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다음은 일본 열도의 대판 교육 인류학 명예교수 조월헌삼랑(鳥越憲三郎)이 이미 대륙 운남성에 일본인의 발원지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1979年,日本大阪教育大學人類學名譽教授鳥越憲三郎最早發表新說---“日本人的發源地在中國雲南省”。]
“대륙조선설” 아닌 “대륙일본설“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을 이미 조월헌삼랑(鳥越憲三郎)외에 열도의 여러 학자들과 이에 운남성 일부의 학자들도 주장하고 있다.
반도에서 “대륙조선설”이 시초가 아니라 그들은 이미 알 고 있었지 않을까(??) 생각하여 본다. 우리는 후발 주자에 불과하므로 더욱 공부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중 운남 여러 소수 민족 중 “이족설彝族说에 관하여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2 일본인 이족설彝族说
“日本人起源于云南彝族”之“彝族说”
출처:http://www.beelink.com.cn/20041008/1693580.shtml
“彝族说”者认为,秦始皇统一六国后,曾命方士徐福率叁千童男童女渡大海,以求长生不老之药。遇大风,幸存者抵澶州(今日本九州)后成家业,此为岛上最早的日本民族。
“이족설”을 인용하면, 진시황 6국을 통일한 뒤에 일찍이 방사 서복은 3천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거느리고 대해를 건넜는데, 장생 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갔는데 큰 바람을 만났으나 요행이 생존자는 단주(지금의 일본 구주)에 도착하여 후에 자손을 이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섬나라 시초의 일본 민족이 되었다.
另据《史记》,秦王室家庭属羌戎。羌戎历史迁徒,最后抵达西南,又成为今天云南彝族的祖先。
또 별거하여보면, <사기>에서 진 왕실 가정家庭에 속한 강羌 융戎족이다. 강 융족의 역사에서 이동은 최후 서남쪽 도달하게 되었는데, 또한 지금 운남 이족彝族의 조상이다.
“彝族说”还认为,因为鸟越宪、佐佐木、渡部等专家到云南考察后发现石林等地撒尼人(彝支系)的“火把节”,类似日本的“孟兰盆节”,即日本的纪伊半岛,同一天也举行“火把节”,而在日本南部纪伊半岛的神户、京都、大坂、奈良、和歌山等地,正是中国传统文化在日本表现最为集中的地方。
이족설은 鸟越宪 佐佐木 渡部등 대가의 설을 살펴보면 운남을 고찰考察하여 드러난 석림 등지의 살니인撒尼人(이족 계통)의 “화파절火把节”은 “맹난분절孟兰盆节”과 유사하며, 즉 일본 기이반도纪伊半岛,에서 같은 날로 “화파절火把节”을 거행한다. 그리고 일본 남부 기이반도의 신호 경도 대판 내량과 가산 등 땅이다. 바로 중국 전통 문화가 일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 지방에 해당한다.
由此看,彝族应是日本人的祖先。就“彝族说”而言,当年漂落到澶州的徐福等叁千童男童女,其实并非岛上最早的日本民族。
이런 까닭을 알아보면 이족彝族은 응당 일본인의 선조이다.
“이족설”에 따라 말하자면 당년에 표류하여 단주에 도달한 서복 등 3천여 동남동녀들은 그것은 실재로 비도상(非岛上:섬나라가 아닌)인 최초의 일본민족을 아우른다.
羌族是我国最古老的山地民族之一。他们长期居住在青藏高塬,过着游牧生活。在青海、西藏的广大草塬地带,分布有“细石器遗址”,部分可能属于仰韶文化范畴,距今仅有6000年。
강족은 우리나라(중국) 가장 오랜 산지山地 민족 중 하나이다. 그들은 오랜 동안 청장고원青藏高塬에 거주하며 유목 생활을 보낸다. 청해青海 서장西藏의 넓은 초목지대에 살며, 세석기细石器 유적이 있는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앙소문화仰韶文化 범주에 속하였다고 보는데, 지금으로부터 겨우 6000년 사이 쯤 된다.
然而,在出自羌戎的叁千童男女尚未渡海之前,彝人的祖先早在人类社会发展史上就创造了足够彪炳史册的辉煌业绩。
그럼으로 강羌 융戎족의 3000 동남동녀가 상나라 말기에 바다를 건너기 전에 내원하여 존재 하였으므로, 이인彝人의 조상은 일찍이 인류 사회과학 발전상 창조적이었던 역사상 빛나는 업적이 화려하고 아름다움이 넉넉하게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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那幺,“火把节”习俗的源头,正好处于金沙江沿岸的云南北部(含滇东北)、四川南部和贵州西部等叁个重要的彝族聚居区,自然,“火把节”习俗也就和长江流域的赛龙舟等等民族传统节一样,经由长江沿岸,传到了日本列岛的九州,再经本州或四国,直抵纪伊半岛
。
그러면 하파절火把节의 풍속 뿌리는, 금사강金沙江 연안의 운남 북부(전동滇东 북부를 포함하여) 사천 남부와 귀주 서부 등 3개 중요 이족彝族 취락 지구 자연적으로 “화파절火把节” 습속도 장각 중류의 새룡주赛龙舟 등 민족 전통 절기 하나인 형태로서 장강연안을 경유하여 일본열도에 있는 구주에 전파되었으며, 다시 본주本州 혹 사국四国을 지나서, 직접적으로 이기반도纪伊半岛에 전해졌다..
因为,从长江入海口到九州岛前沿的长崎仅460海里,到本州岛前沿的下关也仅为550海里。
왜냐하면 장강长江 입구에서 구주九州 섬 앞 장기长崎는 겨우 460해리로서, 본주도 앞 연안의 하관下關 땅에 이르러서도 겨우 550해리이기 때문이다.
这一传播途径,不管我们从当时或今天来看,比之黄河流域的中塬文化经由朝鲜半岛而辗转日本,都可谓便捷之道。
이 하나의 전파 경로는, 우리는 당시나 현재에 어떤 상황을 있어서도 관계없이 , 황하유역의 중원문화가 조선반도를 경유하고 일본을 전전하였는데, 무릇 편첩(便捷:신속한,적당한) 한 길이라 할 수 있다.
由于受南方长江流域文化影响或相处在共同的文化圈内,一部分地域邊緣民族如哈尼族、纳西族和白族等,也都有过“火把节”的习俗。
남방 장강 유역 문화 영향 혹은 서로 공동문화권同的文化圈 안에 거처하고 있으므로 해서, 일부분 지역 중 한 쪽에 합니족, 납서족과 백족 등 화파족 습속적인 것이 있다.
3)왜국은 열도에 있지 않다.
<北史 列傳 卷九十四 列傳第八十二 倭>에서
倭國在百濟、新羅東南,水陸三千里,於大海中依山島而居
왜국은 백제의 신라 동남쪽 물과 뭍으로 삼천리로 대해 가운데 살며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고 산다.
여기서 수륙은 물길 뿐만 아니라 육지로 가는 길이라는 뜻인데 현재 일본은 섬나라이므로
불가능한 일 것이다.
혹자는 “물길로 몇 천리를 간 다음 다시 땅 길로 얼마를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뭍길로 다시 가는 길이 있다면 北史에서 다시 “뭍 어디 어디로 가야 왜가 있다고 기술 하였을 것이다“ 또 현재의 열도에 왜(倭)가 있었다는 사관으로 보면, 열도에 한 시대에는 수백 나라가 있기도 하였지만 그들 어떤 나라들도 통칭하여 왜(倭)라고 부르므로 이러한 주장한 합당한 설이 결코 될 수 없다
大海:여기서 대해는 큰 바다인 대양(大洋)만 의미란 것이 아니다. <상서통고>에서 해海는 즉 하河라고 하였고, <사어>에서 호박湖泊 명칭으로 청해靑海 중남해中南해(海)라고 한다.[用于湖泊名称:青~中南~]고 하였다.
<한어대사전>에서 島를 찾아보면 첫 번째 항목으로 “해양 및 강 호수의 물이 둘러싸는 육지 이다” [1.海洋及江、湖中被水環繞的陸地。]라고 되어 있다.
<元史 列傳 第五十五 弟天祥 >
且自征伐倭國、占城、交趾、爪哇、緬國以來,近三十年,
[또 왜국으로 부터 점성 교지 조왜 면전이래, 가까이 30여년]
여기서 왜국은 점성占城 교지交趾 조왜爪哇 면전緬國 등과 함께하므로 중국 남부 지역에 있었음을 최소한 추측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구글 지도에서 <이족彝族자치주>

