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가 아주 살벌하지 않습니까요..? 과연 무슨일이 있었길래 두 관중의 말다툼이 결국엔 살인을 불렀을까요? 자, 그럼 내막을 들어보시죠.
70년 멕시코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엘살바도르는 멍청한 심판 때문에 프리킥을 도둑맞는 황당함을 당한다. 지역예선에서 온두라스와 2천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축구전쟁까지 치른 끝에 가까스로 본선무대를 밟은 엘살바도르는 조 예선 2차전에서 홈팀 멕시코와 맞붙었다. 1차전에서 엘살바도르는 벨기에에 0-3으로 졌고 멕시코는 소련과 0-0으로 비겨 두팀 모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어이없는 사건은 전반 종료직전에 일어났다. 엘살바도르의 공격수 마르티네스가 멕시코 미드필드를 파고 들어가자 멕시코 수비수 곤잘레스가 거친 파울로 마르티네스를 넘어뜨렸고 주심은 당연히 엘살바도르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문제는 이때 일어났다.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쓰러진 마르티네스가 걱정이 되는 듯 그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틈을 타 멕시코 수비수 페레스가 주심의 눈을 피해 공을 냅다 차버린 것. 관중들도 어이없다는 듯 폭소를 터트리는 사이 축구공은 멕시코의 파실라를 거쳐 발디비아에게 연결됐고 발디비아가 엘살바도르의 골문 안으로 차넣었다.
칸딜 주심은 어이없게 골인을 선언했다. 엘살바도르 선수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고 멕시코 관중들조차 야유를 퍼부었지만 주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기가 꺾인 엘살바도르가 후반에 3골을 추가로 내줘 끝내 0-4로 무너지자 다혈질인 엘살바도르 응원단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난동이 일어날 것 같은 기운이 역력했다.
이때 멕시코 응원석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리며 스타디움은 순식간에 정적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양심적인 멕시코인이 "주심이 엉터리다. 우리를 너무 봐준 것 같아"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멕시코 극성팬이 그를 권총으로 사살해 버린 것. 심판의 멍청한 경기운영이 유혈극을 빚어낸 셈이 됐다.
한골 넣었다고 기분 좋아서 '탕!탕!탕!', 말 잘못했다고 '탕!탕!탕!'
중남미인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그야말로 전쟁 아닙니까?
(양심적인 팬들은 집에서 tv나 봐야겠다는 꼬리말이 인상적)
에피소드 2 : '미안하다.비겼다.'
보카주니어스 대 리버플레이트
(참고로 양팀은 전통적인 라이벌로서 아르헨티나 내에서 바르샤와 레알, 맨유와 아스날 정도의 사이라고 보면 됨)
페루 리마의 루리간초 교도소에서 열린 '교도소 코파 아메리카(Prison Copa America)'가 그 실험무대였다.
이 대회에서 죄수들이 죄목별(납치, 강도, 마약복용, 절도 등)로 12개 팀을 구성해 코파 아메리카(남미축구선수권대회) 출전국의 이름을 내걸고 출전했다.
남미 최강자를 가리는 코파 아메리카의 개최국인 페루가 개막을 기념해 마련한 이벤트였다.
모범수 400명이 선수로 선발돼 죄목에 따라 팀을 꾸린 뒤 추첨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코파 아메리카 참가국의 이름을 선택하도록 했다.
관중으로는 역시 죄수 8000명이 총동원됐다. 제아무리 교도소내 친목을 위한 이벤트라지만 각종 흉악범들이 즐비한 죄수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일.
500여명의 무장 교도관과 경찰이 운동장 주변과 교도소 외곽을 삼엄하게 경비한 가운데 대회가 치뤄졌다.
12개 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 결과 납치범팀(아르헨티나)과 강도팀(페루)이 결승에서 맞붙어 1대1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에서 납치범팀이 2-1로 이겨 발재간이 가장 좋은 범죄자 반열에 올랐다.
3-4위전에서는 마약사범팀(콜롬비아)이 절도범팀(에콰도르)을 1대0으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대회 MVP도 뽑혔다. 승부차기의 대접전에서 상대의 킥을 막아낸 납치범팀 GK 롤란드 아스코이씨(27)가 영광을 안았는데, 7년째 복역중인 그는 부상으로 코파 아메리카 한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특별 외출을 받아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편 아르헨티나 진짜 축구대표팀은 경기 결과에 대해 좋은 징조라는 촌평을 내놓기도..
(기타에피소드들)
▽ 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서로 자기네 공사용을 고집하다. 결국 전반은 아르헨티나, 후반은 우루과이제 공을 사용했다고...
▽ 34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 : 체코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패배를 죽음으로 인식 (무솔리니 파시즘 때문)죽기 살기로 경기한 끝에 우승
▽ 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은 우루과이에 2:1로 역전패를 당해 20만 관중 반수가 울면서 스탠드에서 밤을 지새우고 국민들은 집집마다 조기를 게양했으며 전국에서 권총자살자가 줄을 이음
▽ 70년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이 3연속 우승차지
우승축제가 벌어진 브라질에서는 사람들이 광란의 밤을 보내다 44명 사망 1800명 부상
▽ 78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한 아르헨티나는 심판의 편파판정과 텃세등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 부끄러운 우승이었다.
