만 진리의 영, 성령이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 성령에 찾아진바 된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만물은 성도 교회에 해석되기 위해서 존재할 따름이에요. 세상은 세상 그 자체를 몰라요. 그런데 성도는 세상과 이 세상 역사를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성도에게 해석당하기 위해서 이 세상과 역사가 존재하는 거예요. 참 놀랍죠? 그러니까 아침마다 인터넷이나 신문에 올라오는 뉴스 하나까지도 성도에게는 다르게 해석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 만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서 속히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어요. 자기들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아들들. 그렇게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그 영광의 교회가 어서 빨리 완성되기를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비밀한 것들, 세상에는 감추어져 있는 이 비밀에 관해서 알고 있는 자들이 바로 여러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자체가 이 세상의 위기라고 하지요. 성도가 이 세상에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세상으로서는 위기예요. 왜? 세상의 종말을 선포하는 자들이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이 세상은 반드시 심판당하고 멸망할 세상이고, 진짜 영원한 세계가 따로 있음을 성도는 알거든요. 그리고 성도가 그것을 선포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입장에서는 위기예요.
그러니까 세상 일, 육신에 속한 일로 매일 그렇게 흔들리고 징징대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가볍게 살 수 있는 자들이에요.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으로 인해서 우리는 가볍게 살고 갈 수 있어요.
그분이 우리를 띠 띠어서 데리고 가시는 그 모든 과정이 뭔가 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을 사셨던 모든 길이에요. 그 코스를 똑같이 주님이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존 번연은 그것을 ‘천로역정’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도는 본문 27절에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이게 오늘 강론의 핵심입니다. 아마 예전에 세상 교회에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거예요. 그리스도인답게 세상에서 모범이 되게 사는 것,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교회 생활에 충실하고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됩시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됩시다. 이런 말 많이 들었잖아요. 세상 교회에서 하는 일이 전부 그런 거니까.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한 말이 과연 그런 뜻일까요?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뭐예요? 에반젤리온. 기쁜 소식. 그 기쁘고 복된 소식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쁜 소식 기쁜 소식 하는데, 정말 그 복음의 세계를 안다면 가장 먼저 내가 내 구원을 위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음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기쁜 소식이에요. 주님이 다 이루신 그것에 내가 보탤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오직 은혜 이게 얼마나 기뻐요?
다른 종교인들 생각해 보세요. 고생 정말 많이 합니다. 우리는 그들 발꿈치도 못 따라가요. 중세 수도사들은 무릎이 까지도록 계단을 기어 올라가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종무 일과표 대로 살고 금욕, 고행, 온갖 수행을 다 하고 했지만,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맨날 기어 올라가도 미끄러지니까 그래서 수도원에서 샴페인 만들어 먹고 했어요. 하루 하루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데 진짜 기쁜 소식이 뭔가 하면 루터가 그랬잖아요. 로마서를 읽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한 구절에 그가 고꾸라진 거예요. ‘아, 믿음이구나! 구원은 믿음 안에 있구나.’ 내가 무얼 해서 쟁취할 수 있는 구원이 아님을 그때 알아버린 거예요. 그것이 기쁜 소식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에서 다 성취되었음을 아는 게 기쁜 소식이에요.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은혜로 주어진 구원이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안식이라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6일간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하잖아요. 그 안식이에요.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게 다 이루어진 상태가 안식이거든요.
그럼, 우리의 안식은 뭡니까? 그분의 다 이루심을 믿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식에 참여 된 자,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이 성령에 의해서 자신에게도 적용되었음을 아는 자. 그렇게 성령이 하시는 일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 그분이 다 이루신 것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시는 일이에요. 그 여겨주심,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우리 안에 거저 적용시켜 주시고 우리도 그 안식에 참여되었다는 것, 쉽게 말해서 주님의 그 일이 우리의 일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하나님의 여겨주심을 나의 현실로 살고 있는 자들이 바로 히브리서에 나오는 그 안식에 참여된 자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 된 자는 자기 일을 쉰다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그분의 다 이루심에 내가 더 이상 보탤 게 없구나.’ 그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사도바울이잖아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단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스데반이 죽는 현장에도 증인으로 섰고 대제사장의 위임을 받아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니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단 말이에요. 그 만났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모든 율법을 지킨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하나님을 핍박하는 거였단 말입니다. 바울에겐 쉼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안식이 뭔지 몰랐던 겁니다.
(히 4장)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이거예요. 이게 가장 기쁜 소식이에요.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에, 다 이루심에 거저 참여시켜 주시는 것.
