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분수와 도리를 지키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본문) 그대로 받아먹을(지킬) 때도 있고, 때로는 사람들을 통해 요리되어 나온 것을 받아먹을(지킬) 때도 있습니다. 본문 그대로의 말씀을 받아먹는(지켜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체적으로 소화해 먹을 수 있는 대단한 수준의 먹성가(신앙인)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요리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만 간신히 먹을 수 있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구매해(보고 듣고 읽어) 손수 요리해 먹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단순히 보고 듣고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읽은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키는 것입니다.
먹을(지키고 행할) 식성(마음)을 갖고 성경말씀을 보고 듣고 읽지 않고, 단순히 지식적으로 알고 기억해 남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만 성경말씀을 보고 듣고 읽는 것은 모두다 성경말씀이라는 음식을 구경만 하는 것이 되어 그 사람에게는 성경말씀이 지닌 영양분(영향력)을 일체 공급받지 못해 참된 신앙생활은 물론이거니와 믿음조차도 죽은 자의 콧김 같이 나약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을 영화롭게(영광스럽게) 하지 못하여 세상의 그 어떤 죄악도 이기지 못하고 패배합니다. 이런 패배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이 시대의 신학자들과 그들로부터 태어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과 각종 은사자들과 교인들입니다.
인간 육신의 두뇌와 심장은 육적인 양식, 곧 음식물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일하고 성장하지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인 심령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영양분으로만 일하고 성장합니다. 인간 육신의 두뇌는 온 몸으로부터 취한 정보들을 저장하고 있지만. 사람의 심령은 그 저장되는 정보들을 관리해 운영(연산)하여 나온 결과를 어떻게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자 되는 사람의 심령은 다양한 방향에서 수집한 하나님의 정보(식자재)들을 자체적으로 조리해 먹은 영양으로 생존해, 육신의 두뇌에 저장된 정보들을 관리하고 운영하고 연산하여 명령합니다.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조리하는 요리사이며 주방입니다. 영계(靈界)에 속한 존재들 중 최초로 하나님의 말씀을 요리해 자신이 먹기도 하고 또 남들에게 먹인 요리사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에덴동산의 들짐승 뱀(사단)과 하와였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심령이 먹어야 할 식자재의 원료인 하나님의 본 말씀에다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만든 얌념을 첨가해 자신도 먹고 남에게도 먹였습니다. 사단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본 말씀에다 자신이 개발한 반역의 독(양념)을 집어 넣어 만든 음식을 사람들에게 먹였고, 여자인 하와는 하나님의 본 말씀을 자신의 생각(양념)으로 조리해 자신도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 3:1)라고 말한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본 말씀인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세기 2:16)라는 말씀에다 사단의 생각(양념)을 첨가시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세기 3:1)로 요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리를(말을) 먹은(들은)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는 하나님의 본 말씀에다가 자신의 생각(양념)을 첨가시켜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세기 3:2~3)고 요리해 내 놓았습니다.
하와가 요리해 내 놓은 음식(하나님의 말씀) 중 어떤 것은 자신의 심령에서 개발된 양념이 첨가되어 하나님의 본 말씀을 잘 먹을(지킬) 수 있도록 맛깔나게 하였으나, 어떤 것은 하나님의 본 말씀의 맛(뜻)을 떨어뜨려 못먹도록 하게 합니다. 하와가 선악과에 대해 "만지지도 말라."는 말(양념)을 첨가시킨 것은,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본 말씀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여 그 말씀을 먹(지키)도록 하는 도우미가 되게 하지만, "죽을까 하노라."는 말(양념)은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본 말씀을 신뢰해 지키고자 하는 의욕(맛)을 떨어뜨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지킬) 수 없도록 해코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듣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무조건 굴복해 순종케 하는 말씀이 있고, 또 하나는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해 버릴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무조건적인 굴종을 요구하는 말씀은 주로 흙에 속한 우주만물을 만들 때 사용하셨으나, 영을 지닌 천사들과 또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어 자신의 말씀을 선택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영계(靈界)에 속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갖고 하나님을 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자유하시기 때문에 저들 또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자신을 존중하여야지,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붙이들의 일방적인 존중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요리하거나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심령(능력)을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저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하나님의 본 말씀을 더욱 맛깔스럽게 잘 요리해 먹게도 하였고, 더러는 하나님의 본 말씀을 미워해 독성을 섞어 못 먹게 하였습니다.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들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양념해 내 놓은 먹거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모든 말(독극물)은 하나님이 엄존해 계신 실체(말씀)에다 자신들의 사악한 독(뜻)을 섞어 만든 요리이며, 자기 이외의 남들을 노예 취급하는 김일성 일가들의 악행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19) 하신 예수님의 행동에다가 자신들의 악독(뜻)을 첨가(양념)해 펼친 행동(요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대 신앙인들의 선생 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대부분이 사단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을(지킬) 수 없도록 추악하게 요리해 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저들이 만들어 낸 요리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지키)게끔 하지 않고 사단처럼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을 수 없게 하거나, 또는 먹게 하여도 하와처럼 하나님의 함량(뜻)에 미달된 음식물을 먹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어야만(지켜야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빛과 소금의 성분(힘)이 발생될 뿐, 사단처럼 예수님의 본 말씀을 지키고 실행치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구원론만 개발해 가르친 것으로는 모두다 유병언 같고 김일성 일가들 같은 자들만 생산해 냅니다.
하나님(예수님)의 본 말씀을 자신도 먹고 남들도 먹을(지킬)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저들의 본분인데, 저들이 교회 강단에서 내 놓은 요리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을(지킬) 수 있도록 맛깔나게 요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본 말씀을 자신들도 먹지 않고 남들도 먹지 못하도록 독성물을 첨가해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해 그런 말을 하느냐고요? 저들이 만든 요리를 먹은 교인들 중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당당히 이긴 자들이 한 둘이라도 있었으면 하나님의 본 말씀을 먹였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을 이기지는 못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교인 행세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 뿐이라면, 저들이 하나님의 본 말씀을 전혀 먹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조리하는 요리사이기도 하고 주방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심령에서 생산되는 첨가물은 오직 하나님의 본 말씀을 맛깔스럽게 하여 먹게(믿게)끔 하는 촉진제이어야지,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의 본 말씀 대신 자신들의 그릇된 신앙관(구원론, 구원관)과 사상과 야욕만 먹이게 되면, 그는 그 어떠한 유명 설교자라도 이단자에 불과합니다. 하와가 "만지지도 말라."는 양념을 첨가한 것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맛깔스럽게 하여 먹도록(지키도록) 하게 하는 조미료였지만, "죽을까 하노라."는 양념은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본 말씀의 뜻을 심히 부패케 하여 먹을 수(지킬 수) 없도록 하게 한 불량 첨가제였습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맛깔스럽게 하여 먹게(지키게)끔 하는 양념이자 조미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하여야 할 신학이 자신의 본분에서 떠나 독자적인 신앙의 대상이(식자재가) 되려 합니다. 다시 말해, 신학의 모태인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의 본 말씀을 다만 맛깔스럽게 만들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식성에 맞도록 요리하는 요리사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신학이 신앙의 주된 몸통이 되고 성결말씀은 다만 신학이라는 식자재를 맛깔스럽게 만드는 양념 정도로 취급합니다.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교만무례하고 기고만장한 신학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분수와 도리를 지키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