▽ 90이탈리아 월드컵
카메룬의 아프리카 검은 돌풍이 지구촌 강타.
▽ 94미국 월드컵
축구신동 마라도나의 약물복용혐의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압박 축구의 전술을 쓴 나라들의 피해가 속출
▶관중수에 대한 이야기
한 경기 관중 최고 20만명
5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마라카나(Maracana)경기장에서 열린 제4회 월드컵 결승시 브라질-우루과이전으로 총 입장객은 199,589명이라고 한다. 마라카나 경기장의 관중수용능력은 좌석 178,00명 입석 4,2000명으로 합쳐서 22만명이라고 한다.
▽ 한 경기 최소 관중은?
30년 우루과이 대회 3조 페루와 루마니아의 경기에는 1300명이 입장해 역대 최소였다. 이유는 동시에 열린 브라질:유고 경기에 관중이 몰렸기 때문이라는 데...
▶불상사, 폭등, 전쟁...
*폭동..
방글라데시에선 월드컵 중계 도중 방송이 끊어진 데 격분하여 대규모의 군중 이 발전소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임.
▽ 소란 진입한 낙하산부대
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아프리카 지역예선. 카메룬의 야운데에서 진행된 카메룬과 콩고의 경기 중 주심이 카메룬에 페널티킥을 주자 콩고의 GK가 덤벼든 것을 시작으로 난투가 벌어져 수습이 어려워졌다. 카메룬의 아히조(Ahidjo)대통령은 헬리콥터로 낙하산부대를 급파해 진압하게 했다. 콩고 2-1승.
▽ 조명탄 소녀
90년 이탈리아대회 남미지역예선. 브라질의 마라카나 경기장에서 브라질이 1-0으로 이기고 있는 후반24분경 관중 속의 한 소녀가 던진 조명탄이 칠레 GK 로하스(Roberto Rojas)의 뒤쪽에 떨어졌다. 놀란 로하스가 뒤로 넘어지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동요를 일으킨 칠레선수들이 경기장을 떠나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라면서 끝내 경기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FIFA는 칠레의 경기중단책임을 물어 2-0패와 함께 GK 로하스에게는 거짓 부상으로 경기를 망친 혐의로 평생 출전금지조치를 내렸다.
또 브라질 축구협회에는 사태예방의 책임으로 12,000$의 벌금을 부과했다. 조명탄을 던져 경기를 중단케 한 소녀는 브라질의 로즈마리 드 멜로(Rosemary de Mello)였다. 브라질이 칠레의 홈경기에서 1-1로 비긴 뒤 2차전에서 겨우 1-0으로 불안하게 앞선 브라질을 쉽게 본선에 진출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한 그녀는 인기가 폭등해 국내판 `플레이보이' 지에 사진이 소개됐고 TV광고에도 출연했으며, 90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회에는 여행사의 홍보원으로 참관했다.
▽ 아르헨티나-우루과이 국교단절
1회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2-4로 진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이 심판의 판정에 불복, 우루과이 영사관 앞으로 몰려가 폭동을 벌이게 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두 국가는 국교를 끊게 됨.
▽ 월드컵이 전쟁을 불렀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70년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 카리브해 지구예선에서 세 번의 경기를 치렀다. 1차전은 온두라스에서 온두라스가 1-0으로 2차전은 홈팀인 엘살바도르가 3-0으로 이겼다. 1차전에서부터 상승해온 폭력은 2차전에서 마침내 일이 터졌다. 온두라스 응원단이 적지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트럭에 실려 추방당했다. 이에 온두라스 사람들은 자국내에 살고 있는 엘살바도르 교민들에 대한 살인방화를 자행했다.
3차전은 제3국인 멕시코에서 벌어져 엘살바도르가 3-2(2-2에서 연장)로 이겼다. 그로부터 20일 후인 1969년 7월 13일, 엘살바도르의 선전포고로 시작 된 전쟁은 16일 오전, 달 탐험 우주선 아폴로11호 발사를 보기 위해 잠시 휴전했다가 재개됐다. 5일간 계속된 전쟁에서 국토가 8배나 큰 온두라스가 패해, 축구에서도 지고 전쟁에서도 지는 불명예를 당했다. 참고로 8월 5일 전투가 끝날 때까지 두 나라의 전사자는 합쳐서 3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 제도마저 바꿀 수 있다.
인도네시아 카라마탄의 폰테아나 마을은 적도가 지나는 곳이라 적도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표지는 적도의 북쪽 40피트(12m)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표지판이 적도 바로 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축구장을 지을 때 방해가 되자 북쪽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은 인니마저도 이럴 정돈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4-1로 이기고 우승,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자 대통령령으로 3일을 임시 공휴일을 선포하고 브라질 국회에선 이를 기념하여 국기 중앙에 그려진 지구본을 축구공으로 대체하자는 의안이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고 상하원 합동 투표 끝에 근소한 차로 부결되었다.
카메룬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8강 진출을 기려 국립 방송국 이름을 선수 이름을 쫓아 `로저 밀러 방송국′ 으로 개명하고 축구협회를 대통령 직할 기구로 운영 중.
첫댓글 오빠 올만 ㅇㅅㅇ/" ~
아라 하이 올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