여기서 말하는 자기 일이 뭐예요? 주님이 다 이루심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구원의 길을 스스로 찾아보려는 모든 율법 행위, 종교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게 구원을 자기 것으로 챙겨 가지겠다는 욕심을 정욕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믿음 없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서 더 큰 상급을 받을까? 이게 오늘날 대한 예수교잖아요. 그게 탐심, 정욕, 자기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를 잘 믿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새벽기도입니다. 철야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주일성수, 십일조 등. 하나님께 잘 보여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욕심. 이게 하나님과 거래하는 거예요. 주는 만큼 받아낸다. 이런 종교 기술들. 이런 것을 세상 교회에서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고 가르친다니까요. 정반대죠. 그러니까 열심히 교회 다니고, 목사가 쉬는 날 나도 같이 쉬고 나머지 6일은 열심히 섬기는데 거기에 뭐가 없습니까? 쉼이 없어요.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되지 못했단 말이에요. 그거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은 먼저 그분을 아는 거예요.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거예요. 이 땅을 다녀가신, 피를 남기고 가신 그 하나님을 아는 것. 여기서 안다는 말은 ‘기노스코’, 히브리어 ‘야다’. 한 마디로 그분과 관계를 가지는 것. 이게 아는 거예요.
그 다 이루심을 우리가 누리고 즐거워하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것. 이게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된 성도가 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말로 은혜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리잖아요. 은혜는 먼저 은혜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만 은혜가 된다고. 진짜 죄인의 괴수에게 은혜가 은혜 된다는 말입니다. 은혜로 주신 것들이 은혜로 남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은혜는 끝까지 갚을 수 없어야 은혜로 남아요. 은혜는 그렇게 영원한 은혜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그리스도인만 가능하다는 게 사도의 증언이에요.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입니다. 보편적 인간들에게는 이게 불가능해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거든요. 이게 모두 세상 사람들 인생살이잖아요.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 성취를 위해서 평생을 허비하는 죄인들이 나 아닌 타자를 위해서 살게 된다? 나에게 주가 계심을 안다? 그리고 주가 되신 그분에게 나 자신을 맡긴다? 나의 존재 전체를 그분께 의탁한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게 선악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된 인간의 한계예요.
‘나 자신보다도 주를 더 사랑하고 그분의 존재만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가 나의 시작이고 완성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위해서 죽어도 좋다.’.. 이건 세상 사람이 보기에 미친 거죠. 정신 이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어요. 바울이 오죽했으면 그러잖아요. 내가 미쳐도 주를 위해서 미쳤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해서 온전하다고. 이렇게 미친놈 소리 안 들으면 성도 아닙니다. 요즘 교인들 보면 신앙이 이순신 신앙이에요.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 여러분이 진짜 예수를 알고 이 땅을 다녀가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다 이루심을 안다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미쳐야 해요. 가족에게, 내 남편에게, 내 아내에게. 이 엄청난 현실을 내가 알아버렸는데 입을 꾹 닫고 있다?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런데 참 놀랍게도 그런 미친 자들, 정상이 아닌 자들이 이 세상에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언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고 성령을 보내시니까 그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서 이런 희한한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단 말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이 다 도망갔어요. 십자가 아래에 여자들 몇 명만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비겁한 제자들이 어느 날 성령을 받고 난 후부터 외치기 시작한 거예요. 너희가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베드로 설교가 별거 아니에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어요. 이런 놀라운 현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다른 말로 이 땅에 교회가 발생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복음, 기쁜 소식이라는 게 이 세상에 유포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엡 2장)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게 복음이에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우리가 죽었고, 또 그와 함께 살아났다. 또 하늘에 함께 앉혀졌다. 다 완료되었단 말이에요. 이게 그리스도의 복음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은 이미 이루어진 그것들을 내가 믿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별세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이 세상에 갇히지 않고 날마다 떠나는 이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미친 소리로 멸망의 증거가 되지만, 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성도인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되는 복음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이 복음에 의해서 정확하게 둘로 갈라집니다. 평소에는 똑같은 세상인데, 복음이 선포되므로 해서 정확하게 둘로 갈라져요. 복음으로 즐거워하고 복음으로 충분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대적하고 복음에 이를 가는 자가 생겨나요. 참 놀랍죠? 여기서 복음을 대적한다는 말은 단순히 반대하는 것만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에다 세상 것들, 사람의 것들을 섞어서 변질시키는 것까지 입니다.
