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병아리를 아시나요?
엊그제 레드님의 글에서 병아리 얘기를 했었다
봄이면 초등학교 앞에 와서 병아리를 팔았다
대부분은 부화장에서 뒷구멍으로 나온 병아리들
감별을 마친 산란계의 수평아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보통은 산채로 양돈장으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드럼통으로 들어가 삶아지거나 해서
돼지밥 신세가 될 병아리들이었다
물론 값비싼 백신접종도 하지않고 팔았다
그러다 보니 며칠 안 지나서 죽기가 일쑤였고
그러면 또 아이들이 서운해 하고 그랬다
우리 아들도 그랬으니까
오늘은 왕병아리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나도 처음에 왕병아리란 소리를 듣고 놀랬었다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하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말 그대로 커다란 병아리다
갓 부화된 병아리를 한 열흘정도 키운 후에
박스에 담아서 등짐으로 지고 다니며 팔았다
주로 전라도나 충청도의 섬지방에서 팔렸다
그러면 농가나 어가에서 왕병아리를 사서
그냥 마당에 풀어놓거나 그런 식으로 방사했다
모이를 주면 그걸 먹으려고 모여들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한데서 풀도 뜯어먹고
벌레도 잡아먹고 그렇게 자라는게 보통이었다
단백질원이 부족했던 그 시기에 왕병아리를 키워서
생일날 또는 사위가 오는 날 잡아서 대접도 하고
병아리가 어느 정도 크면 알도 낳았다
왜냐하면 왕병아리의 어미닭이 겸용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들여온 갈색의 로드아일랜드 레드나
또는 새까만 점이 박힌 회색의 플리머스록이 어미닭이었다
플리머스록은 시골에 가면 깨닭이라고 불렀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레드 종 수탉들
미국 플리머스록 종 암탉.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깨닭이라고 불렀다
거기다가 살이 잘 찌는 육용계인 화이트록의 수탉을 교배해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병아리를 생산해 냈다
주로 육용종계를 키우는 부화장들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면 시골에서는 이걸 토종닭이라고 믿고 사서 키웠다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광고하는 토종닭 4품종 8계통의 닭들 : 로드아일랜드 레드를 많이 닮았다
왕병아리는 주로 봄, 여름이 성수기였다
한 철 그렇게 왕병아리를 생산해서 섬지방에 팔았다
꼭 섬이 아니더라도 정육점이 멀거나 그런 시골에서는
왕병아리 수요가 많았다
그래서 왕병아리 부화장들이 목포를 비롯해
섬으로 연결되는 지방 도시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부화장이나 종계장들을 돌아 다니면서
유색계 겸용종 종계 병아리와 백색 육용종 종계 병아리를
팔러 다니는 가금육종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회사에 입사했던게 1977년 12월이었다
졸업을 몇 달 앞두었던 시점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그 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주 업무는 백색 육종종계 병아리를 판매하는 업무였는데
1978년 6월부터 외국 종계의 수입이 개방됐다
그 때까지는 국산 종계를 장려하느라 수입이 금지됐었다
거의 독점적으로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독무대였다
각설하고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에는 왕병아리의 전성시대였다
우리나라가 잘 살아진 게 오랜 옛날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역 지하차도에 줄지어 앉아 한약을 팔던 조선족들
그게 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불과 반세기만에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다
지금은 삼성의 갤럭시폰이 세계를 휩쓸고
현대의 첨단 전기차가 미국을 누빈다
세계의 프리미엄 TV시장은 LG의 독무대다
냉장고, 세탁기, 기타 가전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과 48년 전에는 왕병아리가 판을 쳤다
마당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먹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반드시 도계장에서 도계를 해야한다
법으로 그렇게 하도록 강제한다
근교의 토종닭 어쩌구 하는 식당들
사실은 토종닭이 아니다. 토종닭은 멸종됐다고 본다
위에서 얘기한 겸용종 닭이거나 아니면 교잡종이다
겉으로 보면 갈색을 하고 있어서 토종닭 모습이지만
내용물은 미국의 겸용종 닭이라는 말이다
현업에 있을 때 동업자 모임이 있었다
열 명 남짓한 업계의 중진들이 모인 모임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장이었다
그 양반이 토종닭의 정의를 정리했다고 자랑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5~6세대를 거치면 토종닭이라고...
토종닭 업계와 공무원들 간의 일종의 야합이라고 본다
농촌진흥청에서 홍보하는 토종닭들은 내가 보기에는
로드아일랜드 레드의 후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조상뻘 되는 닭을 나의 스승님이신 교수님께서
미국으로부터 종란형태로 들여오신 걸로 알고있다
가히 우리나라 토종닭의 효시이신 셈이다
그 종자를 가지고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육종을 한 것이다
지금도 그 회사는 토종닭의 원조로 행세하고 있다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니까
닭의 한 세대는 무척 짧다.
대략 70주령 정도면 한 세대가 끝난다
그래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가 무척 쉽고 또 어렵다
육계농가들이 과잉생산으로 몸살을 앓고
뻑하면 도산하고 했던 이유가 바로 그 것이다
종계 한 마리가 최소 100마리 이상의 병아리를 생산한다
돼지는 많으면 한 배에 15마리 정도씩 3번 정도 낳는다
소는 한 마리 낳기도 바쁘다
지금은 하림과 같은 대기업들이 계열화를 이뤘다
종자, 사료, 약품, 도계, 유통까지 일관작업을 한다
자체 브랜드를 붙여서 브랜드육을 판다
내가 개발에 관여했던 마니커도 그 중 하나다
따라서 예전과 같은 가격폭락과 떼돈벌기는 없다
대신 대기업과 계약을 맺어 계약사육을 한다
병아리, 사료, 약품 등을 대기업이 제공하고
계약사육자는 사육만 담당하고 사육비를 받는다
과거의 닭고기유통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물론 왕병아리도 극소수만 남고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요즘 누가 사위 온다고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
직접 백숙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겠는가?
요즘은 양념치킨이나 프라이드 치킨이 대세다
대충 다 도계된 포장육이나 치킨요리를 사다 먹는다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다
옛날처럼 동네에서 추렴해서 잡아먹는 일은 없다
모두 도축장에서 잡은 고기를 사다 먹는다
엊그제 읽었던 레드님의 병아리 얘기
그 얘기에 이어 왕병아리가 생각났다
옛날 얘기를 자꾸하면 늙는 징조라는데
내가 많이 늙었나보다 ㅜㅜ
왕병아리 팔러 다녔던 그 분들은 지금 다 어디 계실까?
등짐으로 박스에 병아리를 담아 지고 다니며
온 지방을 누비던 그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정이 넘치고 낭만이 있던 시절
가끔씩은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유익하고 재미있으시다니
글 쓰는 보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 친구도 한때 토종닭 찾아 전국을 누볐는데
그러다 말데요.
현대자동차 부사장까지 하던 사람인데
그걸 왜 찾아다녔던지 모르겠던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혹시나 남아있나 하셨겠지요
토종닭은 멸종하고 없습니다
그걸로 박사학위 딴 선배가 있습니다
대학은 다르지만 석사부터 박사까지
저하고 같은 대학에서 공부했지요
결국 포기했습니다
지금의 토종닭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미국 갈색계의 후손입니다
몇 세대만 지나면 토종닭으로 둔갑하는
야합의 결과물입니다
그 장본인이 저와 같은 모임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해서 잘 압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이런 이야기 너무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