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테마기행에서는 신장 위구르편이 재방영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규호 대장과 함께 이 지역을 여행 후 글과 사진을 남겼기에 이중 '베제클리크 천불동'과 '키질석굴'을 올립니다. (일요일인 내일(8/31) 오후에 전체가 재방영 되니까 참고해 주세용)
■베제클리크 천불동(柏孜克里克千佛洞)을 가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焰火之乡'이라 일컫는 투르판이 있습니다. 얼마나 더우면 '염화지향'이라 했을까요.
투르판은 한나라 때 서역 36국 중 하나로 고대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이자 요충지입니다.
투르판이 과거에는 목화농사가 주를 이뤘으나 오늘날에는 카레즈(坎儿井) 지하의 물과 실크로드의 척추인 톈샨산맥의 눈녹은 물을 이용해 과일농사를 짓습니다.
특히 포도와 메론은 맛있기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생산한 포도로 만든 '투르판 와인'은 단연 으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르판을 '瓜果之乡'이라고 하죠.
투르판의 건포도는 1,300여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당나라 수도 장안(현 시안)으로 팔려나갔다고 하니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투르판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화염산 중턱 서안 절벽에는 '베제클리크 석굴'이 있습니다.
베제클리크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란 뜻으로 '베제클리크 천불동'이라고도 불립니다.
동굴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83개에 달했으나 현재는 57개 석굴만 남아있습니다.
이중 20, 26, 27, 31, 33, 39호 석굴만 공개하고 있더군요.
석굴안 벽화는 온전한게 없습니다. 벽화는 머리가 잘렸거나 눈을 도려낸 것들 뿐입니다.
이슬람에서는 불교 벽화의 눈은 흉안(凶眼•악마의 눈)이란 믿음 때문에 눈을 파버린 겁니다.
14세기 투루판이 이슬람 왕조에 의해 정복 당하면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처참할 정도로 파괴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독일, 영국, 스웨덴, 러시아 심지어 일본 탐험대까지 와서 벽화만 정교하게 잘라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말이 탐험대지 자국의 인가받은 도굴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저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베제클리크 석굴에서 가장 많은 벽화를 떼어내 가면서 ''이땅의 것을 베를린으로 옮기다. 발투스''란 글을 벽에 새긴 독일인 '발투스'란 인물입니다.
이때 가져간 벽화가 40여 상자라는데, 베를린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가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 때 몽땅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베제클리크 천불동에는 '천불동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남성인데,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다리를 다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되자 이곳에서 20년 넘게 신장 위구르 전통 타악기인 도이라(Doira)와 현악기인 '러와프(熱瓦普•Rawap)'를 연주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는군요.
러와프는 나무와 양가죽 그리고 뱀가죽을 사용해 제작한 악기입니다.
연주를 들은 후 약간의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사람이 살 수없는 척박한 화염산 산기슭에서 그들은 석가모니의 벽화를 그리며 어떤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렸을까요?
당시에는 전쟁이 잦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황이라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한 기도가 가장 절실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슬람으로 개종해 아무도 불교를 믿는 사람이 없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열반에 들기 전 ''모든 것은 변할 것이다. 시대와 함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란 석가모니 말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첫댓글 테마기행을 열심히 보는 1인 입니다.
보고 듣기만 했던
그곳 방문기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