그래서 이게 참 무서운 겁니다. 세상 종교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세상 신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 그 다 이루심을 덮고 파묻어버리려는 작업을 이천 년 동안 세상 종교인들이 해온 거예요. 교회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탄의 방해 공작이 있게 됩니다. 이미 이천 년 전부터 그랬어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돌아서면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사도바울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사도직을 모함하고... 이번 서울 모임에서 고린도후서 10장을 할 텐데, 고린도후서 10장에서 12장까지가 전부 바울의 자기변호예요. 사도바울을 모함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복음을 전하는 그 메신저를 공격하므로 해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전부 헛것이 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 사단의 계략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 공작이 있게 되는데, 복음 전도자를 공격하거나 또 교회를 깨트리려는, 그런 귀신들의 처소를 만들려는 공작, 그런 사단의 공격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가리켜 전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전투하는 교회예요. 하나님은 그 교회에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그 전투 장비들을 입혀주셨어요. 그렇게 치열한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 되는 것은 그런 전투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은 성도들의 피를 타고 지금까지 전해져온 복음이에요. 아주 은밀하게 성도들의 피를 타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고 합니다. 그런 성도의 죽음 자체가 바로 복음의 능력이고 완성인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들이 이 세상 속에서 진리의 전투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것까지가 복음의 능력이에요. 복음의 완성입니다.
본문 29절입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그냥 단순히 갇힌 게 아니라, 복음을 위한 싸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싸움이 너희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하고, 그것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골 1장)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가 겪으실 고난이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어떤 하나님의 희생과 섬김인지를 배우게 되는 과정으로서 고난이에요.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그 영광에 참여된다는 것은 그의 고난까지도 참여되는 그런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별로 받고 싶지 않은 표정 같은데...
저와 여러분은 이미 하늘로 옮겨져서 아담의 호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호적으로 바뀌었고 주민등록이 바뀐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늘 시민으로 합당하게 살아갈 것을 사도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시민권이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그 고난, 그 삶, 머리 둘 곳도 없었던 그 삶에도 같이 참여될 것이고, 그것이 너희의 특권이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그런 특권 받기 싫지만, 성경은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요 다른 말로 복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복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우리의 근본, 우리의 뿌리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 깊이 뿌리 내려서 잘살아보려고 해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따라다니시면서 우리가 뿌리내린 것들의 밑둥치부터 잘라낸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의 눈이 위로 들려요. 아, 이곳은 우리가 살 곳이 아니구나. 우리 본향은 하늘에 있구나.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우리 아버지 계신 그 집으로 가자.
오늘 본문에 보면 각주가 있지요. 27절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에 각주가 있는데, 밑에 보면 ‘시민 노릇하라’입니다. 하늘의 시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고난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이 세상과 구별되어서, 세상과 친하고 세상과 함께 섞여서 살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 정신으로부터 침해받고 또 세상에 빼앗기며 살아가는 자들이 하늘 시민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이삭이 우물만 파면 빼앗긴다고 하잖아요. 바로 그런 거예요. 그렇게 세상에 빼앗기면서 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그런 나그네와 이방인으로서 살게 되는 아주 소수의 거룩한 무리를 성경이 성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그런 교회로 살게 되는 것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삶은 여러분이 그렇게 살겠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살기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안에 사시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시민권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세상에 있어도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에 대해 못 박힌자들인 것입니다 (갈6: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는 27절 말씀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게 됩니다. 하나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안에서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교회 이름으로 하나 되는 게 아니고, 목사 이름으로 되는 게 아니고 정치사상이나 정치 신념으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어제도 서울에서는 야단이 났다고 하던데, 전광훈이 나와서 사람들 선동하고 온 길거리에 이재명 타도를 외치고... 아니 목사가 어떻게 복음을 안 전하고 그런 정치 선동을 합니까? 오늘날 대한 예수교가 심각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렸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성도는 이미 하나입니다 .복음 안에서만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입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악한세대에 세상 종교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순수한 십자가 복음만 끝까지 지키는 그런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부터 17절까지를 제가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후 2장)(새번역)
14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5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16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7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때가 악합니다. 세월이 악해요. 세상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일, 말씀을 팔아먹는 일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진실된 복음, 순수한 복음을 들을 곳이 거의 없어요. 지금이 종말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깨어있습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복음의 능력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천국 시민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빌립보서를 함께 읽고 오늘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빌 3장)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성도의 행복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복음을 사랑하고 복음에 빚을 진 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주님의 성도들에게 주의 성령이 함께하시며 그렇게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외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게 빼앗기고 핍박을 당하는 그 자리에 주께서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세상 돌팔매에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