열도의 <맹난분절孟兰盆节>
http://www.zzta.com/msfqjq/ms12/ms3.jpg

열도의 <맹난분절孟兰盆节> 출처:://img.bimg.126.net/photo/LgZ37ggwkljPFYMscrrO0A==/289074801082663010.jpg

<대륙 이족彝族 “화파절火把节” > http://img3.fengniao.com/forum/attachpics/118/48/4689493.jpg

<대륙 이족彝族 “화파절火把节” >http://image.hnce.com.cn/UploadFiles/Travel/20090908/3b69bb59-0470-45fe-b76a-d631ca0c4800.jpg

첫댓글 일본인은 유전자조사결과 우리민족과 흡사합니다. 다만 귀지를 통한 조사결과 남방계 50% 북방계(한민족)50% 입니다. 일본 본토북부는 고구려인계통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큐슈와 오사카는 동이의 일파인 왜인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나머지는 백제계와 한족계가 섞여 살고 있습니다. 운남기원설은 제가 보기에 틀린 학설은 아니지만 일부만 타당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증거입니다. 아울러 왜인들의 직계조상은 발상은 하북이며 500년경에는 한반도 남부 전라도와 경상도 부산일대에 많이 살았습니다. 이미 유물발굴조사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남부에서 왜인들이 서기500년경에 갑자기 사라지게 되는데 이유를 찾아야 함다.